(쿠알라룸푸르=연합뉴스)
"북한의 현재를 상징하는 것 같아 씁쓸하다."
말레이시아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의 최대 화제 인물인 북한의 백남순 외무상이 ARF 개막을 하루 앞둔 27일 오후 4시40분께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에 모습을 드러냈지만 구름같이 밀려든 각국의 기자들은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북측의 입장을 대변, 당당하게 서서 준비된 '성명서'를 낭독할 것으로 예상하기도 했지만 백 외무상은 골프장에서나 볼 수 있는 '전동카트'를 타고 나타났고 이후 공항 귀빈실에서 승용차가 있는 공항 밖까지 약 100m를 이동하면서도 '자기 발로 이동하지 못할' 정도였기 때문이다.

77세의 고령에 신장병을 앓고 있다는 '노(老)외교관'의 초췌한 모습에서는 30년이 넘는 외교관으로서의 '화려한 과거'를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를 향해 질문이 쏟아졌지만 '똑부러지는 대답'은 커녕 말 한마디를 들을 수 없었다. 외교관 임에도 `말'이 사라지고 거동까지 불편해 보인 백 외무상의 모습. 바로 국제사회에서 외톨이로 궁지에 몰린 북한의 오늘을 보는 듯 했다는 반응이 쏟아졌다.

백 외무상을 수행한 북측 관계자들은 기자들이 카터를 에워싸자 백 외무상의 건강에 해가 될 것을 우려한 듯 공항 경비요원들과 함께 기자들의 질문공세를 막았다.

힘들고 지친 듯한 백 외무상의 모습은 쿠알라룸푸르 국회의사당에서 다른 나라 장관들과 함께 압둘라 바다위 총리를 예방하는 자리에서도 재연됐고 숙소로 가는 차를 기다리는 동안 기자들이 다시 질문을 던지자 마지못한 듯 몇마디 답하긴 했지만 얼굴을 찌푸리며 힘들어 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공식석상에서도 백 외무상은 '고립'됐다는 후문이다. 특히 `전통적 혈맹'인 중국의 리자오싱(李肇星) 외교부장이 백 외무성 바로 옆자리에 앉아있었으나 백 외무상을 사실상 외면한 채 별다른 대화를 나누지 않는 모습이었다고 회담장을 다녀온 외교소식통이 전했다.

리 부장을 향해 자꾸 말을 걸려는 백 외무상의 모습을 지켜본 한 소식통은 "중국이 전략적으로 대북 정책을 조정할 수는 있다고 생각되지만 그래도 저럴 수 있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고 소회를 피력했다. 외교가에 '영원한 적도, 동지도 없다'는 진실을 또다시 보여준 장면으로 기억될 것이라고 그는 덧붙였다.

가까스로 이날 일정을 소화한 백 외무상은 이날 저녁 말레이시아 외교장관이 주최하는 연회에도 참가하지 않은 채 휴식을 취한 것으로 전해졌다.
저작권자 © 투데이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