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역주권, 위생조건 강도 등에서 하늘과 땅 차이

'미국산 쇠고기 및 쇠고기 제품 수입위생조건' 농림수산식품부 장관 고시 철회와 쇠고기 재협상 등을 요구하는 시민과 대학생, 중·고생들의 촛불시위가 국민들의 전면적인 정권퇴진 운동으로까지 확산되고 있다.

이에 위협을 느낀 정부여당은 '미국산 쇠고기 및 쇠고기 제품 수입위생조건' 관보게재 유보와 쇠고기 재협상 추진을 결정했다.

이는 현 상황에서 미국산 쇠고기 고시 관보게재를 강행할 경우 국민들과 야당들이 정권퇴진을 요구하며 협공을 가할 가능성이 크고 그럴 경우 정부여당은 정권을 유지하는 것조차 어렵게 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시각이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미국만 우리나라에 쇠고기를 수출하는 것이 아닌데 왜 유독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대해서만 이렇게 시민들과 대학생, 중·고생, 심지어 10살 미만의 어린아이들까지 '이명박 물러나라'를 외치며 저항하느냐는 것이다.

여기에 대한 의문은 '미국산 쇠고기 및 쇠고기 제품 수입위생조건'과 한국과 미국 외의 다른 나라 사이에 맺어진 '수입위생조건'을 비교해보면 어느 정도 풀릴 수 있다.

이에 <투데이코리아>에서는 '미국산 쇠고기 및 쇠고기 제품 수입위생조건'과 한국과 미국 외의 다른 나라 사이에 맺어진 '수입위생조건'을 심층 비교·분석했다.

미국 외에는 모두 광우병 발생한 적 없어

현재 우리나라는 뉴질랜드, 멕시코, 미국, 호주로부터 쇠고기를 수입하고 있다. 그런데 중요한 점은 이 중 미국 빼고는 모두 광우병이 단 한 번도 발생한 적이 없다는 것. 우리나라는 캐나다로부터도 쇠고기를 수입했었으나 지난 2003년도에 캐나다에서 광우병이 발생한 이후 캐나다로부터도 쇠고기를 수입하지 않고 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 중 뉴질랜드와 호주는 광우병으로부터 세계에서 가장 안전하다고 공인받은 나라라는 것이다.

OIE(Office International des Epizooties, 국제수역사무국)는 지난 해 5월 25일 제75차 OIE 정기 총회에서 호주, 뉴질랜드, 아르헨티나, 싱가폴, 우루과이의 'BSE(Bovine Spongiform Encephalopathy, 소해면상뇌증: 일명 광우병) 위험등급'을 '위험이 경미한 국가'로 평가했다.

즉 호주, 뉴질랜드, 아르헨티나, 싱가폴, 우루과이는 광우병으로부터 전 세계에서 가장 안전하다는 것.

미국은 그 다음 단계인 '위험이 통제되는 국가'로 평가됐다.

OIE가 미국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하는 기구라는 것은 사실상 누구도 부인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호주, 뉴질랜드, 아르헨티나, 싱가폴, 우루과이가 미국보다 훨씬 광우병으로부터 안전하다는 평가를 받은 것은 상당한 객관성을 가지는 결과라 할 것이다.

또한 호주와 뉴질랜드에서는 미국과 달리 많은 전문가들이 광우병 발생 원인으로 지목하고 있는 동물성 사료를 사용하지 않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광우병이 발생한 적도 없고 광우병으로부터 세계에서 가장 안전하다고 공인받았을 뿐만 아니라 동물성 사료도 쓰지 않고 있는 호주와 뉴질랜드의 수입위생조건이 '미국산 쇠고기 및 쇠고기 제품 수입위생조건'보다 훨씬 엄격하다는 것이다.

가장 극명한 차이를 보이는 것은 수출국에서 광우병이 발생했을 시의 규정.

지난 달 29일 확정된 '미국산 쇠고기 및 쇠고기 제품 수입위생조건' 제5조에서는 “미국에 BSE가 추가로 발생하는 경우, 미국 정부는 즉시 철저한 역학조사를 실시해야 하고 조사 결과를 한국 정부에 알려야 한다”며 “추가 발생 사례로 인해 OIE가 미국 BSE 지위 분류에 부정적인 변경을 인정할 경우 한국 정부는 쇠고기와 쇠고기 제품의 수입을 중단할 것”이라며 미국에서 추가로 광우병이 발생하더라도 OIE가 미국의 광우병 등급을 낮추지 않으면 한국 정부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중단할 수 없도록 돼 있다.

다만 '미국산 쇠고기 및 쇠고기 제품 수입위생조건' 부칙 6조에서는 “본 수입위생조건 제5조의 적용과 관련해 한국 정부는 GATT 제2O조 및 WTO SPS 협정에 따라 건강 및 안전상의 위험으로부터 한국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수입중단 등 필요한 조치를 취할 권리를 가진다”고 규정해 미국에서 추가로 광우병이 발생하면 한국 정부가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중단할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하고 있다.

참고로 GATT(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 General Agreement on Tariffs and Trade)제20조는 “이 협정의 어떠한 규정도 체약 당사자가 이러한 조치를 채택하거나 시행하는 것을 방해하는 것으로 해석되지 아니한다”며 '인간, 동물 또는 식물의 생명 또는 건강을 보호하기 위하여 필요한 조치'를 그 중 하나로 제시하고 있다.

WTO(세계무역기구, World Trade Organization) SPS(Sanitary and Phytosanitary Measures, 위생검역) 협정 제5조 7항은 “관련 과학적 증거가 충분하지 않은 경우, 회원국은 이용가능한 적절한 정보를 토대로 잠정적으로 위생 검역 조치를 취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해 정태인 성공회대 겸임교수는 “부칙 6조는 GATT와 WTO에서 인정하고 있는 권한을 나열한 것 뿐이지 아무 의미가 없다”며 “만약 미국에서 광우병이 발생해 우리나라가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중단하면 미국은 '미국에서의 광우병 발생이 한국민의 건강을 위협한다는 과학적 근거를 제시하라'며 미국산 쇠고기 수입 중단을 저지하려 들 것”이라고 말했다.

호주·뉴질랜드, 구제역 등 발생해도 즉시 수입 중단

하지만 지난 1998년 12월 7일 발효된 '호주산우제류동물및그생산물수입위생조건'과 '뉴질랜드산우제류동물및그생산물수입위생조건'은 정반대이다.

먼저 '호주산우제류동물및그생산물수입위생조건'에 의하면 호주는 최근 5년 동안 광우병이 단 한 번도 발생한 적이 없어야 한국으로 쇠고기 등을 수출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최근 2년 동안 구제역·수포성구내염·돼지수포병, 최근 3년 동안 우역·가성우역(Peste des petits ruminants)·우폐역·럼프스킨병·리프트계곡열·양두·아프리카돼지콜레라가 단 한 번도 발생한 적이 없어야 한국에 쇠고기 등을 수출할 수 있다.

만약 위에서 열거한 질병들 중 단 하나라도 호주 내에서 발생하면 호주는 즉시 한국으로의 쇠고기 등의 수출을 중지해야 한다.

이는 뉴질랜드도 마찬가지다.

'뉴질랜드산우제류동물및그생산물수입위생조건'에 의하면 뉴질랜드는 최근 2년 동안 구제역·수포성구내염·불루텅·돼지수포병, 최근 3년 동안 우역·가성우역(Peste des petits ruminants)·우폐역·럼프스킨병·리프트계곡열·양두·아프리카돼지콜레라, 최근 5년 동안 광우병이 단 한 번도 발생한 적이 없어야 한국에 쇠고기 등을 수출할 수 있다.

만약 뉴질랜드 내에서 위에서 열거한 질병들 중 단 하나라도 발생하면 뉴질랜드는 즉시 한국으로의 쇠고기 등의 수출을 중지해야 한다.

차이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바로 작업장 승인권에 있어서도 '미국산 쇠고기 및 쇠고기 제품 수입위생조건'과 '호주산우제류동물및그생산물수입위생조건'·'뉴질랜드산우제류동물및그생산물수입위생조건'은 가히 대조적인 차이를 보이고 있다.

'호주산우제류동물및그생산물수입위생조건'에서는 “수출육류를 생산하는 육류작업장(도축장, 가공장 및 보관장)은 수출국 정부기관이 지정한 시설로서 한국 정부에 사전 통보하고 그 중 한국 정부가 현지 점검 또는 기타의 방법으로 승인한 작업장이어야 한다”며 “한국 정부 수의당국은 한국수출용 육류작업장에 대한 현지위생점검을 실시할 수 있으며, 위생점검결과 부적합할 시 해당 작업장산 육류의 한국수출을 금지할 수 있다”고 규정해 육류작업장 승인권과 취소권을 한국 정부에 확실히 부여하고 있다.

이는 '뉴질랜드산우제류동물및그생산물수입위생조건'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지난 달 29일 확정된 '미국산 쇠고기 및 쇠고기 제품 수입위생조건'에서는 "미국 농업부의 검사 하에 운영되는 미국의 모든 육류작업장은 한국으로 수출되는 쇠고기 또는 쇠고기 제품을 생산할 자격이 있다"고 규정해 육류작업장 승인권이 미국 정부에 있음을 밝히고 있다.

또한 '미국산 쇠고기 및 쇠고기 제품 수입위생조건'에서는 “한국 정부는 한국으로 쇠고기 및 쇠고기 제품을 수출하는 육류작업장 중 대표성 있는 표본에 대해 현지 점검을 실시할 수 있다”며 “현지점검 결과, 본 수입위생조건에 대한 중대한 위반을 발견했을 경우, 한국 정부는 그 결과를 미국 정부에 통보하고, 미국 정부는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하며 취한 조치를 한국 정부에 알려야 한다”고만 규정하고 있어 육류작업장에서 일어나는 수입위생조건 위반에 대한 규제 수단을 한국 정부에 전혀 부여하지 않고 있다.

투데이코리아 이광효 기자 leekhyo@todayk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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