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소외 계층에서 적극적 참여계층으로 탈바꿈

대한민국 10대들이 드디어 움직이고 있다.

기존의 '정치적 무관심', '사회 여론 형성에서의 철저한 소외', '자기밖에 모르는 개인주의' 등으로 상징되던 10대들이 새로운 사회 여론 형성의 주체로, 더 나아가 새로운 사회 변혁의 주체로 당당히 부상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지금까지 대한민국의 10대들은 정치적·사회적 이슈에 대해 자발적으로 무관심과 침묵으로 일관하거나 강압적으로 무관심과 침묵을 강요당하는 세대였다.

지난 7-80년대 '유신독재', '광주민중항쟁', '6·10 항쟁' 등 우리 사회가 민주화를 향한 가시밭길을 걷고 있을 때도 민주화 투쟁은 지금의 386세대라 하는 당시 대학생들이 주도하면서 당시 3·40대 샐러리맨들이 넥타이 부대라는 이름으로 동참하는 형식으로 전개됐다.

이런 상황에서도 당시 10대 청소년들에게 있어 '유신독재의 부당성', '광주민중항쟁 과정에서 자행된 신군부의 민간인 학살',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같은 군사독재 정권의 인권유린 행위' 같은 것들은 단지 '시험에 나오지 않아 알 필요가 없는 것들'일 뿐이었고 그런 것들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것 자체가 '대학시험에서 1점이라도 더 얻기 위해 1초라도 아껴가며 영어단어를 암기하고 수학문제를 풀어야' 하는 10대들에게는 너무나 자기 분수를 모르는 행위였다.

간혹 여기에 관심을 갖은 10대 청소년들이 있다 해도 그 청소년이 그런 것들에 대해 어떤 발언이라도 하면서 관심을 표명하기만 하면 그 청소년에게는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가혹한 탄압이 가해지거나 '그게 시험에 나오냐? 그럴 시간 있으면 영어 단어 하나라도 더 외우라'는 면박이 쏟아지기 일쑤였다.

군사독재 정권이 종식되고 정치적 민주화가 상당 부분 진전됐던 90년대에도 사정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90년대에서 2000년대까지 우리 사회는 문민정부,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라는 3번의 민주정부를 경험했다.

이 기간 동안 우리 사회는 비록 아직도 미흡하다는 평가가 많지만 '신체·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 같은 형식적 민주주의의 요소들이 크게 신장됐다는 것이 일반적이 평가이지만 오로지 10대 청소년들에게는 '그림의 떡'일 뿐이었다.

민주화의 과실도 10대 청소년들에게는 '그림의 떡'

분명히 헌법에는 모든 국민은 신체·종교·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를 갖는다고 명시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10대 청소년들에게 있어 이런 권리는 '교육'이라는 미명 하에 철저히 억압됐고 대다수 10대 청소년들에게 여기에 어떤 문제제기를 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이제 10대 청소년들은 더 이상 '정치적으로 무관심하고 자발적으로 침묵을 지키는', '자신의 권리를 억압당해도 그대로 수용하는' 청소년들이 아니다.

이제 10대 청소년들은 정치적·사회적 이슈에 대해 당당히 자기 목소리를 내면서 사회 여론을 주도하고 변혁을 일으키는 당당한 주체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렇게 10대 청소년들을 달라지게 한 가장 큰 요인 중에 하나는 10대 청소년들에게 주어진 인터넷이라는 자유공간.

'안단테'라는 아이디를 기진 한 평범한 고등학교 2학년생은 지난 달 6일 <다음> 아고라 청원방에 이명박 대통령 탄핵을 요구하는 서명 운동을 시작했고 현재까지 130만 9925명이 이명박 대통령 탄핵을 요구하는 서명에 동참했다.

이 고등학생은 서명 운동을 시작하면서 “지난 3개월 동안 이명박 대통령은 국민들의 반발이 심한 대운하 건설 추진, 영어 몰입식 교육 추진으로 국가의 위신을 크게 추락시킨 것은 물론 국민들을 불안하게 했다”며 “보험 민영화를 추진해 국민의 정보를 보호해야 할 대통령이 국민의 정보를 오히려 팔아먹고 건강보험 당연지정제 완전 폐지가 아닌 완화라는 언어속임으로 국민들을 속이려고 한다”고 비판했다.

특정 재야나 진보단체도 아닌 일개 평범한 고등학생이 현직 대통령 탄핵 서명 운동을 벌인다는 것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상상도 할 수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현재 개최되고 있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 문화제에 참석한 10대 청소년들은 '이명박 대통령 탄핵'이라는 구호를 서슴지 않고 외치고 있다.

이렇게 10대 청소년들을 변하게 만든 것은 바로 10대 청소년들이 현재 제기되고 있는 '정치적·사회적 이슈'들이 자신들의 삶과 밀접히 관련돼 있다고 인식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정치적·사회적 이슈들이 본인의 문제임을 인식

여기에는 '정보의 바다'인 인터넷이 크게 작용했다. 인터넷 클릭 몇 번만 하면 광우병이 치료 방법도 없고 뇌를 직접 검사해야만 걸렸는지 알 수 있는 치사율 100%의 무서운 병이라는 것쯤은 누구나 알 수 있다. 또한 어디서 무슨 촛불 문화제가 있다는 것도 인터넷 클릭 몇 번으로 알 수 있고 촛불 문화제 관련 정보를 인터넷 카페 회원들과 실시간 공유할 수 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전면 개방을 주요 내용으로 지난 달 18일 타결된 한·미간 '미국산 쇠고기 수입위생조건' 개정 협상에서 정부가 우리의 검역주권 등을 다 내준 것으로 드러나자 이에 대한 국민의 비난 여론은 빗발치기 시작했고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위험에 대한 우려는 높아만 갔다.

이는 10대 청소년들에게는 본인의 생명과 직결되는 문제로 받아들여졌다.

백보를 양보해 광우병 위험이 있는 미국산 쇠고기가 국내에 유통되더라도 일반 소비자들은 안 사먹으면 된다고 하더라도 10대 청소년들은 사실상 미국산 쇠고기를 거부할 권리가 박탈된 상태인 것이다.

거의 모든 10대 청소년들이 학교 급식을 먹기를 사실상 강제당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급식 메뉴 선정에 있어서도 어떠한 권리도 없는 실정이다.

즉 급식 메뉴에 광우병 위험이 있는 미국산 쇠고기가 포함되더라도 그것을 거부할 권리도 없이 그냥 먹어야 하는 것이 현재 한국의 10대 청소년들이다.

또한 급식업체들로서는 이윤을 위해 비싼 한우 대신 값이 싼 미국산 쇠고기를 공급할 가능성이 크다.

즉 미국산 쇠고기 수입 전면 개방은 10대 청소년들에게 자신의 생명을 걸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3일 서울 광화문 인근에 위치한 청계광장에서 '미친소닷넷'이라는 사이트 주최로 개최된 '광우병 소 수입반대 범국민 촛불문화제'에서 어느 중학교 3학년 여학생이 한 “5년 후에는 내가 21살로 그 때가서 연애도 하고 싶은데 광우병 쇠고기 수입으로 인해 연인을 잃고 싶지 않다”며 “16살인 나도 아는데 나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 이명박 아저씨는 왜 모르냐?”는 말은 철없는 10대 들의 말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절규였던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현재의 10대 청소년들은 80년대 운동권 학생들 같은 어떤 이상주의자들이 아니고 진정한 현실주의자들인 것이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 문화제가 끝난 후에는 어김없이 10대 청소년들이 자발적으로 초와 쓰레기들을 치우고 분리수거하는 장면이 연출된다.

쓰레기들을 현장에 남기면 보수언론 등에서 이를 트집잡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문화제를 매도한다는 것이다. 즉 적에게 공격할 구실을 제공해서는 안 된다는 것.

이제 진정한 현실주의자들이 한국 사회를 변혁시키는 주체로 등장하고 있다.

투데이코리아 이광효 기자 leekhyo@todayk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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