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기 유엔 사무총장이 유력시 되는 반기문(62) 외교통상부 장관은 '장(長.general)'이기 보다는 '사무관(secretary)'적 성격이 강할 것으로 예상된다.

반 장관은 유엔 안보리가 6월 이래 실시한 4차례의 비공식 투표에서 1위를 차지해 9일 실시될 공식투표에서 사무총장 후보 피선이 사실상 보장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오랜 선출과정에서 유엔 개혁 필요성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했지만 구체적인 사안에 대한 언급은 별로 없었다. 이 때문에 많은 정치 분석가들은 그가 적극적일지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명문 포 대학 국제관계 교수인 버트랜드 바디에는 "안보리 이사국들은 그다지 카리스마가 없고 야심적인 계획을 갖지 않은 것으로 보이는 튀지 않는 사람을 선출했다"면서 "그는 무엇보다도 관리문제에 관심이 있다"고 말했다.

코피 아난 사무총장은 미국에서 정기적으로 비판을 받았지만 그를 더 선호한 유럽은 임박한 반 장관의 등장에 별다른 동요를 보이지 않고 있다.

네덜란드 클링겐다엘 국제관계연구소의 유엔 전문가인 딕 뢰르디지크는 "반 장관은 우리가 아난 총장에게서 보았던 것 처럼 주도권을 장악할 준비가 돼 있는 적극적인 외교관은 아니다"라고 평가했다.

그는 "반 장관은 가게를 그저 돌보기만 했던 아시아인 전임자 우 탄트와 비슷할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버마 외교관 출신인 우 탄트는 1961년부터 71년까지 유엔 사무총장을 지냈다.

그러나 이런 평가에도 불구하고 북한과의 어려운 협상을 통해 연마된 반 장관의 억제적인 매너는 꼼꼼하게 숙고하는 그의 노련함과 합쳐져 아난 총장이 세계에서 가장 어려운 자리라고 묘사한 자리를 떠 맡을 때 크게 도움이 될 게 틀림없다.

프랑스와 하이부르 파리 전략연구기금 이사는 "반 장관과 같은 인물이 갖기 마련인 합의도출 기술이 그가 결국 큰 일을 해내도록 해줄지 모른다"면서 "아시아인의 온화한 매너를 강인함이 부족한 것으로 오해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비판론자들은 반 장관을 기본적으로 미국측 후보로 간주한다. 다른 상임이사국들이 적당한 대체후보를 발견하지 못해 받아들였을 뿐이라는 것이다.

프랑스어를 구사하는 반 장관은 인도의 샤시 타투르를 포함한 다른 아시아인 후보의 도전을 물리치고 프랑스의 지지도 얻었다. 타투르 후보는 4차례의 투표에서 줄곧 2위를 차지했으나 4차 투표후 후보에서 사퇴했다.

비판론자들은 미국이 선호한 후보라는 점에서 반 장관이 미국에 용감히 맞서면서 유엔을 국제무대에서 미국을 견제할 정치견제체로 활성화하기 위해 노력할 것으로 기대하지 않고 있다. 반 장관이 2차대전 승전국인 미국, 러시아, 중국, 프랑스, 영국 등 5개국에게 거부권을 준 1945년 유엔체제를 철저히 개혁할 것으로 보는 분석가도 많지 않다.

유엔의 관료주의를 합리화하려는 아난 총장의 야심적인 노력은 개발도상국의 반대에 부딪쳐 대폭 축소됐다. 반 장관은 목표를 너무 높이 잡은 전임자의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일부 외교관들은 미국이 유엔을 조종하려 할 것이라는 점을 들어 반 장관이 강대국에 저항할 능력이 있는 주체성을 입증해 보일 수 있을지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아난 총장은 미국 주도의 이라크 침공을 비판함으로써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과 충돌했다. 반 장관의 미국에 대한 태도도 주목 대상이다.

살만 하이더 전 인도 외무장관은 "미국은 유엔을 조종하고 유엔의 역할을 최소화하기 위해 부심해왔다"면서 "세계는 반 장관을 예의 주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반 장관이 임기 초 당면할 외교적 도전은 다르푸르 위기다. 수단은 다르푸르 지역의 학정을 종식시키기 위한 유엔의 평화유지활동 계획에 반대하고 있다.

또 다른 국제문제는 한반도와 관련된 것이다. 북한은 유엔이 주관하는 핵무기확산금지조약(NPT)에 공개적으로 도전하고 있다.

일부 분석가들은 그러나 한국인인 반 장관이 이 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 있을지에 의문을 표시하고 있다. 어떤 경우라도 중립적으로 보이기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포 대학의 바디에 교수는 "그가 북한문제에 대해 역할을 할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면서 "특히 중국은 유엔의 한국 개입을 바라지 않으며 그것이 반 장관의 사무총장 후보 선출에 반대하지 않은 이유일지 모른다"고 지적했다.

결국 반 장관에 대한 평가는 국제위기를 다루는 데서가 아니라 아난 총장이 시작한 유엔개혁을 추진하는 능력에서 판가름날 가능성이 높다.

런던 소재 비영리 외교자문그룹인 독립외교협회의 로스 카르네 이사는 "유엔 개혁에 대한 반대가 강하기 때문에 반 장관에게 허니문 기간은 없을 것"이라면서 "유엔개혁에는 엄청난 에너지와 용기가 필요하지만 그렇다고 이뤄질 수 없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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