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복수노조·노조전임자 임금제한 3년 유예'라는 보도를 접하는 순간 시침이 저절로 김영삼 정권 후반기인 지난 97년 하반기로 돌아갔다.

YS정부는 권력말기임에도 노사관계개혁에 드라이브를 거는 저돌성을 보였다.

당시 노동부 출입기자로서 노동부 장관이었던 진념 前부총리 겸 재경부장관을 독대해 전임자 임금에 대해 유도심문(?)하던 일, 명동성당에 설치된 비닐 천막에서 권영길 당시 민주노총위원장과 인터뷰하던 일,노사관계개혁추진위 사무국장이었던 김성중 노동부 차관과 잔을 돌리며 협상 뒷얘기를 취재하던 기억 등이 주마등처럼 스친다.

기자는 이 과정에서 노·사·정(勞·使·政)합의를 통한 혁신의 어려움과 정부 주도의 어설픈 개혁의 폐해를 절감했다.노동계의 총파업과 경영계의 노골적 반발은 그렇지 않아도 힘빠지던 YS정권을 뒤흔들기에 충분했다. 총파업으로 인한 경제적 손실은 물론 소모적인 노사정 불협화음에 따른 사회적 손실은 실로 막대했다. 그런 손실이 3차례에 걸친 시행 유예로 앞으로 3년후까지 계속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안타까운 노릇이다.

이번 '유예'는 '뜨거운 감자'를 일단 놓고 보자는 참으로 무책임한 발생이 아닐 수 없다. 내년 말 선거를 통해 새로 들어설 정권은 좋든 싫든 이 감자를 다시 집어 들어야 한다. 하지만 YS가 김대중 정부에, DJ가 노무현 정부에, 그리고 3번째로 노무현 정부가 차기 정권에 넘긴 이 현안을 차기 정권인들 어찌하랴!

전임자 임금제한 유예는 이미 거대노조가 형성돼 있는 사업장에 고정자금지출 부담과 경쟁력 약화로 이어진다. 복수노조 허용 유예는 수 만명의 근로자를 보유한 일부 대규모 사업장의 어용노조의 생명을 연장시킨다.

그렇다면 엄청난 대가를 치르고 아직도 미완성으로 남아있는 노동개혁에 책임질 자는 과연 누구인가?

집권자 탓으로 돌린다면 그들은 퇴임했거나 퇴임 예정이어서 책임추궁에 한계가 있다. 입법부의 국회의원들은 선거를 통해 일정부분 책임을 진다고 간주할 수 있다. 노·사 집단은 전체 국민보다 자기 집단의 이익을 위한 야합 자체가 본업일 수 있다는 점에서 면책의 여지가 있다.
남는 것은 책임의 정도에서 비록 피라미(?)에 그친다해도 고위 노동관료들이다. 이번 합의로 한 건 했다고 으쓱해 할 법한 일부 고위 관료의 얼굴들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하지만 노·사의 중간자 입장에서 노동개혁을 완결해야할 책무를 지닌 그들은 그 동안 헤아릴 수 없는 협상과 회의를 하며 국민세금만 축냈다는 점을 잊어서는 곤란하다.

노사정 협상에서 교량역활을 하는 고위 노동관료들은 먹어야 할 '감자'라면 이를 감탄고토(甘呑苦吐)하지 말도록 집권자와 정치권에 직언해야 한다.

노사 집단과 야합에 교만떨지 말고 국가의 앞날을 헤아려 바르고 일관된 목소리를 내길 기대한다.

노동 관료의 책임있는 자세는 3년후 노동개혁 완결의 첩경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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