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그리고 그림자
빛과 그리고 그림자

듣자하니 요즈음 서울에서는 모네 바람이 불고 있다고 한다.

우연의 일치인지는 모르지만 끌로드 모네(Claude Monet 1840-1926)는 여기서도 난리다. 아니 모네는 언제 어디서나 사람들의 가슴 속에 자리하고 있는 영원한 애인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 애인이 여기에 왔다는 것이다. 가 보자. 샌프란시스코 리전 오브 오너 뮤지엄(de Young Legion of honor museum). 코 앞에 금문교가 내려다 보이는 언덕위에 서있는 도리아식 회랑과 코린트식 주주로 된 박물관은 언젠가 로댕이 왔을 때 한 번 가 본 적이 있다.

나는 모네의 그림을 화집에서 여러 번 봤다. 복사판을 파는 가게에서 제일 많이 팔려 나가는 그림이 인상파 화가들의 작품이다.

변호사 사무실의 복도에도, 병원의 입원실에도 모네는 걸려 있다.

그러나 늘 갖는 불만이지만 복사판은 출판사의 잉크와 기술에 따라서 색갈이 들쭉 날쭉이다. 대상이 빛에 따라서 이렇게도 보이고 저렇게도 보인다는 모네의 기법에 충실하기 위함인가. 어떤 것은 푸른색이 진한 것도 있고 또 다른 것은 노란색이 더 강한 것도 있다.

도대체 원본은 어떤 색일까. 구도나 분위기를 느끼는 것으로 만족할 수 밖에 없단 말인가. 화집으로 묶인 인쇄물을 보면서 도대체 진짜의 크기는 얼마만할까. 그런 것들이 늘 궁금했다.

그러나 구텐베르그 이 후 인쇄기술의 발달은 사람들에게 성서를 읽게 만들었고 인류에게 모네를 보급 시켜 주었다. 그 것 만이라도 감사해야 했다.

과문한 탓인지는 몰라도 사실 모네 만큼 붓질을 하는 화가는 얼마든지 있다. (원래 글이든지 그림이든지 잘 된 작품을 보면 저 정도는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미술계에는 널려있는게 모네의 아류다. 좀 과장해서 말한다면 우리는 모네의 홍수 속에서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도 어쩔 수 없이 모네를 비롯한 인상파 화가들의 영향에서 벗어 날 수 없었다.

자주 접하다보면 감각이 무뎌질 수 밖에 없다. 이미 경험했는데 신기할 것이 무어냐. 무식하다고 흉보지 말라. 박물관 아래 층에 들어섰을 때 나는 그저 평상심일 수 있었다. 사람들은 모네 어쩌고 하면서 감격하고 있는지 모르지만 나는 그저 무덤덤했다. 오히려 밀려드는 인파에 놀랐다는 말이 더 정직한 고백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모네에서 무엇을 봐야하는가.

'예술의 본질 보다는 볼 때마다 달라지는 '인상'같이 표피적인 면만 추구한다'는 비판을 받았던 그는 마치 자신의 그림 속에 외롭게 서 있는 절벽위의 한 그루 나무처럼 기존의 가치와 맞서는 선구자였던 것이다.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개척하는 그는 외로웠을 것이다.

키 큰 서양 사람들과 휠체어 노인들 틈새기로 나는 고독한 선구자의 모습을조금이라도 더 보려고 애썼다. 때로는 까치발도 시도해 봤지만 여의치 않았다. 파도에 휩쓸려가는 부유물처럼 그렇게 떠 다녔다.

그저 순간 순간 망막에다 영상을 찍는 것으로 만족해야했다. 별로 명석하지 못한 나의 기억력은 과연 얼마나 정확하게 오래동안 그의 작품을 보존할 수 있을까.

떠밀리다시피 전시관을 나오니 무엇을 봤는지 어디 갔다 왔는지 기억이 아득하다. 언제나 그렇듯이 금문교 위에는 조각 구름이 걸려있고 쌀쌀한 바람결에 그 것은 마치 안개처럼 흩어지고 있었다.

그 때였다. 바다 쪽으로 시선을 돌렸을 때 나는 내 눈을 의심하고 있었다.

구름사이로 내려 비치는 햇살아래 태평양 연안의 절벽은 모네의 빛과 그림자처럼 재생되어 있었다. 아! 모네는 저런 것을 그리고 싶어 했던 것이로구나. (이 번 전시회의 주제가 Monet in Normandy다.)

다시 카타로그를 펼치면서 방금 돌아나온 전시관을 떠 올려 본다.

그의 붓놀림은 거친듯 섬세했고 섬세한듯하면서도 거칠었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그런 거친 붓질(?)로 사진보더 더 정확하게 사물의 생동감을 전해주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보니 나는 그 혼란한 틈바구니 속에서도 그가 그린 파도의 출렁이는 소리도 들었고 언덕에 항상 같은 방향으로 불어대는 바람에 비스듬이 기울어 있는 나무의 인고도 보았다. 음산한 겨울, 앞이 안 보일 정도로 함박눈이 펑펑 쏟아지는 산장의 모습도 보았고 언제까지나 저물지 않는 바위에 붙어있는 한 조각의 햇살과, 새벽이 머물고 있는 루앙 성당의 신비함도 확실하게 메모리에 넣었다. 어떻게 말하면 실감나게 표현할 수 있을까.

나는 언젠가 소설을 읽고 그 소설을 쓴 작가와 가까이 만난 경험을 생음악을 듣는 것 같다고 말한 적이 있다.

비록 복사판으로 이미 봐 왔던 그림들이었지만 원본을 보는 느낌은 마치 생음악을 듣는 것과 같다.

감동은 과장된 말로 재생산되지 않는다. 직접 보고 느끼는 수 밖에 없다. 푹- 젖는다고나 할까. 그 중에서도 기억에 오래 남을 것 같은 그림은 지베르니(Giverny)정원의 수련 시리즈다.

나는 거기서 초희의 채련곡에 나오는 호수를 떠 올리고 있었다. 연못에 떠있는 연꽃을 사이에 두고 사모하는 님과 만나서 볼을 붉히는 여인의 모습. 그 호젓함이 거기에 있었다.

채련곡(菜蓮曲) 초희(楚姬) 허난설헌(許蘭雪軒)

秋淨長湖碧玉流 (푸른 물이 고요하게 흐르는 호수의 가을 날)

蓮花深處繫蘭舟 (연꽃이 피어있는 깊은 풀 섶에 배 띄워 놓고)

逢郞(浪)隔水投蓮子 (물을 사이에 두고 그 님을 만나 연잎을 던졌더니)

惑(或)被人知半日羞 (혹시 누가 봤을까봐 한 나절 부끄러웠네)

연못 저 편에 서있는 그는 자신의 역작을 얼굴을 붉히며 부끄러운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는 어느 초로의 사나이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그림은 아는만큼 보인다던데 10중 하나나 보았을까 내 무식함과 둔감함을 자탄한다. 이 번 주말에 어차피 짝사랑일 수 밖에 없는 애인을 만나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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