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존중을 빙자한 현대판 고려장인가

'국민10명중 7명 정도 소극적 안락사 찬성'

인간으로서 지녀야 할 최소한의 품위를 지키면서 죽을 수 있게 하는 행위나 견해, 의사는 환자의 동의 없이 원칙적으로 치료 행위를 할 수 없다는 것으로, 소극적 안락사라 불리는 (존엄사) 인정여부를 놓고 뜨거운 공방이 예상된다.

뇌사상태인 A(여·75)씨의 가족들이 지난 11일 헌법재판소에 '존엄사'에 대한 법률을 제정하지 않은 것은 인간의 존엄성에 위배된다며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이들은 앞선 9일 “어머니가 병원에서 검사를 받다 뇌사상태에 빠졌다”며 의미 없는 연명치료를 중단해 달라며 인간의 존엄성을 들어 법원에 가처분신청을 제출했다.

가족들을 대리해 사건을 맡은 신현호 변호사는 12일 "이 환자의 경우 뇌의 상당부분이 괴사한 상태로 전형적인 존엄사 사건"이라며 "현재 우리 법에는 존엄사에 대한 법도 제정돼 있지 않고, 국민건강보험법의 경우 무의미한 연명치료에도 치료비를 계속 지원함으로써 이를 방치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에서 존엄사 집행을 허용해달라며 법원에 가처분신청을 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나라별 입법 활동

미국의경우 오래전부터 안락사에 관한 많은 논쟁이 있어왔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미국은 주(州) 마다 차이가 있지만 40개주가 환자가족의 동의 등 엄격한 요건 아래 생명보조장치를 제거하는 수준의 소극적 안락사(존엄사) 행위는 대체로 인정하나 적극적 안락사는 인정하지 않고 있다.

캘리포니아 주에서는 1988년 및 1992년 안락사법제화를 위한 주민투표가 있었으나 모두 부결됐다. 워싱턴 주에서는 1991년 죽을 때 의사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권리를 인정한 법안을 주민투표에 붙였으나 부결됐다. 미 오리건 주는 주민투표를 거쳐 말기환자가 의사에게 극약을 처방받아 스스로 복용해 자살할 수 있게 하는 존엄사(尊嚴死)법을 주민투표를 거쳐 1997년 10월부터 시행해왔고 1998년에만 15명의 말기환자들이 이 법을 통해 합법적으로 극약을 삼키고 고통을 마감했다.

이에 대해 미 의회 공화당 의원들이 제동을 걸고 나서 미 연방 하원은 1999년 10월 27일 '인간생명에 대한 존중' 을 표방하며 극약을 자살용으로 사용할 수 없도록 금지해 존엄사법을 무력화시키는 '고통 경감법'안을 통과시켰다. 극약을 자살용으로 처방하지 못하도록 금지한 법안이 미 하원을 통과한 다음날인 같은 달 28일 오리건 주 주민들은 포틀랜드에 모여, 하원의 행동은 주 의회가 확정해 합법화한 '존엄사법' 을 무시하는 횡포라며 시위를 벌였다.

영국은 19세기 말부터 안락사에 대한 논쟁을 벌였고, 안락사를 합법화하려는 입법제안이 몇 차례 있었으나 지금도 법률로는 안락사가 허용되지 않고 있다. 다만 제한적으로 존엄사를 인정하는(예컨대 3년 이상 식물인간상태로 있던 자에게 영양공급 장치를 제거해도 좋다는 1993년 판결) 판결이 선고되고 있어 소극적 의미의 안락사는 광범위하게 이뤄지고 있다.

호주는 1996년 안락사를 법제화했다가 6개월 만에 폐기하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호주연방 8개주 가운데 3개주가 생명연장장치를 제거하는 의료행위를 법으로 허용하고 있고 나머지 주들도 관습법상 이를 인정하고 있다.

프랑스는 뇌사상태라도 심장박동이 완전히 멎지 않는 한 안락사를 허용하지 않을 정도로 엄격한 나라다. 동물을 인위적으로 죽이는 행위도 형사 처분 대상이다. 그러나 최근 프랑스에서도 안락사에 대해 제한적으로 허용해야 한다는 여론이 확산되고 있고 프랑스 정부는 2000년 9월 말기 환자들이 편안하게 삶을 마감할 권리를 인정키로 하고 구체적 조치를 마련하겠다고 발표했다.

네덜란드는 판례를 통해 엄격한 요건 하에 존엄사나 안락사를 허용해왔기에 안락사에 관하여 가장 관용적인 나라로 알려져 왔다. 그리고 2000년11월 네덜란드 하원은 세계 최초로 불치병 환자의 안락사를 인정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네덜란드 법안은 안락사 허용을 위해서는 세 가지 조건 즉, 대상자가 불치의 환자여야 하고 고통이 견딜 수 없을 만큼 심하며 환자가 이성적인 판단으로 안락사에 동의해야 의사가 실행에 옮길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네덜란드에는 1996년 이후 '안락사' 법안이 통과되기까지 2천565건의 안락사가 있었던 것으로 공식 집계되고 있으며 안락사의 90%는 말기 암 환자를 대상으로 실시됐다. 이 법안의 통과는 그동안 네덜란드에서 관례상 묵인돼온 안락사를 사실상 합법화한 것이다.

♦안락사의 찬반 여론

찬성여론의 주장은 '안락사'나 '존엄사'는 살 권리에 대해 편히 죽을 권리, 인간답게 죽을 권리로 대립되는 개념으로 간병에 따르는 어려움이나 경제적 고통, 의사의 과잉치료도 부수적인 문제로 제기된다. 존엄사의 경우 환자의 의식회복이 불가능하다는 의사의 진단이 있고, 병세가 악화돼 생명이 위험할 경우, 생명연장이 비인도적이라고 인정돼 근친자의 승낙이나 식물인간 상태를 예견한 환자의 의사표명이 있을 경우 허용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대여론의 경우 안락사는 본인의 죽음에 대한 승낙의사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생명을 단축시키므로 현행법상 살인죄에 해당되며, 오직 하나 밖에 없고 오직 한 번 밖에 있을 수 없는 살 권리는 천부적이고 절대적인 권리라며 맞서고 있다.

2005년 한림대 이인영교수팀은 전국 16개 시,도 지역에서 전체 인구 비율에 따라 추출한 조사대상자 1020명을 대상으로 한 표본조사에 따르면 국민10명중 7명 정도가 소극적 안락사에 찬성하는 것은 물론 절반이상은 적극적 안락사에도 동의하고 있다는 조사결과가 나왔다.

이 자료는 3년 전에 나온 조사결과로 최근 추이로 볼 때 찬성비율은 증가 했을 거라는 소리가 들려온다. 한국뿐만 아니라 미국, 일본 등 세계각지에서 안락사 논쟁이 일고 있는 가운데 나온 결과여서 법안 통과여부에 따라 사회적 큰 파장을 불러일으킬 전망이다.

투데이코리아 이민재 기자 sto@todayk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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