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FTA 졸속 처리시 무방비 상태

제2의 쇠고기 협상 되지 않도록
문제점, 파급효과 따져봐야

지난 4월 18일 한 · 미 양국은 미국산 쇠고기 전면 개방에 사실상 합의했다. 수입이 중단됐던 '뼈 있는'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이 허용된 것이다. 정부는 “질 좋은 고기를 싼 값에 먹을 수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광우병 발병 위험과 졸속 타결에 대한 비난 여론이 거세지고 있다. 이와 함께 정부의 홍보와는 달리 국민들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우리 삶에 구체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칠지 거의 알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

곡물값 폭등, 위기의 전주곡

최근 세계는 농산물 가격 폭등으로 인해 홍역을 앓고 있다. '식량은 곧 안보', '식량의 무기화'가 되리라는 예측이 나오고 있는 가운데 한·미 FTA 협상 결과에 대해서는 유례를 찾기 힘든 전 품목 관세철폐가 중장기적으로 보면 식량주권을 뺏기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는 경고가 나오고 있다.

끝까지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고 강조하는 쌀시장도 2014년 이후에는 미국뿐 아니라 세계무역기구(WTO) 회원국 모두에게 개방해야 하는 처지다. 이에 따라 농민들은 너도나도 농사를 포기하고 있다. 1990년대 43%를 상회하던 우리나라 식량자급률은 2006년 절반(25.3%)으로 하락했다.

전 세계는 지금 식량 인플레이션 시대다. 지구 온난화 등 이상기변으로 식량 공급이 한층 불안해진 가운데 먹을거리인 옥수수 콩 등이 에너지 대체 연료로 생산되고 있는 등 세계적으로 곡물재고량이 떨어지는 가운데 곡물가격이 2~3배씩 급등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주요 수출국들은 잇따라 자국의 식량안보를 위해 곡물 수출에 대한 금지 정책을 내놓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곡물 자급률이 떨어지는 나라들은 돈이 있어도 곡물을 수입하지 못하는 상황에 처해 있는 것이다.

하지만 비단 이런 상황들이 먼 미래의 이야기는 아니다. 한국은 쌀을 제외한 밀, 옥수수, 콩 등의 곡물들 대부분의 해마다 1,400만 톤을 수입하는 '세계 5위의 곡물수입국이다. 게다가 한미 FTA 협약은 쌀을 제외한 전 품목에 대한 관세를 철폐한다는 상황에서 국내 식량안보에 대한 안전성을 장담하지 못한 실정인 것이다. 이대로 아무런 대책 없이 식량주권을 빼앗긴다면 나아가 주식인 쌀조차 먹을 수 없는 사태가 올지도 모르는 불안한 미래를 야기할 수도 있다.

외국사례, 남의 일 아니다

한미 FTA가 체결되면 값싸게 처음에 미국이 우리나라에 수입해주겠지만 우리나라 농업의 가격에서 미국과 경쟁이 안 되서 망하게 되면 미국은 가격을 엄청나게 높게 받을 것이다. 이러한 예측은 실제로 지금도 일어나고 있다. 가장 대표적으로 필리핀은 3모작이 가능한 기후 덕분에 아시아 농업강국이었다.

또한 쌀 생산량도 상당히 좋아서 자급력 또한 충분했다. 그러나 이후 농업을 버리고 산업화의 길을 걸으며 필리핀은 세계 최대 쌀 수입국으로 전락해버렸다. 그 결과 지금 필리핀의 쌀값은 서민들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폭등했다. 또 그동안 태국, 베트남, 캄보디아 등에서 쉽게 쌀을 수입할 수 있었지만 식량위기가 다가오자 쌀 수출을 통제하면서 급격한 식량위기에 빠지게 된 것이다.

필리핀뿐만 아니라 이집트 또한 원래 풍족한 곡물수확을 거뒀었지만 현재는 밀수입 세계 1위 국가이다. 밀값이 58%가 오른 지금 이집트에는 식량난이 찾아왔다. 아이티의 경우도 쌀농사를 짓던 나라였지만 싼 값에 쌀을 들어오면서 아이티 자체 농업은 몰락했다. 결국 아이티 또한 기아수준의 식량난을 겪고 있다. 이제는 돈이 있어도 엄청나게 비싼 가격에 수입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사례는 언급된 나라뿐만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속출하고 있으며 시간이 지날수록 그 위기감은 점차 고조되고 있는 실정이다.

세계는 준비중, 우리는 무방비

선진국들을 비롯한 세계 각국은 자국의 식량위기에 대한 준비를 하고 있는 반면 우리는 정반대의 방향을 정부가 제시하고 있다. 식량 위기 해법을 마련하기 위해 유엔은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고 7억 7500만달러(약 7771억원) 규모의 식량 펀드를 조성하기로 했다. 세계농업기구(FAO)도 개도국 농민들이 농사를 계속 짓도록 17억달러의 기금을 조성할 방침이다. 아세안도 여러 가지 식량위기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미국 농무부는 올해 세계 곡물 생산량이 소비량에 비해 2900만t 부족하고, 곡물 재고율(연말 재고량/연간 소비량)도 사상 최저 수준인 14.6%로 떨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여기에다 러시아 중국 아르헨티나 우크라이나 등 곡물 생산국들은 각종 수출 제한 조치를 취하고 있다.

중국도 옥수수, 밀, 콩 등 주요 곡물 수출에 수출세를 부과했다. 그리고 밀가루, 쌀가루, 옥수수 가루에 수출 허가제를 도입했다. 사실상 수출을 금지한 것이다. 중국 국내 곡물이 외국으로 빠져나가는 것을 막음으로써 중국 국내 곡물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한 조치를 취하고 있는 것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식량자급률이 30%대로 최하위이다. 이것 또한 쌀을 제외하면 다른 곡물들은 5% 미만이다. 또 한국의 주요 곡물 재고율(2007년 기준)은 쌀 13.7%, 밀 11.8%. 옥수수 5.3%, 콩 10.6% 등 FAO 권장 수준을 한참 밑돌고 있다. 또 국내 소비 중 국내 생산이 차지하는 비율(자급률)도 밀 0.2%, 옥수수 0.8%, 콩 13.6% 등에 그쳐 해외 수입에 거의 대부분 의존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 식량 위기에 가장 심각한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쇠고기 협상에 이어 한미 FTA를 조기에 졸속으로 처리하려고 하는 것은 농업 포기를 기정사실화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비단 농업의 몰락과 함께 국민의 건강과 먹거리에 대한 배려는 찾아 볼 수 없는 것이다.

실제로 5월부터는 한국의 아이들이 먹는 과자, 음료수, 아이스크림에 유전자 조작 옥수수를 원료로 사용하게 된다. 유전자를 조작하지 않는 자연 상태의 옥수수를 더 이상 현 시세로는 수입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재검토, 국민합의 거쳐야

농민단체에서는 우루과이라운드 협상을 비롯해 각종 수입 개방 조치에 맞서는 투쟁을 오래전부터 하면서 식량 안보를 이야기해왔다. 식량의 위기는 주권의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는 주장까지도 해왔다. 그러나 반도체, 자동차, 공산품 등을 팔아 식량을 사겠다는 논리와 서민들에게 값싼 먹을거리 공급이라는 명분에 묻혀 버리고 말았다.

급기야 이명박 정부는 국제 곡물가 폭등에 대처하는 방안으로 몽골에 여의도 1000배 규모의 땅을 임대해 해외 식량기지를 만들겠다는 발표를 내놓았다. 우리나라 김포평야 같은 좋은 농토는 전부?투기장으로 만들어 놓고 쓸만한 땅들은 운하예정지다 뭐다 해서?땅값만 수억?올려놓고 또한 농민들 생존권마저 위협하는 무분별한 수입을 전부 양성화해놓고 해외 식량기지 건설로 먹을거리 안정화 시키겠다는 것이다. 부적절한 접근법이다.

지금도 우리 농촌은 10년 이후에는 농사지을 사람이 없을 정도로 심각한 어려움에 놓여있다. 여기에 기름값, 사료값, 비료값 등 국제 원자재 가격의 인상으로 심각한 경영위기까지 겪고 있는 실정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특단의 대책은 고사하고 졸속처리 강행을 서두르고 있는 것은 세계적인 식량위기에 대한 경고를 무시하는 처사인 것이다.

세계은행과 세계보건기구(WHO), FAO가 낸 보고서에 따르면 기본적인 인프라가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의 농업시장 개방은 빈곤퇴치와 식량 안보, 환경 문제에 장기적으로 부정적인 효과를 낼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아무런 대책 없이 무조건 통과시켜야 한다는 논리로 한미 FTA를 비준하게 된다면 그 부작용은 고스란히 우리에게 돌아온다. 국민의 지속적인 관심과 견제 그리고 질타가 있어야 한다. 그것이 우리의 권리이자 의무인 것이다. 한번 농사를 몇 년 간 안 지은 땅에서 다시 농사를 하려면 엄청난 시간과 공을 들여야 한다. 엄청난 독소조항과 한번 비준되면 70년간 절대 파기 시킬 수 없는 한미FTA에 대한 인식의 전환과 재평가가 필요한 시점이다.

투데이코리아 강기보 기자 luckybo@todayk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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