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대당선자 인터뷰- 한나라당 윤석용 당선자(서울 강동을)

◆진정한 복지는 법과 제도가 받침 돼야

서울 강동구 천호동의 복잡한 시장어귀의 낡은 상가 건물 2층.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 있는 이 건물에 27년째 '인술보국'을 내세우며 윤석용 당선자의 한의원은

자리 잡고 있다. 4대째 한의원을 가업으로 이어오고 있는 윤 당선자는 국회의원에 당선되기 전까지 활동상을 보면 입이 딱 벌어질 정도이다.

그 자신이 소아마비로 목 이하 전신마비된 스스로를 감당하기도 어려운 장애인으로서, 장애인과 소외된 이웃을 위한 사회복지사업을 벌이는 한편, 이동목욕차량 제작,무료진료, 시민운동,통일운동 등 사회 전반에 걸쳐 참여하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다. 그만큼 우리 사회에 대한 관심과 고민을 함께 해 왔다는 방증일 것이다.

이 모든 활동의 기반은 그가 단순히 장애인 출신 한의사 윤석용에 그치지 않고 특유의 뚝심과 추진력으로 소외계층에 대한 봉사와 헌신에 기반을 둔 때문일 것이다. 그가 이제는 국회에 들어가 어려운 이웃을 위한 입법활동에 직접 나서겠다고 한다. 그를 만나 앞으로의 의정활동의 각오와 포부에 대해 들어봤다.

다음은 윤 당선자와 일문일답

-한의사, 사회사업가로서 성공을 거두었고, 장애를 가지고서도 국회까지 입성했다. 이런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요인은 무엇이라 생각하나?
성공이라 할 수 있겠나? 단지 장애인 뿐 아니라 어렵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희망이 되고자 했다. 그들에게 희망을 주었으면 좋겠고 나처럼 목 밑으로 마비된 사람이 걷고 하루 종일 선거 운동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어 비장애인들에게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깨고자 노력한 것이 받아들여진 것 같다.

-나름대로 사회적 성공도 거두었는데 왜 국회의원이 되려 했는지 궁금하다.
▲민주화를 위해서 학생운동도 했었고,가난한 사람을 구제하고자 빈민운동에도 투신했었다. 그런 가운데 가장 취약한 계층이 장애인이었다. 그래서 장애인 운동을 하다보니 법과 제도가 미비해 수혜자에게 제대로 혜택이 돌아가지 않는 것을 발견했다. 제도를 제대로 만들어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지금까지 10개 정도의 법을 만들었다. 그런데 남의 손을 빌려 만들다보니 내 의도와는 다르게 변형되기도 하고 애초 의도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 버린 것도 있었다. 그래서 내 손으로 제대로 해 보고자 맘 먹고 국회에 들어가기로 했다.

-이번 공천 과정에서 어려운 일을 많이 겪었다고 들었다.
상대편에서 공천과정에서 나를 사기 및 의료법 위반으로 고소하더라. 일주일 만에 조사하고 공심위에 올라갔다. 이제껏 벌금 한 푼 안내고 (정직하게)살았는데 그런 엉터리 같은 일로 지역구를 포기하고 끝까지 전국구로 보내려 했던 것에 심적인 고민이 많았다. 이제는 이겼으니 끝내야지. 하나님이 다 알아서 하신다고 생각한다.

-이번 선거에서 문제가 됐던 뉴타운 공약을 윤 당선자도 내걸었다. 오 시장은 더 이상 계획이 없다는데 주민과의 약속은 어떻게 지킬 것인가?
당연히 지켜야한다. 국민이 원하면 법도 바꾸는 것인데, 주민들 80%가 동의하고 있는데 안 한다고 하는 것이 문제다. 정치인이 하겠다고 공약하는 것이 뭐가 문제인가? 동네 나가보면 소방차도 못 들어가는 곳도 많다. 이렇게 낙후되었는데 어떻게 개발을 안 한다는 건가?

◆대가를 바라면 복지라 할 수 없다

-4대조 할아버지가 고종의 어의였고 4대 째 한의원을 이어오고 있는 것으로 안다.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비방이 있을 것 같은데.
제일 큰 것이 아들 낳는 비방이다. 이것은 동의보감에도 나오는 내용인데 최근에 이문제를 학술적 논쟁에 부쳐서 사기라고 하는데 그것은 양방에서는 이해가 안되는 것이다. 그 외에 백납증, 간질, 관절염 등 한방에 우수한 약이 많다. 우리는 한방의 우수한 것을 발전시켜야 하는데 그것을 못하고 있다. 국회 들어가면 한의학 발전을 위해서도 노력할 것이다.

-사회복지법인을 운영하고 있는데 그 일도 만만한 일은 아니어서 힘든 일이 많았을 것 같은데.
처음에 사회복지사업으로 탁아소 결혼상담소, 악세사리공장 등을 운영했다. 그러다 보니 제도권 속에서 일을 해야겠다 싶어 복지 법인을 만들었고 이동목욕차량과 사회복지관, 어린이집을 만들게 됐다. 이동목욕차량은 몇 십억을 들여 내가 처음 만들었다. 특허권까지 가지고 있지만 특허권을 한 번도 주장하거나 사용한 적은 없다. 그러나 운영하는 과정에서 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금전적인 손실도 컸다.

-특이하게 중고차 수출업도 했는데 계기와 이유가 궁금하다.
IMF 발표하는 그날 저녁에 주변사람들과 이 나라를 어떻게 끌고 갈 것인가 의논했고, 장롱 금모으기 운동과 달러 모으기 등의 여러가지 안이 나왔다. 그때 중고차 수출을 하자는 안이 나와서 뜻을 모아서 시작했다. 사실 이전에 대학 다닐때 포장마차도 한 적이 있다. 그야말로 악으로 한 것이다(웃음)

-복지 정책에서 하고 싶은 방향이나 꿈이 있다면?
지금까지 어려운 이웃과 사회를 위해 봉사하는 경찰관, 사회복지사 등에 대해 무료진료를 해왔다. 앞으로 이를 더 확대시켜 개인적인 도움도 도움이지만 노인과 차상위 계층에 대해 제도적으로 뒷받침과 더불어 더 관심 가질려고 한다. . 저소득층을 위한 복지는 돼있는데, 차상위계층이 문제다. 그 예로 어려운 노인이라도 자식이 있으면 지원을 안 해준다. 만약 아들이 감옥, 부도, 사고 났다 하면 아무 대책이 없다. 이들을 위한 긴급구호 대책이 필요하다. 그리고 치매노인은 가정에서도 불가항력이다. 국가도 책임져야하지만 지역사회에서 책임져야한다.

◆장애인 지역구 출마 걸림돌 많아, 병역 기피자로 몰리는 등 개선해야

-통일문제에도 관심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
나는 국수주의적 민족주의자다. 통일은 내가 꿈꾸는 이념중 하나이고 살아가는 방향이다. 그래서 큰 아들 이름도 '통일'이라고 지었다. 민족이 부흥하려면 나라가 통일이 돼야한다. 세계무대에서 7천만 정도가 되면 세계 강국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우리 민족이 하나가 돼야한다는 생각을 늘 가지고 살아왔다.

그러나 백성을 헐벗게 하고 제 자식을 못 먹이는 체제는 안 된다. 내가 북한에 분유와 의료장비 등 엄청 갖다 줬지만 이제는 그건 아니다.

어렵다 할 때 무조건 돈 주면 안 된다. 조건을 걸고 줘야 한다. 정신을 바꿔 물고기 잡는 방법을 배우도록 만들어야 한다. 남북간의 체제경쟁도 복지경제다. 통일 후유증을 치료하는 유일한 방법은 복지밖에 없다. 나는 통일이 되면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계획도 다 세워놨다.

-국회 들어가서 어떤 입법 활동을 하고 싶은가?
장애인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법들을 만들자 한다. 이번 선거운동과정에서 특히 느낀 점이 많다. 선거법

에서도 장애인은 소외돼 있다. 예를들어 장애인은 명함을 나눠주는데도 어려움을 느낀다. 장애인이 명함을 못 나눠줄 때는 보조인을 붙여야 하는데 보조인을 일반인과 똑같이 적용하는 것이 문제다.

또 병역기재란에 필/미필로만 표시하게 돼 있어 장애 때문에 병역의무를 다하지 못한 것이 마치 병역기피자처럼 비춰지는 것도 문제다.

더불어 투표장이 1층으로 내려왔다고는 하지만 계단 1~2 있으면 2층을 올라가는 것과 똑같이 어려움을 겪는다. 비장애인들이 상상도 못하는 장애인의 생활상 불합리한 점을 개선하는 법을 만들고자 한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가장 잘했다 생각하는 일, 보람 있었던 일을 꼽는다면?
마누라 잘 얻었다는 것을 보람으로 생각한다.(웃음). 그리고 나는 잊어 버렸는데 내가 도와줬던 사람들이 잘 되서 나를 찾아와 감사를 표할 때 보람을 느낀다. 척추결핵으로 꼼짝 못하던 사람이 5년 후 신랑감을 데리고 찾아 왔던 일, 제빵사가 돼서 제일 먼저 만든 케익을 들고 온 청년, 어렸을 때 학비를 대줬는데 나중에 피아니스트가 돼서 돌아온 사람 등이 기억에 남는다. 그러나 복지라는 것은 주고 그 자리에서 잊어버려야 한다. 댓가를 바래서는 절대 복지할 수 없다.

[약 력]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졸업
중앙대학교 사회개발대학원 졸업(석사)
천호한의원 원장 (현)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외래교수 (현)
사회복지법인 대한사회복지개발원 이사장(현)
사단법인 한국장애인 재활협회 이사 (현)
사단법인 한글문화 연구회 이사 (현)
사단법인 허준기념사업회 이사 (현)
정도 600년 혜민원 어의 선정
소망의집 무의탁 노인 주거 및 학생기숙사 운영 (현)
강동구 북한 어린이 돕기 운동본부 본부장 (역임)

투데이코리아 이은영 기자 young@todaykorea.co.kr
사진 유정민 기자 artist@todayk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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