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서 별까지 가신 그대, 참 아름답습니다." 故박경리 선생의 만장에 작가 박범신은 이렇게 글을 남겼다. 우리 문단의 커다란 별, 작가 故박경리 선생이 지난 9일 고향 경남 통영시 산양읍 양지공원에 안장됐다. 지난해 7월 폐암 선고를 받은 뒤 수술과 항암치료를 거부한 채, 강원도 원주에서 머물던 그녀는 결국 2008년 5월 5일 오후 2시 45분 세상을 떠났다. 선생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아산병원에는 그녀의 죽음을 애도하는 조문 행렬이 끊이지 않았다. 금관문화훈장을 직접 추서한 이명박 대통령을 비롯해, 김대중 전 대통령과 송월주 전 대한불교 조계종 총무원장 등 각계 각층의 추모객들이 몰려왔다.

작가 故박경리 선생은 1955년에 문단에 데뷔한 이래 50여년의 긴 세월동안 다양한 작품을 통해 인간소외와 인간의 존엄성, 사랑과 생명존중 뿐만 아니라 민족의 비극적 역사에서 비롯된 삶의 모습 등을 그려냈다. 1926년 10월에 경남 통영에서 태어난 선생은 전주 고등 여학교를 졸업하고, 1946년 결혼해 1남 1녀를 낳았으나 곧 남편은 공산주의자로 몰려 투옥하고, 전쟁 통에 남편과 아들을 잃는 큰 고통을 겪는다. 이후 황해도 연안여자중학교 교사로 재직하던 중 작가 김동리의 추천을 받아 단편 '계산'을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다.

◆ 50여년간 집필 활동

작품 활동 초기 그녀는 '전도', '불신시대', '암흑시대' 등을 발표 하는데, 특히 '불신 시대'는 부정과 악에 대한 강렬한 고발의식으로 제3회 현대문학 신인상을 수상하게 된다. 신인상을 거머쥔 그녀는 여류 작가로서 서서히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실제로 그녀의 초기 작품들은 대체로 전쟁 이후 미망인들의 삶, 또는 전후 직후 피폐해진 우리 삶의 모습을 예리한 시각으로 그려내고 있다. 이후 1959년 장편 소설 '표류도'를 발표한 뒤 제3회 내성문학상을 수상한 것을 계기로 장편 소설 집필을 시작하게 된다. 사회와 현실에 대한 비판성이 강한 '김약국의 딸들','푸른 은하,''파시'등 사회의 객관적인 모습을 포착해 그려내며 이전에 발표한 작품과는 달라진 모습을 보이며 전환기를 맞이하게 된다. 1964년 선생은 장편 '시장과 전장'으로 제2회 한국 여류 문학상을 수상하게 되는데, 이 장편은 그 시대 작품으로는 드물게 전쟁과 이데올로기에 대해 객관적인 시각을 제시하는 동시에 진보적인 기록을 남기며 역사를 정면으로 바라보고자 하는 시도를 한 것으로 주목을 받았다.

다양한 작품 활동을 해오던 故박경리 선생은 1969년 '토지'를 연재하기 시작한다. 구한말에서 시작해 일제강점기와 해방에 이르는 대하 장편으로 한국의 근대사를 바탕으로 우리 민족의 변천사를 그려놓았다. 25년에 걸쳐 모두 16권으로 완성한 '토지'는 원고지 분량이 4만여 장 달하며, 등장인물은 700여명에 이른다. '토지'는 경상남도 하동 평사리의 대지주 최씨 가문의 이야기로 시작해 1945년 광복까지 4대의 걸친 인물들의 다양한 삶의 모습과 의지를 보여준다.

◆ 25년에 걸친 대하소설 '토지'

한편 선생은 '토지'를 집필하던 1971년 9월 유방암 수술을 하고도 보름 만에 퇴원에 집필에 몰두했다. 그는 당시 심정을 두고 “글을 쓰지 않는 내 삶의 터전은 아무 곳에도 없었고, 목숨이 있는 이상 나는 또 글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주술(呪術)에 걸린 죄인인가. 내게서 삶과 문학은 밀착되어 떨어질 줄 모르는, 징그러운 쌍두아(雙頭)였더란 말인가”라고 말하기도 했다.
'토지'는 영어, 일본어, 프랑스어로 번역돼 대외적으로도 큰 호평을 받았으며, 다양한 장르로 각색되기도 했다. 특히 드라마는 총 3번에 걸쳐 만들어져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며 기존 독자층 외에도 많은 이들에게 우리 민족의 삶의 모습을 전했다.

1992년 9월 소설 '토지'를 완결한 故박경리 선생은 1999년 강원 원주시에 '토지문화재단'과 '토지문화관'을 설립했다. '사고(思考)하는 것은 능동성의 근원이며 창조의 원천입니다. 그리고 능동성이야말로 생명의 본질입니다. 하여 능동적인 생명을 생명으로 있게 하기 위하여 작은 불씨, 작은 씨앗 하나가 되고자 하는 것이 설립의 뜻입니다' 고 설립의의를 밝혔다. 이곳에서 선생은 많은 예술인들을 위해 무료 창작 공간을 제공하고, 스스로 텃밭에서 직접 고구마와 당근, 옥수수 등과 같은 채소들을 키우며 지냈다. 청소년 문화 교육 활동 및 토론의 장을 마련하고, 시민, 학생이 참여하는 환경 교육 프로그램 개발하는 등의 부가적인 활동을 통해 고인의 뜻을 펼치는 장을 만들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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