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날 아침
그 날 아침 햇살은 화창했네
2001년 가을, 그 날 아침 북 캘리포니아의 하늘은 맑고 햇살은 화창했다.
나는 오후에 잡혀 있는 티 타임을 떠 올리며 천천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창문을 여니 볼을 간지르는 미풍이 병아리의 깃털 같다.
일 주일에 한 번 라운딩하기로 한 날은 화요일, 골프장이 제일 한가한 날이다. 지난 주에 실패했던 샷을 떠 올리면서 오늘은 기어히 그런 실수를 극복하겠다는 다짐을 한다. 차고로 내려가서 어제 밤에 닦아 놓은 장비를 다시 한 번 어루 만지며 타이른다. “퍼터야, 잘 부탁한다.” 신발도 꺼내서 광택나는 콧등 부분을 수건으로 슬적 문지른 다음 신발 주머니에 집어 넣는다.
이 날 만은 집사람하고도 충분히 이야기가 됐기 때문에 나는 마음껏 게으름을 부리면서 남들은 알아채지 못하는 미소를 띤다.
다시 한 번 하늘을 쳐다본다. 구름 한 점 없다. 맑은 하늘과는 달리 '초원의 혈투'는 처절할 것이다.
팔을 들어 허공을 저으며 없는 바람을 점검한다. 있는듯 마는듯한 저항이 느껴진다. 원래 골프에는 바람이라는 변수가 있어야 재미 있는 법이지.
이 정도면 충분히 이겨낼 수 있어. 그러나 또 모르지. 들판이나 산에서의 바람은 예측할 수 없는 법이니까.
그 때였다. 전화벨이 요란하게 울렸다. 누군가?
늘 듣던 벨소리였지만 왜 그런지 더 크게 들리는 것 같았다. 뭔가 깨지는 것 같은 소리였다. 아마 내가 너무 골프 생각에 열중하고 있었기 때문이겠지. 낯선 방문객을 맞이하는 것 처럼 조금은 생소로운 느낌으로 수화기를 들었다. 저 쪽은 같이 라운딩하기로 한 S였다.
“아침 뉴스 들었어?” 그는 대뜸 높은 목소리로 물었다. “무슨 뉴스?” 나는 기계적으로 되 물었다. “지금 뉴욕에서 난리가 났대.”
맨하탄의 월드 트레이드 센터가 테러리스트들의 공격을 받고 쑥대밭이 되었다는 것이다. 펜타곤도 공격을 받았다고 했다.
사람들이 다치고 죽고 했는데 도무지 몇명이나 되는지 알 수도 없다는 것이다. “그래?”
수화기 저 쪽에서는 분개하는것 같은 음조였지만 현장감을 느끼지 못하는 나는 대수롭지 않게 대꾸했다.
같은 미국이라고 해도 동부와 서부는 딴 나라 같다. 3시간이나 시차가 있는데다가 비행기로는 6시간이고 자동차로는 둘이서 교대로 하루 24시간 운전해도 3일 정도는 걸린다. 반동강이 한반도에서 살다 온 우리의 개념으로는 한 나라라는 것이 실감이 나지 않는다. 하와이에서부터 따지면 지구 반대편쯤 된다.
뉴욕? 거기는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 딴 나라나 마찬가지다. 그래서 뭐가 어떻다는 말인가.
그는 아무래도 오늘은 라운딩을 자제하는게 좋을 것 같다면서 다음 주에 하자고 했다.
그의 전화가 끝나자마자 또 다른 일행이 전화를 했다.
“소식 들었지?” 그도 똑 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자숙하는 의미에서 오늘 라운딩을 그만두는게 좋을 것 같아. 전 미국이 슬픔에 빠져있는데- - - - 다음 주에 하자구! ”
아쉽지만 나는 마지못해 그러자고 하고는 나머지 일행에게는 내가 연락을 하기로 했다.
“지금 뉴욕에서는 난리가 났다면서? 알고 있어? S와 H가 오늘은 자숙하는 의미에서 라운딩을 스킵하자는데 어떻게 생각해? 캔슬할까?”
나는 북어두름처럼 한꺼번에 주르르 엮어서 물었다.
“그러는게 맞아. 오늘은 관두자구.” 저 쪽의 반응도 당연히 그래야할 것 같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보니 사태 판단을 제대로 하고 있지 못하던 나만 오늘의 라운딩계획이 취소된다는 것에 대해서 미련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됐다. 무슨 영문인지는 모르지만 나는 골프를 하지 못한다는 것이 영 마뜩치 않았다.
컨디션도 괜찮고 몸도 펄펄 날 것 같은데 왜 하필이면 오늘이지?
궁시렁 거리면서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기에 야단들인가 텔레비젼을 켰다.
9/11테러는 그제서야 나에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텔레비젼에서는 정규 방송을 중단하고 쌍둥이 빌딩이 무너지는장면을 반복해서 보여주고 있었다.
엄청난 일이었지만 믿어지지가 않았다. 대체 어떻게 저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이미 벌어진 일, 어떻게 보면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난 사건인데 골프를 한다해서 사태가 더 나빠질 것도 없고 안한다해서 좋아질 것도 없다.
주위에서도 골프를 한다고 뭐라고 할 사람도 없고 하지 말라고 뜯어 말리는 사람도 없다. 골프를 했다고 해서 내 목아지를 날려 버릴 사람도 없고 나도 거기에 내줄 여분의 목아지를 가지고 있지도 않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많은 사람들이 라운딩 계획을 취소했다고 했다.
최근 한국에 쏟아진 '물폭탄'의 위력과 의도적인 공격에서 오는 위기감의 차이는 분명 다를 수 있다.
그러나 동부 뉴욕의 사태는 딴 나라 같은 서부 캘리포니아 사람들에게 까지 순식 간에 번져 왔고 그들은 거의 동시에 아픔을 나누고 있었다.
사건이 터지고 나서 두어 시간쯤 되었을 때 거리의 차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성조기를 휘날리며 달리고 있었다. 집 집 마다 대문에는 국기를 내다 걸었다. 머리띠를 두르거나 어깨띠를 두르고 주먹을 휘두르는 사람은 없었지만 (물론 죽창이니 쇠 파이프니 하는 것도 없었다) 그들은 행동으로 합심하는 모습을 내 보이고 있었다.
미국에 오래 살았지만 위기에 단결하는 모습을 보면서 뭔가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다. 유난히 화창한 하늘 아래 펄럭이는 성조기가 반짝이고 있었다.
다음 날 거리 곳곳에는 현수막이 나 붙었다.
“United We Stand”
그 사건 이 후로 나는 마냥 헐렁하게만 보아 왔던 미국 시민들을 다시 보게 됐다. 수해 현장 옆에서 골프를 했다는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을 까 나는 또 그 것이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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