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에 역행하는 규제… ‘투표율 저조’

- 지나친 선거법 규제로 네티즌 정치관심 뚝
- “국민적 합의 없는 알권리를 역행하는 법”

우리나라에서 최근 교사체벌, 학생들의 왕따 및 폭행 등 사회 각 분야에서 'UCC(User Created Contents)'는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사건의 문제점을 보고, 여론을 형성하는 등 새로운 매체로 자리 잡았다. 이는 정치에서도 마찬가지지만 이번 총선에서는 'UCC'의 활약을 볼 수 없었다.

▶ UCC 확산 → UCC 감소 ◀

지난 2004년 대선 때만 해도 선거열풍으로 뜨겁게 달아올랐던 인터넷이 이번 총선기간 중에는 시종일관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2002년 대선에서 게시판을 뜨겁게 달군 네티즌의 열기는 사라지고 '넷심 잡기'에 주력하던 정당이나 후보자의 적극적인 모습도 찾아볼 수 없었다. 지역별 후보자에 대한 배너광고와 UCC 및 홈페이지 등을 통한 일부 후보의 유세활동 등이 전부였다.

고려대 김성태 교수는 이번 총선에서 네티즌들이 보인 모습은 '2002년 대선의 학습효과'라고 분석했다. 지난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 대통령을 '인터넷 대통령'이라고 부를 정도로 네티즌(특히 노사모)들의 지지가 큰 역할을 했지만, 이후 노무현 정부의 정책 실패 등에 네티즌의 실망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최근 총선과 관련한 콘텐츠는 네티즌이 만든 UCC라기보다는 각 정당의 선거캠프에서 만든 CCC(Camp Creative Contents)라 네티즌이 더 이상 매력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며 “중앙선관위의 규제로 인해 네티즌이 소극적으로 반응한 것도 한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 선관위 홈페이지에 공지된 '선거 UCC' 운용 기준
▶ 선거법 93조 후폭풍 '투표율 저조' ◀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지난해 6월에 '선거 UCC'운용기준을 발표했다.
이 발표에는 기간제한과 함께 ▲인터넷 유머사이트에 탄핵에 찬성한 국회의원들을 비판·풍자하는 패러디를 인터넷에 게시한 행위 ▲특정 정당을 반대하는 노래와 노랫말을 인터넷에 게시해 접속자들이 쉽게 듣고 다운로드받을 수 있도록 하거나 이메일로 송부하는 행위 ▲패러디를 인터넷에 게시한 행위 ▲인터넷 카페의 운영자가 인터넷신문 기사 중 '총선 출마자 중 간첩사건 연루자 및 운동권 명단' 기사를 복사해 카페의 회원들에게 이메일로 발송한 행위 등의 선거법 위반 예시를 기재했다.

이에 NGO단체들은 '선거 UCC운용기준'은 정치에 있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NGO단체들은 “우리 공직선거법 93조는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표현의 자유', 특히 선거과정에서 가장 간편하고 저렴한 비용으로 정치적 의사를 표출하고, 교환할 수 있는 인터넷상에서의 의사표현의 자유를 제한하고 있고, 처벌에 대한 모호한 기준은 국민들로 하여금 끊임없이 자기검열을 하게 만들어 표현의 자유를 억제한다”고 비판했다.

이는 “유권자의 입에 재갈을 물리고, 사실상 후보와 언론이 제공하는 정보만으로 대선을 치루라는 것은 민주국가에서 있을 수 없는 일로 우리나라를 민주국가라 할 수 없다”고 발언 수위를 높였다.

지난달 31일 지난 대선에서 일명 '이명박 UCC'를 인터넷에 게재해 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네티즌 김연수씨에 대해 벌금 80만원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김씨가 언론에 이미 보도된 내용을 그대로 전달했고 설령 이 내용이 허위 사실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특정 후보를 당선 또는 낙선시킬 의도로 동영상을 만들어 배포해 선거에 영향을 미치려 한 사실이 인정된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김씨의 변호인은 “표현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하는 현행 선거법은 문제가 많다”며 “법 개정이 전제돼야겠지만 현행 법망에서도 공익을 위한 행동의 경우 유연하게 해석할 여지가 있는데 이번 판결은 아쉬움이 많다”고 지적했다. 판결이 나기전 김씨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선거법 93조 위반으로 5시간동안 경찰 조사를 받은 뒤 댓글을 다는 것조차 누군가로부터 감시받는 느낌이 들었다”며 고 전했다.

하지만, 선관위는 선거법이 개정 전까지 대선과 마찬가지로 단속 수위를 유지하겠다는 입장을 유지했고 전문가들의 우려대로 총선 역시 50%도 안 되는 낮은 투표율 보였다.


▶ UCC 무시 못 할 영향력 ◀

<사진 = 2006년 타임 그해 얼굴>
지난 2002년 대선 막판 인터넷 메신저가 선거 판도에 큰 영향을 미쳤고, 2006년 미국의 중간선거에서 유튜브로 대표되는 동영상 UCC가 큰 영향을 미쳤다. 전문가들은 2007년 대선과 18대 총선에서 인터넷, UCC의 활약을 예상했지만 이는 보기 좋게 빚나갔다.

선과위가 발표한 대선의 최종 투표율은 63%, 17대 총선 역시 46%로 그 어느 때보다 투표율이 저조했다. 이는 16대 대선과 비교해 인터넷 선거운동을 지나치게 규제한 것이 문제라고 지적받고 있다.

랭키닷컴 측은 “선관위의 엄격한 규제로 인해 자유로운 후보 및 정당에 대한 의견이 나오지 못했고, 국내 인터넷을 장악하고 있는 포털에서 정치 관련 기사에 대한 댓글도 줄어들었다”고 설명했다. 또 “이런 분위기 속에서 몸을 사리는 네티즌의 모습이 두드러지면서 이번 선거가 조용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손학규 통합민주당 공동대표는 “투표권이 없는 미성년자는 선거활동을 위한 UCC 제작물을 못 만들고, 한발 더 나아가 성년들도 선거기간인 23일 동안만 UCC를 제작·게시하는 것은 새로운 IT문화에 대한 강제적 차단”이라며 “UCC를 통한 비방과 인신공격, 왜곡된 정보의 확산은 차단되어야 하지만 충분한 국민적 합의 없이 국민의 알권리를 역행하는 법은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이처럼 네티즌들은 선관위가 UCC에 대한 괴리감을 벗어나지 못한다면 앞으로 국민들의 정치무관심은 더욱 크게 나타날 것이라고 우려를 나타냈다.


투데이코리아 윤정애 기자 jung@todayk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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