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찔레꽃’의 정도상 작가

< 사진 = '상상마당' 북 콘서트 >

지난 23일 홍대 앞 '상상마당' 공연장에서는 특별한 콘서트가 진행됐다. 음악과 문학이 한 무대에서 어우러지는 이름하여 '북 콘서트'. 이 콘서트에 출연한 정도상 작가는 신간 '찔레꽃'의 한 부분을 직접 낭독하면서 사회자의 질문에도 성심껏 대답해주었다. 정도상 작가가 펼치는 흥미진진한 소설의 '뒷이야기'를 지금부터 만나보자.

-대표작을 소개한다면.
대표작은 앞으로 쓸 것이 남아있다. 지나간 대표작으로는 87년에 쓴 '친구는 멀리 갔어도'와 3년 전에 쓴 '개 잡는 여자'라는 작품이 있다.

-유독 분단,정치,사회 문제를 많이 다뤘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 째는 작가란 게 본래 양아치, 불량배이다. 세상에 모든 불량배와 양아치는 꼰대들에게 저항하고, 꼰대들이 잘못하면 개기고 싸우고 부딪힌다. 나도 그런 식으로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 두 번째는 내가 뛰어난 작가가 아니라 상상력이 부족하다. 현실을 넘어서는 상상을 못하고 현실 안에 갇혀서 현실의 문제만을 보는 것 같다.

-'찔레꽃'을 쓰면서 힘들었던 점은.
이 소설을 쓰면서 많이 힘들었다. 영하40도의 날씨에 하얼빈에서 목단강까지 난방도 안되는 버스를 타고 4시간 동안 간 적도 있다. 추위에 오들오들 떨면서 그들의 삶의 궤적을 추적했다. 막상 소설 자체를 쓰는 시간보다도 사람들을 만나고 그 지역을 가보는 과정이 더 힘들었다.

-인물의 묘사가 생생하다. 실제 모델이 있는지.
실제모델은 중심적으로 한 명이 있고 그 외에 네 명이 붙어있다. 네 명의 사람이 한 인물로 집약된 것이다. '겨울, 압록강'에 소개된 '미나'라는 친구를 안마하다가 우연히 알게 되고 이 친구가 북한여성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소설을 쓰게 됐다.

-탈북자들이 꿈꾸는 삶은 무엇인지.
첫 째는 신분증을 얻는 것, 곧 자유를 얻는 것이다. 두 번째는 인간의 존엄을 지키는 것이다. 사실 나는 처음에 탈북자들이 그저 먹을 것만 찾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만나보니 그들이 가장 관심을 갖는 것은 자기 자신의 존엄을 지키는 것, 인간으로서 가치를 누리는 것이었다. 이런 이야기를 듣고 나서 그들을 보는 시선이 많이 바뀌었다.

-그들의 실상은 어떤지.
그러나 인간의 존엄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들 스스로 선택한 운명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사실 이 소설을 쓰면서 북의 커다란 '가짜'와 씨름을 했다. 밀란 쿤데라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키치'라는 말이 나온다. 파리의 진짜 에펠탑이 있으면 그 아래 기념품 가게에서 파는 가짜 에펠탑이 말하자면 키치이다. 쿤데라는 소설에서 사랑의 키치를 얘기한다. 사랑하는 것 같은데 사실은 가짜로 사랑하는 것. 이것이 사랑의 키치이다. 이어서 공산주의의 키치를 얘기하는데 사실은 이것도 가짜인 것이다. 내가 '찔레꽃'에서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첫 번째로 아무리 공산주의의 이데올로기가 위대할지라도 인민을 굶기는 공산주의는 키치가 아닌가. 두 번째는 북한의 인권을 얘기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인권을 빙자하여 돈벌이에 몰두하는 것을 보면서 인권의 키치를 생각했다. 이 두 가지의 키치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며 글을 썼다.

-'찔레꽃'은 어떻게 쓰여진 건지.
2000년 초반에 꽃집에 관한 다큐멘터리가 방송된 적이 있다. 어떤 꼬마 하나가 탈북해 떠돌다가 초원에서 얼어죽는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였다. 이 방송을 아들하고 같이 봤는데 그때 아들이 '저거는 아빠가 반드시 써야할 소설'이라면서 제목을 '얼룩말'이라고 지어줬다. 그때부터 많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 나는 사실 북을 비판하는 글을 쓰기가 어려워서 참고 버티고 있었는데, 남쪽의 작가들은 '탈북자'에 대해 아무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이런 상황을 안타까워하던 중 심양에서 충심이라는 탈북자를 만나면서 그동안 미뤄왔던 것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
'얼룩말'의 원형은 이렇다. 아프리카 초원에 건기가 찾아오면 얼룩말떼가 먹이를 찾아 이동을 하게 된다. 이 얼룩말떼가 '세렝게티' 초원으로 건너가기 직전에는 '마라강'이 있는데 이 강을 건너다가 많은 얼룩말들이 악어에게 잡아먹힌다. 이 이야기를 동화의 형식으로 쓰면 사람들이 많이 이해할 것 같다고 아들이 이야기를 해줬다. 이후 충심이라는 탈북자를 만나 '소소, 눈사람 되다'라는 작품을 썼고 그때부터 소설이 본격화 됐다고 할 수 있다.

-오늘날의 문학이 사회적 문제를 어떻게 다뤄야하는지.
일본의 평론가 가라타니 고진이 '한국 근대문학의 종언'이라는 글을 쓴 적이 있다. 고진은 90년대 초반 한국에 와서 몇몇 작가들을 바라보고 이 같은 종언을 고했다. 나는 고진이 왜 하필이면 한국문학의 주류랄지 중심에서 활동하는 작가들을 만나지 않고, 변방에 있는 작가들을 만나고 돌아가서 한국 문학의 종언을 얘기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고진은 문학이 역사로부터 부여받은 사명을, 근대가 산업화로 넘어서고 산업화가 정보화사회로 넘어서면서 이러한 역사적 사명이 다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은 아직 근대가 완성되지도 않았고 혹은 제대로 된 근대가 시작되지도 않았다고 생각한다. 내가 사회적 문제에 대해 관심을 기울여 온 이유는 '꼰대한테 저항한다'라는 것이 핵심일 수 있다. 작가는 반체제적 존재가 아닌 비체제적인 존재라고 늘 생각해왔다. 작가에게 제 1의 조국은 영토가 아니고 이데올로기도 아니고 바로 '모국어'이다. 불행히도 우리나라 모국어는 지난 100년 동안 심각하게 훼손당하고 상처받았다. 아직까지 우리는 그 상처가 치유되지 않았고 치유될 가능성이 상당히 멀리 있기 때문에 사회적인 글은 여전히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80,90년대 낡은 방식의 소설로는 부적당하겠다. 우리 작가들이 끊임없는 노력, 상상력 속에서 사회문제와의 접합을 시도했으면 좋겠다.

투데이코리아 정수현 기자 jsh@todayk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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