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동료들이 뽑은 올해의 젊은 시인’ 김행숙

< 사진 = 김행숙 시인 >

대학로 주변의 오래된 어느 카페에서 김행숙 시인을 만났다. 만남은 부딪힘이고 그 부딪힘이 어떠한 빛을 만들어 낸다고 말하는 그녀. 이날 김행숙 시인과의 만남은 어떤 빛을 만들어냈을까. '진한 에스프레소'와 '소녀같은 웃음'.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두 가지의 공존이 김행숙 시인에게는 자연스럽다. 무엇이든 공존할 수 있게 하는 '마법사' 같은 그녀. 지금부터 그녀의 마법에 빠져보자.

-본인의 '이별의 능력'은 어느 정도라고 생각하는지.
▲나는 멋지게 이별할 수 있는 능력이 멋지게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명랑하게 발을 뗄 수 있는 그러한 이별의 능력은 정지해 있지 않고 또 다른 내일을 만나는 방식이기도 하다. 우리는 이별을 해야 하는 지점에서 많이 괴로워하고 힘들어 한다. 그래서 더러는 청춘을 낭비하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별의 능력'이 독자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지점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사실 나는 이별을 할 때 많이 힘들어 하는 사람이다. 이별의 능력에 대한 소망, 동경 이런 것이 있다.

-시를 쓴다는 것은.
▲시를 쓰는 일은 자신을 단련시키는 것과 같다. 자신을 좀더 단단하고 강하게 만들어 준다고 할까. 세상이 너무 무섭게 느껴지는 여린 마음에서 좀더 단단하게, 대응할 수 있게 해주는 것 같다. 나는 시인을 연약하고 여린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시인은 어떤 면에서 아프지 않아도 되는 것을 심하게 아파한다. 하지만 그만큼 견딜 수 있기 때문에 아파하는 것이다. 못 견딘다면 아플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시를 쓰면서 좋았던 것은 스스로 강해진다는 느낌, 단련된다는 느낌을 받는 것이다. 시쓰기는 영혼을 단련시키는 방법이기도 하다.

-소설에 비해 시가 많이 읽히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시가 꼭 많이 읽혀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어떤 책이든 마찬가지이다. 다양한 글쓰기 방법과 다양한 독서층이 있었으면 좋겠다. 말하자면 시가 소수의 독자층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그 독자층이 향유층이 되고 문화적 지형 속에서 색깔을 갖는다면, 그 안에 있는 독자가 소수냐 다수냐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다수의 독자가 없어도 굴러가고 그러다 간혹 베스트셀러도 나오고. 대중적인 공감을 얻지 못해도 누군가에게 시가 필요하다면 그걸로 의미가 있다.
한편 글쓰기라는 것은 개인적인 지점이 있는 것 같다. 일단은 글을 씀으로써 자신이 충만해지고 행복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가장 기본이고 그 다음은 내가 알 수 없는 부분이다. 누가 내 시를 읽을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미지의 누군가와 만나는 것이다. 내 시가 다양한 방법으로 흘러들어가서 '누군가와 이렇게 만났구나'하는 생각을 하면 신기하다.

-글쓰기의 기쁨은.
▲자기 착각이기도 하고 자기 만족이기도 한데, 시를 쓰다보면 120%의 능력이 나오기도 한다. 이건 시에서만 이루어지는 마법은 아니다. 사람은 스스로 생각하는 자신 외에 또 다른 자신이 내면에 있다. 그런 것들이 튀어나오는 것이 120%이다. 예술을 하는 사람들은 그 마법에 중독된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내 머릿속에서 '이런 것들이 써지지 않을까'하는 막연한 느낌이 와서 글을 쓸 때, 그것과는 전혀 상관없는 것이 튀어나오기도 한다. 그러면 '내가 이런 생각도 했나'하게 된다. 그런 것들이 튀어나오면 기분이 좋다. 120%라는 것이 100%를 발휘하고 플러스 20%라는 것은 아니다. 사실 100%라는 것은 관념적인 것이라 알 수 가 없다. 내 능력이 50%라면 70%는 나랑 상관없는, 어떤 순간에 영매 혹은 수신기처럼 받는 것이다. 그런 것이 꼭 내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게 나의 수동성 속에서 나오는 것이 더 클 수도 있다. 그것이 글쓰기의 기쁨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작품 중 마음에 드는 작품은.
▲첫 번째 시집 <사춘기>에서 '미완성 교향악'은 쓰고 나서 기분이 좋았다. 마지막 부분에 이런 구절이 있다. '뒷문으로 나가볼래?/나랑 함께 없어져볼래?/음악처럼' 음악이라는 것이 그렇다. 삭 사라지는 느낌. 또 '완성'은 꽉 짜여진 느낌이 드는데 비해 '미완성'은 그 자체에서 어떤 해방감이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이 시를 쓰고 나서 시원한 느낌이 들었다. 두 번째 시집 <이별의 능력>에서는 개인적으로 '해변의 얼굴'을 좋아한다. 사람들은 '다정함의 세계'와 '숲속의 키스'라는 시를 많이들 좋아한다.

-어떤 시인으로 불리고 싶은지.
▲잘 모르겠다. 아마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대부분 가장 독창적인 존재가 되고 싶다는 욕망이 있을 것이다. 내가 시를 쓰지 않으면 그만큼이 비어있는, 누군가로 대치될 수 없는 자리에 있는 것.
살아가면서는 '멋진 친구'였으면 좋겠다. 사람을 만나는 가장 좋은 방식은 친구로서 수평선에서 주고 받을 수 있는 관계라고 생각한다. 그런 방식으로 내 시도 충돌했으면 좋겠다. '평범한 친구'라면 싫은 소리를 할 필요가 없겠지만 '멋진 친구'라면 때론 뒷통수를 후려갈겨주기도 하는. 내 시도 까다로운 친구가 될 수도 있겠지만 그런 방식으로 충돌했으면 좋겠다.

-다음 작품에 관한 이야기는.
▲다음으로 묶게 되는 책은 '시인들과 친구되기(가제)'라는 인터뷰집이다. 이 책은 내가 시인들을 만나면서 나눴던 이야기들을 담을 예정이다. 나는 '만남'이라는 것은 부딪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부딪힘으로써 빛이 생기는데 이 빛이 어디로 튕겨나갈지는 모른다. 이 빛은 누군가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생각하지 못했을, 만났기 때문에 이루어진 것들이다. 내 인생을 돌이켜보면 내 삶에서 가장 중요하고 의미심장했던 일은 '만남'이었다. 어떤 시가 좋으냐고 물었지만 가장 멋진 텍스트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사람과의 만남에서 상처도 받고 실망도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남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어떤 친구를 만나면 그 친구는 나에게 스위치를 눌러준다. 그 친구가 나에게 특별히 무언가를 해주는 것은 아니지만 그저 스위치를 눌러주면 내가 작동하게 된다. 내 인생에 멋진 친구들이 있어줬던 것을 고맙게 생각한다. 그래서 이 책이 어떤 의미에서는 사람을 만나는 방식, 사례 그런 것이 되었으면 좋겠다.

정수현 기자 jsh@todayk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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