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계 반발… 관계부처 협의도 난항

-“수입가격 공개가 시장친화적 정책인가”-
- “성과 없으면 정책 신뢰도만 하락할 것”-

정부가 최근 치솟고 있는 소비자 물가를 안정시키기 위한 대책으로 내놓은 주요 수입 생필품 100여개에 대한 가격 공개가 시작도 전에 삐걱거리고 있다.

정부는 지난 2일 최중경 기획재정부 제1차관 주재로 '제3차 서민생활안정 태스크포스 회의'를 열어 물가안정 및 서민생활 안정을 위한 대책으로 100여개에 이르는 생필품 수입가격을 공개하기로 했다.

이에 관세청은 지난 22일 생필품 수입가격을 공개하기로 했으나 여러 이유를 들어 수입가격 공개를 29일로 미뤘다. 그러나 이마저도 여의치 않자 공개 일자를 30일로 다시 미루는 등 수입 생필품 가격 공개가 시작 전부터 난관에 봉착한 모습이다.

◆시작도 안했는데…=

관세청은 지난 3월 정부가 공개한 이른바 'MB 물가지수'에 포함된 52개 생활필수품 중 17개 수입품과 소비자 물가지수에 포함되는 516개 품목 중 90여개를 선정해 수입가격과 국내 판매가격을 2주간 평균가격으로 홈페이지에 실시간으로 공개할 예정이었다.

관세청은 수입단가 공개를 통해 국민의 알권리를 충족시키는 한편 치솟는 물가로 인해 시름을 앓고 있는 서민경제를 안정시키기 위해 이 같은 대책을 시행키로 했다.

당초 정부가 지난 2일 '제3차 서민생활안정 태스크포스 회의'에서 내놓은 물가안정 대책에는 주요 생활필수품의 수입단가를 공개하고 병행수입을 활성화하는 등을 통해 생필품의 가격을 안정시키도록 하는 방안과 함께, 국제 곡물가격 상승에 대한 대응능력 강화 및 공공부문 에너지 절약 방안 등을 담고 있었다.

이에 따라 밀가루·쇠고기·돼지고기·멸치·고등어·배추·무·파·양파·마늘·유아용품·바지·휘발유·경유·LPG·샴푸 등 100여개 생필품을 원산지별·브랜드별로 묶어 평균 수입단가를 관세청 홈페이지에 공개하기로 했다.

예를 들어, 안경테는 원산지별로 가격 차이가 심한 만큼 제조국가별로 묶어 평균 수입단가를 공개하고, 청바지의 경우 고가 브랜드 5개의 평균 수입단가를 제공하는 등 브랜드별로 공개한다는 것. 그러나 공개 대상 수입 생필품은 대부분 수입가격과 한국 내 판매가격의 차이가 크다.

이와 관련 대형 유통업계 한 관계자는 “외국에서 수입해 시중에서 팔리고 있는 수입의류의 가격은 해당 브랜드 본국에 비해 대략 50% 가량 비싸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특히 백화점 등지에서 팔리는 고가 브랜드의 경우 이런 편차가 더 크고 다른 상품들 특히 화장품의 경우 더욱 차이가 심하다”고 덧붙였다.

따라서 수입가격이 공개돼 브랜드 본국에 비해 국내 판매가격이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비싸다는 사실이 알려지게 되면 소비자의 반발로 이어질 것은 당연한 만큼, 수입업체들로서는 영업에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이와 함께 국내외 가격을 공개할 때 어떤 브랜드를 넣고 어떤 브랜드는 제외할 것인지에 대한 형평성 문제도 거론됐다.

이에 따라 관세청은 당초 공개일이었던 지난 22일에 이어 지난 27일 공개일자를 두 번째 연기하며 “정보공개에 따른 법률적 검토를 하고 국세청과 브리핑 발표 시기를 조정하다보니 공개가 늦춰졌다”며 수입가격 공개 일자가 연기된데 대해 설명했지만, 일각에서는 일부 수입업체들의 수입가격 공개에 대한 반발이나 공개업체 선정 기준 등에 따른 부처간 협의가 원활치 않았던 게 더 큰 이유라고 보고 있다.

이와 관련, 생필품 수입가격 공개를 앞두고 기획재정부와 지식경제부, 외교통상부 등 관련 부처간에 품목 선정이나 브랜드 산출 등을 두고 논란이 치열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수입가격 공개, 실효성은?=

결국 관세청은 해당 업계와 관계부처의 이의제기가 잇따르자 브랜드 실명을 공개하지 않고 공개대상 업체 숫자도 품목별로 다르게 하기로 했다.

이는 정부의 당초 발표와는 다른 것으로, 수입단가 공개가 정확히 해당 제품의 수입가를 공표하는 것이 아니라 5~6개 제품의 평균 수입가를 공개하는 것으로 실제 가격인하 효과를 거둘지는 의문이다. 또 수입가격이 치솟을 대로 치솟은 지금 수입단가를 공개하더라도 물가안정에 효과를 거둘 수 있겠냐는 반론도 나오고 있다.

민간경제연구소 한 관계자는 “정부가 52개 품목에 이어 100여개의 생필품 가격을 규제하는 등 특정 품목을 규제해 물가를 잡겠다는 대책을 내놓고 있는데 이는 근본적인 대책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면서 “국내 상황뿐 아니라 대외 여건 자체가 좋지 못한 상태에서 이런 정책이 성과를 내지 못하게 되면 오히려 정부 정책에 대한 신뢰도만 하락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또 “특정 품목에 대한 규제로 물가를 안정시키는 방식이 아닌 보다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이 나와야 한다”며 “특히 서민들에게 부담이 큰 주거비와 교육비 문제에 대한 해법이 우선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소비자단체 한 관계자는 “정부는 시장 친화적인 정책을 편다고 얘기하고는 있지만, 문제는 과연 현 정부가 내놓는 여러 시도들이 시장친화적인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든다”면서 “보다 근본적인 문제에는 별다른 대책도 없이 그저 물품 몇 가지에 대한 가격만 낮춘다고 그게 실효성이 있겠느냐”고 꼬집었다.

이어 “정부가 이명박 대통령이 내놓은 747공약(매년 7%의 경제성장, 4만불 시대, 7대 경제대국)을 아직도 포기하지 않고 무리하게 성장만을 부르짖는 것이 아니라면 물가안정을 최우선과제로 놓고 정책을 시행하겠다는 뜻을 국민들에게 전달하도록 노력해야 하는데 그런 모습이 보이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결국 정부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 국민들의 불안 심리가 인플레이션과 맞물려 물가안정에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런 지적과 함께 업계에서도 공정위와 소비자원 등에서 캔맥주, 의류, 자동차, 화장품 등의 국내외 가격차를 조사해 공개하는 마당에, 수입가격을 가장 먼저 알 수 있는 부처가 이제와 공개하겠다는 것은 전형적인 뒷북행정 아니냐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투데이코리아 서경환 기자 skh@todayk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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