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방송 관계자들에 따르면 KBS, MBC, SBS 등 방송 3사가 거의 같은 시기에 일제히 고구려와 고구려의 정신을 이어받은 발해의 역사를 소재로 한 대하드라마를 방영키로 한 데 대해 중국 측이 '정치적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고 의심하는 등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고 한다.

중국측은 방송 3사의 이 같은 움직임이 최근 중국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동북공정(東北工程)' 작업에 대한 한국 정부 차원의 대응이 아닌가 의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김명곤 문화관광부 장관이 지난달 중국을 방문했을 때도 당초 면담이 예정돼 있던 중국 광전총국장이 사흘 전에 갑자기 면담일정 취소를 일방 통보하는 등 '한류'와 '고구려 사극'을 둘러싼 이상기류가 감돌고 있다고 문화부 관계자가 밝혔다.

중국이 고구려나 발해등 역사문제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동북공정을 추진하는 이유중의 하나로 민족주의를 들 수 있다.

우리 한국인들에게 민족은 익숙한 단어이다. 자랑스러운 반만년 민족사, 단일 민족, 백의 민족, 식민지 시대의 독립운동, 분단 시대의 민족통일운동, 독도를 둘러싼 일본과의 영토 문제, 고구려와 발해를 둘러싼 중국과의 역사 갈등, 자유무역협정(FTA)과 북한 핵을 둘러싼 미국과의 갈등, 아시아의 한류 현상에 대한 자부심, 2002년 월드컵에서 등장하여 국가대항전이 벌어질 때면 쉽게 들을 수 있는 ‘대~한민국’이라는 구호 등, 민족은 어디에나 존재하고 있었고 지금도 그러하다.

베네딕트 앤더슨은 민족주의의 기원과 전파라는 그의 저서에서 민족이 근대 세계가 형성되면서 정치적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인류학적 문화적 조형물이라고 주장한다.

근대 세계가 요구하는 정치적 필요에 의해 가족, 인종, 언어, 역사, 영토 등 인간의 삶을 구성하는 다양한 문화적 요소들이 동원되어 특정하게 제한된 인간 공동체를 규정하고 그 내부에서 평등한 구성원들이 주권을 갖는다고 상상되는 인간 공동체가 바로 민족이라는 것이다. 이렇듯 민족을 상상하게 만드는 의식적인 운동이 바로 민족주의의 기원이었는데, 이것은 주어진 정치적 상황에 따라 매우 다양한 방식으로 변형되어 전파되었다는 것이다.

한국의 근대사에서도 민족과 민족주의라는 표현은 19세기 후반에는 거의 사용되지 않다가 20세기에 들어와서, 즉 1908년 무렵이 되어서야 대한매일신보에 오늘날과 같은 의미로 널리 사용되기 시작했다.

또 다른 맥락에서 민족주의에 대한 비판은 근대를 만든 두 개의 중요한 사상인 자유주의와 사회주의에서도 발견된다. 자유주의에서 중요한 역사적 주체는 개인이었으며 사회주의에서 그것은 계급이었다. 때문에 민족과 민족주의라는 현상이 확산되어 갔을 때, 자유주의는 그것을 외면하거나 필요악 정도로 취급했고 사회주의는 계급적대의 소멸과 더불어 사라질 허위의식이라고 규정했다. 나아가 두 사상은 민족주의에 대한 적대감을 공공연하게 드러냈다.

최근 미국이 신자유주의적 입장에서 FTA를 추진하면서 민족(국민)경제의 보호를 주장하는 세력들에 대해 적대감을 드러내는 것을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미국의 주장이 자유주의에 기대고 있지만 그 실체는 미국의 민족주의라는 것은 너무도 분명해 보이지 않은가? 또한 20세기말 사회주의권이 붕괴하면서 그 공백을 채워주고 있는 것은 바로 민족주의였다.

그렇게 본다면 민족주의는 앞으로도 여전히 강력한 힘으로 다가올 것이 분명하다. 20세기의 민족주의가 팽창과 통합적인 것이었다면 21세기의 민족주의는 이미 강고해진 국가경계선으로 인해 국가 내부에서 분리와 해체가 강화되는 ‘돌연변이 민족주의’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한 바 있다. 그에 따르면 소련의 붕괴 이후 동유럽에서 여러 민족국가들이 만들어진 것이나, 유럽통합의 와중에서 여러 민족들의 자치 움직임이 강화되는 것이 바로 그러한 사례들이다.

중국이 강력한 대내외적 민족주의 노선을 추구하는 것은 동북공정을 통해 고구려 역사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내부의 분리와 해체의 움직임에 대응하기 위한 우려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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