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세계무용축제 "2006 SIDance" 향연


말의 징검다리로 건널 수 없는 몸짓 언어의 향연이 한창이다. 올해로 9회째를 맞는 서울세계무용축제(SIDance)가 지난 10일부터 오는 25일까지 예술의 전당 토월극장, LIG아트홀, 호암아트홀,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극장 용 등지에서 펼쳐지는 것. 국제무용협회 한국본부가 주최하고 SIDance 조직위원회가 주관하는 이번 축제도 예년 못지않게 풍성하다. 세계적 명성을 자랑하는 국내외 무용가들이 한 마음으로 합심해 그려내는 몸짓 언어들과 각종 부대행사가 가을날 서울을 춤바람으로 물들이고 있다.

테로 사리넨 무용단의 공연으로 개막

핀란드 테로 사리넨 무용단의 '페트로슈카(Petrushka)'

서울세계무용축제 개막 프레스 리허설이 핀란드의 테로 사리넨 무용단의 공연으로 마련돼, 지난 10일 오후 3시 예술의 전당 토월극장에서 그 대단원의 막을 올렸다. 핀란드 컨템포러리 무용을 대표하는 사리넨은 개막공연에 앞서 인터뷰를 갖고 “다시 한국을 찾게 돼 기쁘다”며 “작년 한국 관객들이 보내준 열광적 반응과 작품에 대한 진지하고 심오한 비평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재방한 사유를 밝혔다. 지난해에도 SIDance를 찾은 사리넨은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을 미디어에 침식당하는 육체로 변주해 큰 반향을 일으켰던 주인공이다. 올해는 남성 무용수 3인의 매력이 두드러지는 '미지로(Westward Ho!)', 남녀 무용수의 고전적인 듀엣이 아름다운 '떨림(Wavelengths)', 2명의 아코디언 주자가 완벽히 재현해내는 스트라빈스키 음악에 맞춰 무용수들이 북유럽 특유의 동화 같은 춤을 선보이는 '페트루슈카(Petrushka)' 등 세 작품을 들고 찾아왔다.

이날 개막의 장이 된 예술의 전당 토월극장에서는 '핀란드 테로 사리넨 무용단(10~11일)'을 포함, '프랑스 낭뜨 국립 끌로드 브뤼마숑 무용단(13~14일)''한국 김은희 & 중국 꺼오옌진쯔 & 싱가포르 제프리 탄(17일)''한국 김희진 & 중국 롱우나 & 일본 시라카와 나오코(19일)''한국 유니버설발레단(21~22일)'이 선보인다. LIG아트홀에서는 '한국 젊은 무용가의 밤 Ⅰ(10~11일)''남아프리카공화국 빈센트 만쭈이 무용단 & 한국 이광석(13~14일)''한국 젊은 무용가의 밤 Ⅱ(16~17일)''한국 옛 춤, 새 얼굴(19~20일)'이 마련됐다. 호암아트홀에서도 4팀의 공연이 준비됐는데, '영구 쇼바나 제야싱 무용단(15일)''한국 서울발레시어터(18일)''한국 & 프랑스 남영호 무용단(21일)''이스라엘 이마누엘 갓 무용단(23~24일)'이다. 이와 함께 국립극장 달오름 극장에서는 '일본 다이라쿠다칸(20일)''스페인 조르디 코르테스 ․ 다미안 무뇨스 & 한국 이용인(22일)'이, 극장 용에서는 '프랑스 케피그 무용단(24~25일)'이 프로그램을 펼친다. 이밖에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열리는 각 무용팀들의 안무 '워크숍'과 '아프리카 음악 설명회''포럼''로비 이벤트' 등의 이채로운 부대행사도 기획됐다.

프랑스 낭뜨 국립 끌로드 브뤼마숑 무용단의 '심연의 우수(Laurent Philippe)'


몸짓 언어로 만들어진 소통의 집 '무용'

“저에게 춤은 인생이자 언어입니다. 말보다는 춤이라는 도구를 통해 나 자신을 더 쉽게 설명할 수 있을 정도로요. 춤이 있기 때문에 인생의 심오하고, 감각적인 면을 보다 잘 느낄 수 있습니다.” 지난 10일 개막 인터뷰에서 사리넨은 본인에게 '춤'이 갖는 의미를 이같이 고백했다. '몸짓 언어'를 구사하는 무용은 인간의 갖은 정서를 표현하는 또 하나의 소통 수단이 된다. 언어의 표정이 다르듯 몸의 표정도 여타 매개체로 표현해 낼 수 없는 특수성이 내재해 있다. 몸짓 하나가 갖는 강렬한 표정과 의미를 극대화시킨 무용은, 이번 축제만 봐도 별다른 번역 없이도 외국 작품들을 온전히 마주하며 공감할 수 있는 큰 무기를 지녔음을 알 수 있다. 일 명 '만국공통어'로 일컬어지는 무용이 국제무대에서도 유달리 친밀히 소통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한국 정신혜의 '이매방류 살풀이 춤'
그러나 국내 관객 현실은 여전히 무용 장르에 대해 소홀한 편이다. 그런 인식은 무용정책 지원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이용호 SIDance 예술감독(국제무용협회 한국본부 회장)은 “주변의 화려한 대형 축제들, 생겨나기도 참 쉽게 생겨나고 예산도 참 쉽게 쓰는 전국 각지의 온갖 행사들은 저희를 더욱 왜소하게 만들었다”며 “작년 축제에 대한 평가가 좋아 정부 지원금이 소액 늘어나긴 했지만 극장 대관료와 각종 비용의 무자비한 상승에 거칠게 묻혀버렸다”고 SIDance의 재정현실을 토로했다. 그는 이어 “기업들의 협찬을 얻기도 여전히 어렵다”며 “그 많은 예술품목 가운데 유독 무용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찬 밥”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그런 가운데서도 SIDance 뒤에서 일하는 사람들과 밖에서 찾아오는 사람들, 그리고 그들을 이어주는 무대들까지, 이 감독의 말대로 거대하고 화려하진 않지만 따스한 온기의 '자생의 힘'이 중심을 잡고 있다. 제법 쌀쌀한 기온이 감도는 가을의 한복판, SIDance가 건네는 따뜻한 몸짓에 그 아름다운 소통에 푹 빠져 보는 것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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