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박근혜 전격회동 실패 정국 속 '관심'

18대 총선 고배 후 지리산에서 은둔생활을 해온 이재오 전 한나라당 최고위원이 기지개를 켜나?

이 전 최고위원은 11일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패장은 군말을 하지 않듯이 장수는 전장을 떠나지 않는다"고 말해, '패장이지만 장수다'라는 묘한 논리를 폈다. 이 전 최고위원은 또 "산은 내게 흔들리지 말라고 했다. 그냥 그대로 이재오로 살라고 했다"며 자신의 정치적 스탠스가 변하지 않을 것임을 시사했다. 당초 그는 지리산을 다녀와 6월초에 미국 혹은 러시아로 연수를 떠날 것으로 알려졌지만, 결국 연수를 포기하거나 다소 연기하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이-박 긴급회동 냉랭하게 끝나...강경파 이재오로서는 입지 넓어진 셈

이는 최근 이명박-박근혜 회동이 도로공으로 끝난 상황과 맞물려 여러 해석을 낳게 한다. 자칫 당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으러 돌아오는 상황이 가능할 수 있다. 현재 한나라당에서 새 국회 등원을 전후해 새로 뽑아야 하는 주요 보직은 당대표, 국회의장, 여당 몫의 국회부의장, 원내대표, 당 정책위원장, 당 최고위원 등이 있다.

이 중 당대표는 박희태 의원이 유력하다. 국회의장에는 김형오 의원과 안상수 의원이 경합 중이며, 여당 몫의 부의장에는 김영선 의원과 안상수 의원 등이 거론, 원내대표에는 홍준표 의원 유력 상황이다. 원외인 인사로 이제 새 출발을 해야 하는 이 전 최고위원으로서는 이미 몇 자리들은 넘볼 수 없는 구도인 셈. 하지만 당 최고위원,당 정책위원장 등으로 복귀해도 당내 영향력은 제법 될 수 있다. 친박 견제 등에서는 충분한 파워다.

이 대통령이 친박 복당문제를 당으로 일임한 상황은 친박으로서는 유리한 상황이 아니다. 당내 친이 세력들이 강하게 반발해 얼마든 브레이크를 걸 수 있는 것. 이 대통령이 '국정 파트너'로 박 전 대표를 추켜 세워주지 않은 터에 그간 박 전 대표와의 관계 악화 원흉으로 지목돼(이후 총선 패배가 겹쳐서) 자숙해 온 이 전 최고위원이 다음 행보를 '여러 모로' 생각해 볼 지형이 마련된 셈이다.

◆기사회생 밑천 든든,MB지지율 하락 속 구원투수될까

따라서 총선 직후 일각에서 나온 '은평을 총선 패배=이재오 정계 퇴진' 그림은 일단 폐기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한나라당 사정이 흘러가는 상황을 보면 이 전 최고위원이 총선에서 패배하고 곧장 정계에서 퇴물 취급을 받는 간단한 결론이 도출된다고 단언할 수 없다. 총선에 패배한 후지만 여러 변수가 얽히고 설켜 가고 있는 현상황에서 그가 기사회생할 여지가 더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우선 강재섭 당대표가 말한 당대표 사퇴, 조기 전당대회는 일단 한나라당 총선 대승으로 없던 일로 됐다. 이 전 최고위원으로서도 상처를 추스를 시간이 충분해진 상황이다.

친이 중에서도 그와 대립각을 세웠던 이방호 사무총장은 현재 개표 상황으로는 강기갑 의원이라는 어뢰에 맞아 격침되면서 은둔에 들어가 이 전 최고위원이 상대적으로 입지가 넓어진 셈이다.

이제 이 전 최고위원이 당과 정계에 복격적으로 복귀하면 가장 큰 적은 박 전 대표가 될 가능성이 높다.

물론 그녀가 이번 복당 문제에 대한 이 전 대통령의 애매한 태도에 반발, 당대표직에 도전할 수는 있다. 그러나 친박쪽 의원들이 대거 당을 떠난 상황을 생각하면 그녀의 세가 예전같을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시간이 흐를 수록 박 전 대표 입지는 좁아진다. 친박 의원들이 탈당 후 복당을 할 수 있을지도 아직은 명확하지 않다. 이상득 부의장이 언급한 당선 후 복당 허용은 아직 명확히 당론으로 결론나지 않은 '유화 제스처 중의 하나'일 뿐으로 굳어지고 있다.

이 전 최고위원이 다시 당 최고위원으로 화려하게 부활하거나 정책위에서 역할을 맡는 경우,그의 세력기반과 더해져 이명박 정부의 지지율 하락 상황을 정면돌파할 가능성이 높다.특히 서울에서 공천을 받은 33명의 친이 계열 중 14명은 '이재오 라인'이며(이중 상당수가 금배지를 다는 데 성공했다),경기지역 등 수도권도 이 의원과 가까운 사람들이 10명을 넘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들 중 상당수가 18대 국회에 등원했다. 또 지난 연초에 이재오 전 최고위원과 이상득 부의장의 동반 사퇴설이 나온 상황에 55명의 한나라당 정치인들이 성명을 낸 바 있는데, 이때 면면을 보면 정두언 의원이 모두 움직였다기 보다는 이재오 직계가 꽤나 세력과 연결망이 있음을 방증한다고 볼 수 있다.

일각에서는 "이재오를 측면 지원하는 당협위원장들이 적지 않다. 이는 이 전 최고위원이 7월 새 전당대호이후라도 새 역할을 하는 밑천이 될 것이다"라고 해석한다.

이 대통령으로서도 국회에 자신이 가장 믿을 수 있는 창구인 형을 둔 상황에 이재오 부활과 새 역할론을 부정적으로만 볼 필요는 없어 보인다.결국 이번 총선에서 금배지를 한 번 더 달지 못한 부분과 이 전 최고위원의 당내 입지는 직접적 상관관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나라당이 거대한 몸집을 키운 상황에 이 전 최고위원은 한 차례 고배를 들었지만 정치적 생명이 '끝난' 것으로 보기에 아직 속단하기 어렵다.

이 전 최고위원은 블로그글에서 천왕봉에 올랐을 때 경험한 변화무쌍한 일기 변화를 예로 들며 "좋은 세상 만들 때까지 어려운 이웃과 어깨동무하면서 살겠다"고 말했다. 이 같은 언급은 비록 낙선의 아픔을 겪긴 했지만, 임기 초반부터 위기를 맞고 있는 이명박 정부에서 나름의 해결사 역할을 하려는 게 아니냐는 관측을 하게 한다.

박 전 대표의 입지가 점차 좁아지고 있는 '긴급회동 성과 전무'의 정국 속에서 '박근혜 마크맨'으로 활약했던 이 전 최고위원이 어떤 방향을 잡을지 귀추가 더욱 주목된다.

투데이코리아 임혜현 기자 ihh@todayk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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