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국회의원 나경원

인터넷은 냉전이 절정에 이르던 1960년대 후반, 소련의 공격에도 안전한 네트워크를 구축하기 위한 미국의 프로젝트에서 시작되었다. 인류 생활의 혁명을 일으킨 진보기술이 냉전의 부산물로 탄생하게 되었다는 것은 아이러니하지만, 이후로 인터넷은 장족의 발전을 거듭하여 현대 문명의 총아로 대표되기 이르렀다.

흔히들 인터넷은 '가장 열려있는 매체'라고 말한다. 인터넷이 빠른 속도로 시대를 장악할 수 있었던 것도 그 정보의 개방성, 폭넓은 공유성, 또 확산의 신속성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최근의 인터넷을 보면 가장 열려있는 장(場)이라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이미 인터넷에서 자신과 다른 의견을 지닌 쪽을 내치고 발언의 기회조차 박탈해 버리는 행위가 빈번히 자행되고 있고, 이런 환경 속에서는 다양한 의견이 개진되기 어렵다.

얼마 전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포털사이트의 광고 불매운동 게시글 일부에 대해 위법 판정을 내린 바 있다. 심의위의 이번 판단은 온라인 불매운동에 대한 사실상의 첫 유권해석으로, 향후 이와 유사한 가능성에 대비할 수 있게 되었다는 측면에서 그 가치를 평가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인터넷이란 공간에서의 행위에 대한 책임성을 명확히 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각 포털 사이트들은 차제에 이런 가능성에 대비해 자정 기능을 강화해 사생활 침해나 명예훼손 등의 위법적 사안을 미연에 방지하는 데 최선을 다해야만 할 것이다.

그간 인터넷이라는 공간이 지닌 자유를 보호한다는 미명 하에 우리 사회는 인터넷의 역기능에 그대로 노출되어 왔다. 실제로 07년 6월 7일부터 22일까지 정보통신부와 정보통신윤리위원회가 전국의 만 13세 이상 남녀 인터넷 이용자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2007년 불법, 청소년 유해정보 이용실태 조사'결과에서, '욕설,비방,허위사실 유포 등 사이버 폭력'이 인터넷 역기능 중에서 84.3%나 차지했다고 밝혀졌다. 또 불법,청소년유해정보의 유통경로 중에서 인터넷 검색(55.1%)이 가장 높다고 밝혀진 바 있다.

현재의 이런 상황을 그대로 방치하는 것은, 미래의 가능성을 스스로 짓밟는 것과 동시에 직무유기가 될 것이다. 인터넷이 진정한 열린 매체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스스로의 자정 노력이 절실하다. 인터넷 속에서 하나의 주장만이 득세하고 다른 주장을 탄압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의견들이 골고루 섞일 수 있는 구조적 노력을 해야 한다. 인터넷 포털이 자정되지 않은 네티즌의 과격한 표현물을 제어하고 불법 행위가 일어나는지 점검하는 것은 검열이 아니라 자율 규제에 속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단순한 자율 규제와 더불어 사회적 합의를 통한 규범들을 세워나가려는 노력이 있어야 할 것이다. 인터넷에 대한 적절하고도 합리적인 규범 확립으로, 악플이나 허위사실 유포와 같은 부정적인 기능을 최소화시키려는 노력이 적극적으로 필요하다. 인터넷 공간이 법치주의의 예외가 될 수는 없다. 인터넷도 우리 사회의 한 부분으로 사회적 규칙이 그대로 적용된다는 사실을 되새겨 보아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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