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소개]라크리모사(로크출판사)

작가에게는 송구한 이야기지만, 이 책은 얼핏 보면 최근 인기를 얻고 있는 납치물들, 미국 영화 '테이큰'이나 우리 영화 '추격자' 등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도서관이라는 배경 때문에 에코의 명저 '장미의 이름'을 떠올리게도 한다. 하지만 이 책의 주인공은 전직 특수 요원도, 그리고 추리력이 뛰어난 신부도 아니다. 그저 딸을 사랑하는 도서관 근무자일 따름이다.

글을 풀어가는 솜씨와 긴박감 못지 않게 평범한 주인공을 내세워 악마라는 막강한 상대와의 대결을 펼차게 한다는 설정이 이채롭다.

도서관 내 진실의 원 안에 갇혀 있는 악마와 그가 대결하는 세 번의 거래, 세 번의 기회, 세 가지 갈림길이 흥미롭다.

그러나 진실의 원 안에 봉인돼 거짓말을 못 한다는 악마지만, 끝부분은 상당히 충격적이다. 거짓말을 못 한다는 설정 자체가 과연 제대로 된 설정인지가 관건인 셈. 더욱이 도서관장의 등장과(연쇄실인마로 알려진) 경찰의 수사 문제까지 얽혀들어 그는 도움은 커녕 머리가 복잡하기만 하다.

이렇게 되고 보면 딸을 지키기 위한 그의 노력은 너무도 불공평한 게임의 수레바퀴에 깔린 것으로 보인다.아무리 노력해도 벗어날 수 없는 거대한 짐에 깔린 소시민의 모습과 삶을 보는 것 같아 애처롭기까지 하다.

하지만 주인공은 왜 하필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기는지, 하필 내가 거래의 중심에 서게 된 것인지 따져 묻거나 누군가를 원망하지 않는다.

그러나 주인공 루카르도는 담담하게 말한다. "누구라도 상관없었을 겁니다"

이 소설의 미덕은 여기 있는 것이 아닐까? 누구라도 상관없을, 그러나 누구에게나 상관있는 그 일을 우리가 부딪친다면 우리는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우리는 어떤 가치를 지킬 것인가? 사랑하는 가족, 내 경계선 안에 있는 나를 알고 있는 사람들인가에 따라 냉정하게 자르고 넘어갈 것인가? 아니면 전 인류, 전 세계, 국가와 사회, 이런 것들을 지키기 위해 고심해야 옳은 것일까?

책의 제목인 라크리모사는 모차르트 최후의 작품 레퀴엠에도 쓰인 것으로 '눈물의 날'이라는 뜻이다. 종말을 의미하는 레퀴엠의 한 부분이라는 뜻은 이 작품이 지닌 의미를 압축해서 보여주고 있다. 연암 박지원은 비단 슬플 때만이 아니라 어떤 감정이든 극에 달하면 통곡이 된다 했다. 대결이 마지막 페이지에 도달했을 때 루카르도는 아마도 눈물을 흘리고 싶지 않았을까?

내가 과연 진실을 쫓고 있는 것인지, 누가 친구이고 누가 적인지 알 수 없는 극한의 긴장이 이 책의 마지

막 페이지까지 이어지는 것처럼, 우리 삶도 그런 게 아닐까?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단순한 추리 소설이나 스릴러, 환상물을 넘어서서 생각할 바, 우리가 평생 고민해야 할 것을 던져주는 책이다. 평범한 일상 속에서 수많은 문제를 맞딱뜨리면서도 어느 쪽이 과연 진실인지 알 수 없는 것이 우리 인생이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늘 답을 찾아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루카르도의 좁은 행동반경인 도서관은 우리가 평생을 겪어야 하는 넓은 세상을 정확히 축소해 담고 있다. 리카르도가 마지막에 "누구라도 상관없었을 것이다(누구든 그 일을 했을 것이다)"라고 말하는 부분까지 읽어내리고 나면 아마도 매일매일 시험에 드는 삶에 대한 용기가 독자들에게도 솟아날 것이다.

윤현승 저/로크미디어(노블레스 컬럽)/08년 4월 11일 출간/10,000원

투데이코리아 임혜현 기자 ihh@todayk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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