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살 이 후

며칠 전에 하루 호되게 앓았다.

원인은 설사였는데 몸살까지 겹쳤다. 뭣 때문일까. 운동 때문이었는지 모르겠다. 요즈음 시간이 왜 이리도 빨리 흘러가는지 어물어물 하다보면 어제가 월요일이었던 것 같은데 오늘 벌써 금요일, 토요일이다.

지난 주에 빼 먹은 것을 벌충하느라고 이 번 주에 연거푸 뛰었더니 무리가 왔는가 보다.

그러나 그 건 설득력이 약하다. 내 자신도 수긍하기 어려운 이유다.

왜냐하면 전에도 건너뛴 운동을 몰아서 한 적이 몇 번 있었지만 탈이 났던 적은 없기 때문이다.

무엇 보다도 내 자신이 그 정도도 견디지 못해서 앓아 누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싫었다. 아직은 아니다.

그렇다면 설사를 동반한 몸살이었으니까 아마도 먹은게 잘 못 되었는지도 모른다. 먹는 것 때문에 탈이 났다면 왜 그런지 뭔가를 분별할 줄 모르는 식성 때문인 것 같아서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꼭 게걸스럽게 먹기 때문에 탈이 나는 것은 아니니까 무얼 먹었는지 곰곰히 생각해 봤다.

좀 색다른 것이었거나 상한 음식이었는지 모른다.

아침 신문을 보니 시금치가 오염 됐다고 야단들이다. 보지도 말고 만지지도말라고 한다. 그렇다면 짚히는 게 있다.

어제 저녁에 먹은 야채 샐러드가 걸리는 것이다.

유기 농법으로 재배한 것이었는데 다른 야채에 비해 훨씬 더 신선하고 몸에도 좋다는 것이다. 광고를 너무 믿은 것이 탈이었다.

야채 샐러드는 내가 잘 먹는 식단 중의 하나다. 그러나 사실 그 것도 두어 젓가락 밖에 먹지 않았다. 처음 먹어 본 것들이었는데 맛이 별로였다. 탈이 나려면 한 숫가락에도 탈이 날 수 있다.

그러나 그 것도 확실한 이유인지 어떤지 알 수 없다.

하여튼 나는 한 이틀, 만 24시간을 꼬박 앓아 누워있으면서 화장실만 왔가갔다 했다.

집사람은 병원에를 가 보자고 했지만 설사 몸살을 가지고 병원을 가는 환자가 어디 있냐고, 그냥 그만하다가 나을 것이라고 버티면서 권고를 무시했다.

얼굴은 달아 오르고 머리는 어지러웠다. 뼈마디가 쑤시는데 면도칼로 관절을 도려내는 것 같다. 그 우람(?)하던 근육과 넘치던 에너지는 다 어디로 빠져 나갔는지 다리는 힘이 없어 바로 설 수가 없을 정도다.

이불을 덮고 있으면 덥고 벗어 팽개치면 춥다. 그러면 안된다고 억지로 덮어주면 온 몸에 땀이 질척 거린다.

땀은 머리에서도 솟는데 그러면 두피 기름과 머리카락이 엉켜서 진득진득하게 된다. 화장실에 다녀 오면서 힐끗 거울을 보니 몰골이 가관이다.

먹은 것은 없는데다 물을 쏟아내서 그런지 체중은 3파운드나 줄었다.

눈이 퀭하다.

누워 있는 동안에는 별의 별 생각이 다 오락가락한다. 헛 것도 보인다.

이대로 죽는 것은 아닌가. 차라리 죽어 버린다면 편하기나 하겠다.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던 사람들의 얼굴도 떠 올랐다. 그 사람은 왜 하필이면 이렇게 아플 때 떠오르는 것일까. 그 중에서도 제일 많이 보인 사람은 아버지였다. 생전에 아버지는 가끔 술을 드시고는 한 숨을 내쉬면서 누군가를 향한 분노를 혼잣말 처럼 토해 내시곤 했다.

그 때처럼 아버지가 가여웠던 적이 없다. 살아보니까 이제 나도 짐작 되는 게 있다. 재벌 회사의 하청일을 받아 하시던 아버지는 이 놈 저 놈에게 뜯기는게 많았다. 말단 담당 직원에서부터 위로는 과장, 부장, 이사, 상무까지 아버지는 인사를 해야했다. 공무원들도 예외일 수는 없었다. 그 들은 마치 찰거머리처럼 들러 붙어서 피를 빨아 먹었다.

물론 그 중에는 아버지가 잘 못해서 눈감아 달라고 필요 이상으로 머리를 조아린 적도 있을 것이고 생트집을 잡아서 뜯긴 적도 있을 것이다.

윤활류를 쳐야 기계가 돌아가듯이 아버지는 수시로 기름을 치기 위해서 서울 본사로 혹은 관공서를 드나 들었다.

그런 날은 반드시 한 잔 술이 따랐고 유난히 비틀 거리며 집에 들어오신 아버지는 한 동안 눈을 감고 꼿꼿하게 앉아 계신 적도 있었다.

가여운 아버지- 나는 그 분노의 대상이 무엇인지, 누구인지도 안다.

그럴 때 마다 나는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에 나오는 노인을 연상하곤 했다. 아버지가 잡아올린 물고기는 재벌 회사에서 받아온 일감일 터였다.

차라리 뭍 가까운 곳에서 잔챙이만 낚았다면 그런 일은 없었겠지만 낚시질을 하기 위해서 아버지는 너무 멀리 나가셨는지도 모른다.

아버지! 아버지는 큰 고기를 낚으셨어요. 비록 건진 것은 뼈 뿐일지라도 우리는 아버지가 얼마나 힘 겨운 싸움을 하셨다는 걸 짐작할 수 있답니다.

아버지! 우리는 결코 아버지가 어리석은 일을 하셨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버지는 끝까지 싸우셨고 마침내 이기셨습니다. 앙상한 물고기의 뼈가 그 것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아버지! 이제 그만 분노의 사슬을 놓으시지요. 이제는 쉬셔도 될 것 같습니다.

신열은 몸을 뜨겁게도 하지만 신열은 또 무언가에 차단 되었던 기억을 되살리는 수단이기도 하다.

그 동안 잊고 있었던 한국의 고질병인 상납의 고리, 거기에 진정한 승자는 없고 다만 상처 깊은 패자만 있을 뿐이었다.

나는 이 번에 설사를 하면서 몸 속에 가지고 있던 많은 물과 찌꺼기를 변기 속으로 흘려 보냈다. 설사가 멎고 열이 내리니까 아직은 힘이 없지만 몸은 가쁜하다. 그래서 아마도 더 커질 수 있는 질병을 예방했는지도 모른다.

몸이 날아갈듯이 가볍다. 지나친 운동이든지 아니면 음식을 잘 못 먹었든지사람은 가끔 설사도 하고 볼 일이다.

한국 사회도 한 번 호된 설사를 해 버릴 수만 있다면 뒤틀리고 있는 내장이한결 가벼워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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