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순간의 ‘복사빛’을 기억하며

< 사진 = 정끝별 시인 >

제23회 소월시문학상 대상 '정끝별' 시인

무더운 여름을 달래주는 단비가 내리던 날, 명지대학교 본관 교수실에서 정끝별 시인을 만났다. 시를 씀으로써, 시인으로서 세상에서 가장 큰 '빽'을 지니고 있다는 든든함이 행복하다는 그녀. 그리고 이 세상 저 끝, 홀로 반짝이는 별처럼 외롭지만 영롱하게 빛나는 그녀의 언어. 지금부터 정끝별 시인의 그 별빛을 따라가보자.

-본인의 작품 중 특별히 애착이 가는 작품이 있다면.
▲애착이 가는 시는 그때그때 다르다. 아마 그때그때의 정서가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오늘은 날씨도 흐리고 가라앉는 기분이 들어 '먼 눈'이라는 시가 떠올랐다. “내리고 내리고 내리면/ 저리 무덕무덕 쌓이는 걸까/ 쌓이고 쌓이고 쌓이면/ 저리 비릿하게 피어나는 걸까”하며 시작하는 이 시는 노래에 가까운 시다. 뭘 쓰려고 했는지도 잘 모른 채 그냥 흘러나오는 대로 받아쓴 시이다. 그리고 퇴고하지 않았다. 삼천갑자, 18만 년이라는 시간 속에서 모든 것들은 변하고 소멸한다. 그 무상한 시간 속에서 역설적이게 항구한 '순간의 시간'들이 있다. 바로 '복사빛' 같은 아니 '복사빛'에 대한 욕망 혹은 기억 같은…… 이 시는 시간과 되풀이, 덧없음과 항구함에 대해 생각한 시이다. 사랑이라 이름할 수 있는 간절한 그 무엇을 노래했다.

-1988년 문학사상으로 등단한 지 20년이 됐다. 그동안 집필 기간 동안 슬럼프가 있었는지.
▲20년 동안 총 250편 정도의 시를 썼다. 스물 다섯에 등단해 계속 뭔가를 병행하면서 시를 썼다. 결혼이든 대학원이든 논문이든 육아든 강의든 평론이든 잡문이든.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시에만 몰두했으면 더 잘 쓰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없지는 않다. 하지만 대한민국에서, 지독히 가부장적인 집안에서, 그것도 여자로 태어난 내가 시를 더 잘, 더 오래 쓸 수 있는 현실적인 조건들을 생각했었다.
시라는 것이 늘 뭔가를 '느끼고 읽어내고 깨닫고' 하는 넓은 의미의 공부하는 과정에서 나와야 할 것 같았다. 그런 의미에서 시작한 일들이 눈덩이처럼 불어나 20년 동안 함께 굴러왔다. 시를 쓸 시간이 많지 않은 상황 속에서 긴장하면서 가까스로 시를 썼던 편이라 슬럼프다운 슬럼프가 없었다. 아니 어떻게 보면 지난 모든 시간이 슬럼프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변명할 수 있는 건, 모두 시와 연관된 일들이었다는 점이다. 시론집이나 평론집은 물론, 시해설집, 여행산문집 들도 시에 관한 것들이었다. 가르치는 일 또한.

-밥에 관한 주제로 시를 모아 <밥>이라는 시집을 출간했다. 본인에게 밥이란 어떤 의미인지.
▲밥은 슬프고 따뜻하고, 존엄하고 비루하다. 밥이라는 주어는 어떤 술어든 다 수용할 수 있다. 그만큼 밥은 전체 또는 삶이기도 하다. 아버지는 어릴 적 우리를 훈도하실 때 이렇게 말씀하셨다. “거지도 밥 세끼는 먹는다. 어떻게 먹느냐가 중요하다.” 어릴 적에는 참 듣기 싫었던 말인데 요즘 내가 밥벌이를 하면서 자주 떠오르는 말이다. '어떻게 먹느냐'는 곧 '어떻게 사느냐'의 문제일 것이다. 밥은 삶의 시작이자 끝이고, 불멸하는 것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밥'이라는 글자를 유심히 들여다 본 적이 있다. 'ㅂ'을 밥공기로 연상하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두 개의 밥공기 사이에 '아'라고 하는 입벌림이 있네. 그런데 밥공기에 밥은 왜 가득차지 않고 절반만 담겨있을까, 왜 두 개 일까. 아, 가득 먹지 말고, 나눠먹으라고 그런 거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쓴 시가 '까마득한 날에'이다.

-가장 존경하는 시인이 있다면.
▲시인들은 한 고집, 한 자존심이 있는 사람들이다. 내 주변에서 어떤 시인을 열렬히 존경하는 시인을 보지 못했다. 주변에서, 어떤 시인을 열렬히 존경하는 시인을 보지 못했다. 좋아한다면 몰라도. 나 또한 어떤 시인을 존경하기 보다는 여러 시인과 시를 좋아한다. 좋아하는 시인이나 시도 조금씩 달라지기도 한다. 시에는 정상 혹은 끝이 없기 때문이다. 또 그렇기 때문에 계속 쓰는 것이고.
그렇지만 요즘에는 가끔 이성복 시인을 생각한다. 멀리서 바라본 이성복 시인에 대한 느낌은 한결같음이다. 시에 관한 한 한결같은 열정과 순결함을 높이 산다. 30년 동안 시적인 긴장과 시인으로서의 견결함을 잘 견지하신 채, 문단의 이런저런 잡스러움과 이해관계로부터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고 계신다. '그 수많은 부탁들을 어떻게 물리치셨을까. 어떻게 끊임없이 자기갱신을 하셨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 뒤통수가 부끄러워져 질 때가 있다.

-시인으로서 가장 큰 행복은.
▲'시'라고 하는 세상에서 가장 큰 '빽'을 지니고 있다는 든든함이다. 그런 '빽'이 나에게 있기 때문에 삶에 있어서 소소한 행복이나 기쁨도 넘치지 않게 누를 수 있고, 큰 고난이나 불행도 조금 더 의연하게 견뎌낼 수 있다. 촌스럽게도 아직까지 제게 시는 종교와도 같고 시쓰기는 기도 혹은 고해성사와도 같다. 그리고 무엇보다 '한 소식'처럼 날아 온 시 한 편을 썼을 때의 기쁨이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벅찬 그 무엇이다. 그런 순간을 기다리는 행복도 있다.

-어떤 시인으로 불리고 싶은지
▲늘 꾸준하고 성실한 시인이고 싶다. 친한 동료 시인은 “제발, 성실 좀 하지마”라고 노래를 부르기도 하지만. (웃음) 자동차를 정비할 때 '기름치고 닦고 조이고'하는 것처럼, 나도 '걸러내고 덜어내고 비우며' 자기갱신을 하는 시인이고 싶다. 한결같지만 늘 반성하고 반추하는 그런 시인이 되고 싶다.

-끝까지 시를 쓸 것인지.
▲시는 끝이 없는 것이다. 시를 쓰는 도중에 슬럼프가 올 수도 있겠고 이전보다 나은 시를 쓸 수 없게 될 지도 모르겠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시를 안 쓸 수 있는 용기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되지도 않는 시를 왜 끝까지 써야 하나.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는 것을 가정했을 때 끝까지 쓸 것이다. 시인은 정년퇴직이 없는 직업이지만 요즘에는 스스로를 다잡는다. 내가 기존의 시와 다르거나 더 나은 시를 쓸 수 없으면 안 쓸 수 있어야 한다고. 그런데 '나아지고 있다'는 그게 주관적인 것이라, 사실은 잘 모르겠다. (웃음)

-다음 작품에 관한 이야기는.
▲11월에 네 번째 시집이 나온다. 세 번째 시집이 순리적인 시간의 질서에 순연하게 따르는 견뎌내려는 시집이었다면, 네 번째 시집은 그 시간의 질서를 뒤섞고 놀린, 발랄한 시집이 될 거 같다. 지난 6개월 동안 '현대시 100년, 100편의 애송시' 연재와 잡다한 일들로 시를 쓰지 못했다. 방학을 계기로 숨 고르기를 하면서 다시 조율 중이다.

투데이코리아 정수현 기자 jsh@todayk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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