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정부 문서 뿐 아니라 주민번호·범죄 기록까지 유출 위험

다사다난했던 제17대 국회도 5월 29일이면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30일이면 제18대 국회가 시작된다.

물론 지난 4월 18일 이뤄진 한·미간 '미국산 쇠고기 수입위생조건' 개정 협상 타결로 미국산 쇠고기 수입이 전면 개방된 것을 계기로 정치권은 17대 국회가 끝나는 지금 이 순간까지 격한 대립으로 치닫고 있지만 지금 국회에서는 끝나가는 17대 국회를 마무리하고 다가오는 18대 국회를 맞이하기 위한 준비가 분주하다.

<사진: 의원회관 복도에 의원실에서 버리는 각종 문건들이 수북히 쌓인 채 방치돼 있다>
하지만 문제는 끝나가는 17대 국회를 마무리하는 과정에서도 결코 되풀이되서는 안 될 위험한 구태가 반복되고 있다는 것.

지난 4월 실시된 제18대 총선 결과 여·야를 통틀어 많은 현역 의원들이 낙선했고 이들은 이번 주까지 의원실을 비워줘야 한다.

국회의원은 대외비 문건도 손쉽게 입수 가능

또한 당선된 현역 의원 중에서도 의원실을 옮겨야 할 의원들이 많아 현재 국회 의원회관은 온통 이사 준비로 한창 바쁘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각 의원실에서 보유하고 있던 주요 문건들이 무방비로 버려지고 있어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국회는 입법기관인 동시에 국정의 감시·비판 기관이다. 이는 국회의원은 일반 국민들은 감히 접근조차 하지 못하는 국가의 주요 대외비 문건 등을 손쉽게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로 국정감사 기간에는 국회의원들이 각 정부부처에 국정감사 관련 각종 자료를 요구하고 여기에 정부부처는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면 요구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각 의원실에는 의원들이 의정활동을 하면서 확보한 주요 정보 문건들이 빼곡이 들어차 있다.

그런데 낙선 의원들은 의원실을 비우고 당선 의원들은 의원실을 옮기는 과정에서 이런 주요 정보 문건들이 무방비로 버려지고 있는 것이다.

지난 5월 28일 오후 의원회관 복도.

각 의원실 문 앞에는 의원실에서 버리기 위해 쌓아둔 각종 책자와 문건들이 수북히 쌓여 있었다.

기자는 A 의원의 의원실 문 앞에서 한 서류 뭉치를 발견했다. 김경한 법무부 장관 인사청문 요청서였다.

여기에는 김경한 법무부 장관의 각종 증명서와 주소, 집 전화번호, 주민등록번호까지 고스란히 적혀 있었다.

심지어 김경한 법무부 장관 가족들의 각종 신상정보와 통장 계좌번호, 재산내역까지 자세히 적혀 있었다.

이렇게 개인 정보들이 자세히 적혀 있는 문건들이 각 의원실 문 앞에 수북히 쌓여 있는 것이다.

개인 신상 정보도 무방비 유출 위험

해당 의원실 관계자는 “문 앞에 쌓여 있는 문건들은 버릴 것이기 때문에 문 앞에 쌓아 놨다”며 “좀 있으면 인부들이 가져가 파쇄하든지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의원실에서는 하나같이 문 앞에 쌓아 놓은 각종 문건들에 대해 '버릴 문건들이므로 누가 가져가도 상관없다'는 듯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다.

즉 의원실을 지나가는 사람이면 누구나 의원실 문 앞에 쌓여 있는 각종 문건들을 가져가서 앞에서 밝힌 각종 개인 정보를 입수하고 유출할 수 있는 상황인 것이다.

더 심각한 것은 김경한 법무부 장관 같이 검증을 받아야 하는 고위 공직자가 아닌 힘 없는 일반 시민들의 개인 정보도 무방비로 유출될 수 있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기자는 B 의원의 의원실 문앞에 수북히 쌓여 있는 문건들에서 '경인여자대학 재단 비리 백서'라는 책자를 발견했다.

의원실 관계자는 “문 앞에 쌓아놓은 문건들은 모두 버릴 것”이라며 “가져가고 싶으면 가져가라”고 말했다.

그런데 '경인여자대학 재단 비리 백서'라는 책자에 첨부돼 있는 증빙자료 중에는 한 시민이 임금체불 건으로 지방노동사무소에 진정을 냈다가 나중에 임금을 받아 진정을 취하하면서 제출한 '진정취하자술서'가 있는데 여기에는 진정을 냈던 시민의 이름과 주민등록번호가 적혀 있다.

김경한 법무부 장관은 엄격한 도덕적 기준에 의해 검증을 받아야 하는 고위 공직자이므로 어느 정도의 개인 정보 유출은 불가피하다 치더라도 힘 없는 일반 시민의 개인정보까지 이처럼 무방비로 유출되고 있는 것이다.

또한 기자가 발견한 국방부 국정감사 자료에는 군 형법을 위반해 군사법원에 기소돼 실형을 받은 사람들의 소속 부대와 보직, 계급, 주요 범죄사실, 나이 등이 자세히 기록돼 있었다. 이름도 한 두 글자가 가린 채 공개돼 있었다.

국회 사무처 지원자의 각종 개인 정보가 자세히 기록돼 있는 이력서도 무방비로 버려지고 있는 실정이다.

이 외에도 현재 의원실에서 이처럼 무방비로 버리고 있는 문건에는 국가기관인 '한국 원자력 안전 기술원'의 대외비 문건도 포함돼 있어 주요 국가 정보가 무방비로 유출될 위험성마저 제기되고 있다.

사실 주요 문건들의 무방비 폐기를 막기 위해 각 의원 사무실에는 문서 파쇄기가 지급돼 있지만 각 의원실에서는 이렇게 주요 문건들을 무방비로 버리고 있다.

버려진 문건과 책자들은 경기도 부평에 있는 대형 파쇄 공장에서 파쇄된다.

투데이코리아 이광효 기자 leekhyo@todaykorea.co.kr

저작권자 © 투데이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