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보원'선진국 비해 최고 2배' - 산업계 '어불성설이다'

< 사진 = 한국 소비자원 >
소비자 보호원, 11개국 물가조사
한국소비자원이 지난 1일 발표한 물가조사 결과, 국내에 수입돼 판매되는 휘발유·비타민·세제·수입차 등의 가격이 주요 선진국에 비해 최고 2배 이상 비싼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이러한 조사 결과에 산업계가 '현실을 모르는 소리'라며 반발하고 있어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소비자원에 따르면 특히 구매력 지수(PPP·국가 간의 물가 수준을 고려해 각국 통화 구매력을 같게 한 통화 비율)기준으로 따질 경우 주요 생필품 전 품목이 비교 대상 국가를 웃돈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소비자원은 G7과 아시아 주요국가 등 11개국을 대상으로 한 '주요 생필품 11개 품목에 대한 가격실태'를 조사했다. 조사 결과 선진 7개국(G7)에서 팔리는 수입 자동차의 평균 가격(구매력 지수 기준)과 국내 판매가를 비교할 경우 국내 가격이 119.8%나 비쌌다. 휘발유는 95.3%, 세제 77.4%, 종합비타민은 70.2%나 국내에서 비싸게 팔렸다.

실제 우리나라에서 판매되는 가격을 100(PPP 기준)으로 따져 보면 수입차 가격은 캐나다 51.4, 이탈리아 50.4, 미국 44.8, 프랑스 43.1, 독일 42.8, 일본 40.5 등으로 국내 판매가격의 절반도 안됐다.

휘발유 역시 프랑스 64.7, 영국 63.6, 일본과 이탈리아 51.3, 미국 43.8, 독일 42.9, 캐나다 40.8이었으며 세제는 미국 66.0, 프랑스 65.6, 독일 58.1, 일본 55.5, 영국 54.2, 캐나다 49.3, 이탈리아 39.6이었다.

골프채·밀가루·식용유·설탕의 경우도 평균환율 기준으로는 가격차가 크게 나진 않았지만 구매력 기준으로는 밀가루 53.0%, 골프채 34.0%, 식용유 42.5%, 설탕 21.6%가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소비자원은 “국내외 가격차는 환율 변동, 국가별 정부 정책, 세제, 물류비용, 노동생산성, 유통 마진 등 다양한 요인이 작용해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특히 세탁용 세제는 4개 업체가 시장점유율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독과점시장이 가격 상승의 주요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종합비타민은 물류업체의 마진이 50% 이상 되는 데다 판매 장소가 약국으로 한정돼 있어 가격이 비싸게 책정된 것으로 분석했다.

소보원 분석에 산업계 반발
그러나 소보원의 이 같은 분석에 산업계는 '시장 현실을 무시한 어불성설'이라며 반박하고 있다.

수입차업계는 일단 가격 비교기준이나 산정방식 등이 정확한지에 의문을 제기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국내 차시장에서 수입차 점유율은 5.0%를 겨우 넘는데 정확한 비교를 할 수 있는지 의문"이라면서 "'규모의 경제'가 발생하면 그만큼 가격도 낮아지는 것인데 나라별로 특정 브랜드 제품 판매량을 살피지 않고 무조건 비싸다고 판단하는 건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어떤 차종은 한국이 중국이나 말레이시아보다 싸다"고 전하고 "수입차 유통구조상 마진을 지나치게 챙겨간다는 지적도 부적절한데, 왜냐면 전세계 어디든 수입차 1대를 팔기 위해선 동일한 단계를 거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소보원측은 공식 수입업체가 딜러측에 수직적 가격제한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지만 전반적인 가격전략은 본사에서 채택하는 것"이라고 반박하기도 했다.

정유업계도 "소비자원은 휘발유값이 ℓ당 독일 1천206원, 프랑스 1천450원, 이탈리아 1천577원이라고 했으나 EU 공식 홈페이지에 의하면 5월 첫째주 기준 가격이 독일 2천326원, 프랑스 2천283원, 이탈리아 2천353원 등으로 훨씬 높게 나온다"면서 가격 기준시점 등 기본적인 사실관계에 의문을 제기했다.

이어 "소비자원은 또한 국내 휘발유값을 1천803원, 경유값을 1천930원으로 조사했으나 한국석유공사의 5월 평균가격은 휘발유 1천803원, 경유 1천705원"이라며 "팩트가 부정확한 자료를 근거로 국내 가격이 높다고 판정하고 그 이유로 정유업종의 과점을 든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한 정유사 관계자는 "현재 국내 석유제품 시장은 공급과잉에 따라 정유사.주유소간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고 있고 공정위가 담합 여부를 지속 감시하고 있어 담합은 이뤄질 수 없는 구조"라고 덧붙였다.

국내 최다 판매 수입비타민 '센트룸'을 수입하는 한국와이어스는 "미국은 비타민이 월마트 등 대형 할인점 통해 유통되므로 마진이 거의 발생하지 않으나 한국은 종합비타민이 일반약으로 분류돼 약국에서 유통되므로 때문에 미국 현지 가격에 비해 당연히 비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영업사원 인건비, 도매마진, 약국 마진이 추가로 발생하는 비용을 감안하면 국내의 다른 인기 비타민제와 비교할 때 비슷한 수준"이라고 주장하고 "따라서 국내 유통구조를 본다면 수입비타민이 폭리를 취한다고 볼 수 없다"면서 "일반의약품이 슈퍼에 유통되지 않는 한국과 미국의 차이를 무시하고서 폭리를 취한다고 말하는 것은 잘못됐다"고 덧붙였다.

세탁용 세제에 대한 관련업계의 반응도 이번 조사결과를 수용하기 어렵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 업체 관계자는 "소보원의 세제가격 비교는 국가별 시장상황을 무시하고 진행함으로써 시장가격에 대한 왜곡을 일으킬 소지가 많다"면서 사례를 예시했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소보원이 제시한 세제 3.5kg 1만2천810원은 kg당 3천660원으로, 시장 크기가 15.0%에 불과해 비쌀 수밖에 없는 '드럼용 세제'를 기준으로 한 것이라고 한다.

특히 대만의 경우 3.5kg에 4천410원으로 한국의 세제가 2.9배 비싸다고 했지만 대체로 대만 세제는 표준사용량이 2g/1ℓ로 한국 효소세제의 1g/1ℓ, 농축세제의 0.84g/1ℓ에 비해 표준사용량이 현저히 높은만큼 한국세제가 소량으로 더 큰 효과를 낸다면서, 그런 점을 감안하면 대만 세제가 비싸다고 볼 수 있다고 했다.

나아가 국내 세제 유통의 90% 안팎을 점하고 있는 대형할인점 시장에서는 끼워주기가 관행처럼 돼있는데다 할인행사가 다반사여서 다른 국가들과 동일한 기준으로 비교하기 어렵다고 업계는 주장했다.

업계 관계자는 “하지만 정부가 생필품 가격을 이런 식으로 잡겠다고 나오면서 가격을 올린다는 말을 아예 꺼내지도 못하게 만들고 있다"면서 불만 섞인 반응을 보였다.

밀가루와 식용류 제품을 취급하는 국내 최대 식품회사인 CJ제일제당은 "밀가루, 설탕, 식용유 등은 재료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어 국제시세를 따라갈 수밖에 없다"면서 "마진을 붙인다고 해도 식품의 기본재료에 속하기 때문에 무작정 비싸게 팔수는 없는 품목이라는 점을 고려해 달라"고 했다.

또한 "식용유의 경우 소보원이 국내 시장의 3분의2 이상이 일반제품보다 3-4배 비싼 고급 식용유라고 했는데 이는 잘못된 지적으로, 실제로는 일반식용유가 시장에서 4분의3을 차지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이어 "'빅맥 지수'처럼 대부분의 재료를 국가 안에서 조달할 수 있고 품질이 균등한 제품을 대상으로 비교한다면 타당성이 있겠지만 원재료를 수입에 의존하고 품질차이도 상당한 품목에 대해 구매력지수를 적용한다고 해서 정확한 가격 비교가 가능한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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