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 더 싼데 없나요

주요소에 줄을 섰다. 앞의 차가 두어대 빠져 나간다. 움찔 움찔 다가갔다.드디어 내 차례가 왔다. 나는 잘 훈련된 애완견처럼 기계가 하라는대로 또박 또박 버튼을 누른 다음 노즐을 차 옆구리에 찔러 넣고 자동 주유단추까지 딸깍 걸고는 초점 없는 눈으로 빠찡꼬 기계처럼 돌아가는 주유기의 숫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차에는 기름이 차는지 모르지만 내 주머니에서는 뭔가가 물처럼 흘러 나가고 있는 것을 느낀다. 이 때처럼 내가 무기력하게 느껴지는 때도 없지 싶다.

요즈음 개스 값이 장난이 아니다. 팔자에 없는 트럭을 몰고 다니다 보니 숫자가 아무리 올라가도 멈출 것 같지 않은 기세다.

숫자판 위의 것($)은 빠르게, 아래 것(gl)은 약간 느리게 올라가는데 단위가 바뀔 때마다 내 귀에는 가슴 속에서 덜컹 거리는 심장 소리가 들린다.

개스 값이 비싸서 그런지 내 차는 휘발유를 더 먹는 것 같다. 엊그제 가득 채웠는데 계기판의 바늘은 벌써 반도 더 내려갔다. 사실 개스 값이 이렇게 오르기 전에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차를 몰고 다니려면 기름을 넣어야하는 것 아니냐. 그러면 또 아무데나 가까운 주유소에 들어갔다. 주유소마다 약간씩 값이 틀리니까 좀 비싼 데도 있지만 까짓 몇 쎈트인데 뭐 굳이 싼 데를 찾아다닐 것이 무어냐.

25갤론 다 넣어봤자 4쎈트래도 1달러다. 그 정도로 대범(?)했다. 그러나 요즈음은 아니다. 내가 생각해 봐도 너무 좀스러워졌다.

길을 가다가도 주유소만 보이면 값을 비교한다.

여기가 좀 싸군 저 쪽 보다 1쎈트 싸니까 25갤런이면 25쎈트다. 다음에는 이리로 와야지. 1달러 정도 차이는 차이도 아니라던 계산법이 25쎈트에 바들바들 떨고 있다. 정말로 나는 1쎈트라도 싸게 파는 주유소를 찾아 다닌다.

인상 더러운 종업원과 맞서는 것이 싫을 때도 있지만 현금만 받는 주유소는 더 싼 데도 있다. 주머니를 탁탁 털어서라도 싸다면 '엥꼬'가 아니더라도 넣는다. 저 쪽보다 2쎈트 싸면 10갤런에 20쎈트 아닌가. 그게 어디냐.

지금같은 세상에 어느 누가 일 전이라도 보태 주는 사람이 있느냐.

절약하지 않으면 나만 손해다.

집사람이 쓰는 승용차를 탈 때가 있다. 운전석 의자를 약간 뒤로 밀어내고 뒷 거울과 옆면 거울의 각도를 내 눈 높이로 맞춘다음 시동을 걸면 어둡던 계기판에는 경고등이 반짝이며 살아난다. 개스가 다 됐으니 채워 넣으라는 말이다. 아니 어떻게 이런 상태로 차를 몰고 다닌단 말인가.

후리웨이에서 덜컥 서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러지? 하여튼 배짱도 좋다.

그러면 집사람은 또 그런다. 경고등이 들어와도 이 차는 한 30마일 정도는 더 달릴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이다. 한 번은 40마일도 더 갔다고 했다. 그런 것도 알뜰 자랑이라고 하는가.

그러나 속내는 그게 아니다. 개스 넣기가 겁나는 것이다.

적어도 4~ 50달러는 써야 하는데 이게 그렇게 말처럼 쉽지가 않은 것이다.

주유소에 한 번 들어갈 때마다 요리 조리 따져보고 주머니사정 보고 하다보면 때를 놓지기 십상인 것이다. 누군들 넉넉히 넣고 여류롭게 다니고 싶지 않으랴. 반짝이는 경고등를 보면서 가슴 조리는 마음은 오죽할까.

신경질이 머리끝까지 올랐다가도 개스 값 같은 것은 신경 끄고 얼마든지 쓰라고 큰 소리 치지 못하니 풀이 죽는다.

그렇지만 어쩌랴. 목마른 사람이 우물 판다고, 나는 언제 길거리에서 설지 모르는 차를 몰고 가슴을 조이며 제일 가까운 주유소로 가곤 한다. 그래서 내 크레딧 카드 명세는 언제나 개스 값으로 넘쳐나고 있다.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교회에 가려면 한 번 '출동'할 때마다 다리(베이브리지) 통행료 포함해서 편도에 약 12달러 정도 든다. 왕복이면 20달러 이 쪽 저 쪽이다. (왜 꼭 그 먼 데까지 가야 하냐고 묻지 말기 바란다) 사실 그 전에는 따져 보지도 않던 부분인데 상황이 상황인지라 한 번은 집사람과 머리를 맞대고 계산기를 두드려 봤다. 교통비를 좀 줄일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궁리를 하던 중 우리는 드디어 묘안을 찾아냈다. 전철을 이용하는 것이다. 그 것 참 좋은 생각이다.

시간은 좀 걸리겠지만 한 시간 정도 열차에 몸을 맡기고 있는 동안 마음만먹으면 성경 공부 예습도 할 수 있고 또 피곤하면 잠간 눈을 부칠 수도 있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하기 싫은 것 중의 하나가 운전이다. 신경 쓰이는 운전을 하지 않아도 되니 도랑치고 가재 잡고다.

교회 근처 정거장에 내려서 걸어야하는 것이 좀 불편하기는 하나 일부러 걷기 운동도 하는데 그 게 흠이 될 수는 없다.

우리는 집에서 2마일 정도 떨어져 있는 전철 정거장에다 차를 두고 매표소로 접근했다.

개스 값이 아무리 천정부지로 뛴다해도 이제 겁날 것이 없다. 왜 진작에 이 방법을 생각해 내지 못했을까. 조금만 눈을 돌려도 여기 저기 새고 있는 비용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있는 것이다. 단지 게으르기 때문에 지나치고 있을 뿐이다. 우리는 시간도 절약하고 경비도 아낄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낸 것을 자축하며 한결 가벼운 마음일 수 있었다.

매표소 근처에 있는 노선과 요금표를 면밀히 살폈다.

우선 내려야할 정거장을 점 ㅤㅉㅣㄲ고, 여기서부터 그러니까 - - - - 우리는 컴퓨터 앞에서 다시 새로운 훈련을 받기 시작하는 애완견처럼 매겨진 번호를 따라가며 절차를 밟기 시작했다.

요금표로 눈을 돌려 검지 손가락으로 해당 정거장을 짚어보니 한 사람이 왕복 10달러 50쎈트다. 두 명이면 21달러! 뭣이라? 21달러?

차를 가지고 다닐 때 비용과 맞 먹는다. 아니 더 비쌌다.

우리는 한 동안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다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되돌아 나오고 있었다. 세상 물정을 몰라도 너무나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오늘도 눈을 부릅뜨고 일 쎈트라도 싼 주유소를 찾아 헤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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