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동안 산골 은거하며 투병했던 시인 도종환, 문학집배원 된 후 뻔질나게 서울 나들이해도 시를 받고 행복할 독자 생각하면 마냥 즐거워

오랜만에 문학이 화제에 올랐다.

문학집배원 도종환 시인이 배달하는 시플래시가 인구에 회자되면서, 생활에 쫓기는 현대인의 일상에 잔잔한 파문이 일고 있는 것이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위원장 김병익, 이하 예술위)는 한국문학의 성과를 온 국민이 나누고자 복권기금을 지원받아 문학나눔사업추진위원회(위원장 도정일, 이하 추진위)를 구성, 지난 5월 8일부터 문학집배원 ‘도종환의 시배달’이라는 독특한 사업을 시작했다. 「고두미마을에서」 「접시꽃 당신」 「당신은 누구십니까」 「부드러운 직선」 「슬픔의 뿌리」 「사람의 마을에 꽃이 진다」 「해인으로 가는 길」 등 서정적이면서 철학적인 깊이가 있는 시로 많은 독자들의 심금을 울려온 도종환 시인이 시집이나 문예지에 발표된 시 중에서 시의적절한 시를 한 편씩 골라 플래시로 제작, 전국의 교사와 학생, 정관계 인사, 나아가 모든 국민에게 배달하는 사업이다. 도종환 시인이 선정한 시를 그림, 사진, 애니매이션 등을 활용해 움직이는 이미지 플래시로 제작하고 거기에 시인의 육성이나 성우 등의 낭송을 덧입혀 독자들이 시각과 청각으로 시를 쉽고 가깝게 느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 사업은 5월 8일 당시 예술위의 아르코(arko.or.kr) 웹진 회원 2만 명에게 서비스되면서 시작했다. 그러던 것이 지금은 수많은 사람들의 입과 입을 통해 전해져 7월 첫째주 현재 수신자가 7만 명을 넘어섰다. 접근성이 용이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홈페이지(for-munhak.or.kr)를 통해 신청하는 독자가 매일 100여 명에 이르고 있고, 단체로 신청하는 경우도 많다.

추진위가 이렇게 시읽기에 나서는 이유는 간단하다. 시야말로 가장 정확하고 아름답거나 독창적인 언어와 생각을 표현하며, 또한 당대 정신의 정수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시를 읽는 것은 자신의 내면으로의 여행이며, 자아의 확장인 세계로의 여행이다. 일부 선진국에서 청소년들이 의도적으로 시를 외도록 하는 제도를 마련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추진위는 청소년들에게 시를 읽히기 위해 전국 시도 교육청에 시배달 홍보를 위한 공문을 보냈다. 가장 먼저 반응이 온 곳이 대구광역시 교육청이었다. 대구교육청의 한원경 장학사(전화 053-757-8302)는 이 소식을 듣고 관내 교사와 학생들의 뜻을 모아 2만2천 건의 시배달을 신청했다. 그뿐만 아니라 대구교육청에서 매년 실시해온 난치병 환자 돕기 시잔치 한마당에서 문학집배원 도종환 시인과 만나는 자리를 마련해, 더욱 많은 학생, 교사, 시민들이 시의 세계에 다가설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로 했다.

문학집배원 도종환 시인과의 만남은 7월 11일(화) 오후 1시 30분부터 대구광역시학생문화센터 대공연장에서 열린다. 참가 신청을 받은 지 일주일도 안 되어 좌석이 매진된 상태이다. 1,400여 좌석이 입추의 여지 없이 꽉 찰 전망이다.

이 행사에서는 문학집배원 도종환 시인의 생활을 담은 영상다큐, 그의 최근 시집 「해인으로 가는 길」(문학동네, 2006)에 실린 시를 주제로 한 해금 연주와 무용, 시낭송과 시노래가 다채롭게 펼쳐지며, 또한 시인은 <왜 시를 읽어야 하는가?>라는 주제로 강연하고 청중의 질의에 답하는 시간도 갖는다.

아무리 뜻깊은 일일지라도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는 일이다. 문학집배원 도종환 시인의 꿈은 소박하기 그지없다. 그는 독자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월요일 아침에 좋은 시 한 편을 읽으며 한 주를 아름다운 마음으로 시작할 수 있기를 저는 바랍니다. 제가 드리는 시가 아주 짧은 시간 동안이나마 여러분에게 기쁨이 되고 위안이 되고 힘이 된다면 저는 그것으로 기쁘겠습니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 사업을 통해 모든 국민이 시를 읽으면서 기쁨을 느끼고 잠시라도 시름을 잊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한다는 것이다. 복잡한 도시생활을 떠나 산골에 은거한 시인다운 생각이다.

속리산 자락에 위치한 도종환 시인의 오두막집은 적막하기 그지없다. 그런 고요 속에서 도종환 시인은 그 동안 지친 심신을 쉴 수 있었다. 그러나 문학집배원이 된 뒤 그는 거의 매주 나들이를 나가야 한다. 시를 골라서 회의하고, 고른 시를 녹음해야 하고, 플래시를 검토해야 하고, 게다가 쇄도하는 인터뷰 요청을 문학집배원 임무에 충실하기 위해 마다하지 않고 받아들인다. 그의 은거생활이 문학집배원이란 독특한 직업을 갖게 되면서 위기에 처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배달 보따리를 짊어진 그의 표정은 마냥 행복하기만 하다.

적막한 산골 오두막집에도 알고 보니 온갖 식물들이 살고 있고, 나비도 잠자리도 벌도, 노루도 사슴도 족제비도, 개구리나 뱀이나 두꺼비도 함께 살고 있었듯이, 알고 보면 북적북적한 우리네 세상도 사실은 적막한 것이고, 적막하면서 또한 왁자지껄 함께 살아가고 있는 터전인 것이다. 그렇게 다양한 삶의 모습이 있듯이 그가 뽑는 시도 여러 가지 문양을 새기고 있다. 5월 8일에는 이승하의 「늙은 어머니의 발톱을 깎아드리며」, 5월 단오 무렵에는 곽재구의 「단오」, 6월 19일에는 무한경쟁에 시달리는 현대인을 위한 이상국의 시 「오늘은 일찍 집에 가자」가 배달되었으며, 그리고 7월에는 복날 희생당할 개들을 생각게 하는 손택수의 「흰둥이 생각」, 칠석날을 기려 사랑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안도현의 「저물 무렵」 등이 배달될 예정이다. 시들은 저마다 아름다우면서도 신산한 삶을 담고 있다. 그것들은 결국 도종환의 시가 말하는 다음과 같은 길에 다름아니다.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은 없다

다만 내가 처음 가는 길일 뿐이다

누구도 앞서 가지 않은 길은 없다

오랫동안 가지 않은 길이 있을 뿐이다

두려워 마라 두려워하였지만

많은 이들이 결국 이 길을 갔다

죽음에 이르는 길조차도

자기 전 생애를 끌고 넘은 이들이 있다

순탄하기만 한 길은 길 아니다

낯설고 절박한 세계에 닿아서 길인 것이다

- 도종환, 「처음 가는 길」 전문


순탄하지만은 않은 바로 그 길에서 오늘도 문학집배원 도종환은 그에게 손짓하는 독자들을 위해 시보따리에 시를 차곡차곡 챙겨넣는다.

시를 배달받고 싶은 독자들은 문학나눔사업추진위원회 홈페이지(for-munhak.or.kr)에서 신청할 수 있고, 홈페이지에 들어오면 이미 배달된 시플래시도 다시 볼 수 있으며, 시플래시와 함께 메일도 보낼 수 있다. 플래시를 받아보는 독자들은 모두 이구동성이다. “나, 도종환의 시배달, 열 명도 넘는 친구에게 추천했다.”

디지탈뉴스 : 김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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