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날의 지적 스승들을 찾아 떠난 한 출판 편집자의 마음의 기록


여기 훌쩍 여행을 떠난 한 남자가 있다. 현 출판 편집자인 박수인(38)씨는 배고팠던 이십대, 그러나 돈이 없다는 것이 “그냥 하나의 사실이었을 뿐”이었던 그 시절, 도서관 서가에서 정신적 사랑에 빠졌던 지적 스승들을 찾아 나섰다. 마음 속 스승들의 발자취를 따라 순례길을 가듯 유럽을 한 바퀴 돌았고, 그들의 묘에 들러 오래 묵은 말을 걸고 사진을 찍었다. 그들이 남긴 작품과 사상의 한 자락을 그들이 걸었던 그 길에서 다시금 떠올리고 곱씹었다. 그리하여 그의 여행은 일종의 '묘지기행'이자 '테마가 있는 문화기행'이고 동시에 '그리운 옛 사랑을 만나는 여행'이었다.

저자는 여행을 떠나기 전, 그곳에 가면 만나야 할 사람들의 긴 리스트를 적어 내려갔다. 노동가이자 예술가였으며 전쟁의 참화로 꽃 같은 목숨을 잃은 모든 독일 청년의 어머니였던 케테 콜비츠, 생의 비의와 '살아 있으라'는 명제를 온몸으로 실천한 실존자 '그리스인 조르바'의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 극심한 가난과 육체적 고통 속에서도 화가들의 공동체를 꿈꾸었던 반 고흐, 낭만주의의 열정적 걸작 '폭풍의 언덕'의 에밀리 브론데, 19세기와 20세를 휩쓸고 지금도 유력한 철학적 원천이 되고 있는 카를 마크크스, 혁명가로서 비극적 최후를 맞이한 안토니오 그람시, 미술사의 거대한 산맥 세잔과 피카소 등을 포함한, 산 사람보다는 죽은 사람이 더 많은 리스트를 말이다.

그렇다고 저자가 현지에서 살아 숨 쉬며 생활을 일구고 있는 이들을 외면한 건 아니다. 모든 여행이 그렇듯, 그는 여행 곳곳의 현지인들을 만나 기쁘고 반갑고 불쾌하고 황홀했다. 리웅역에서 커피 자판기를 고치던 제3세계 동지 아랍 사내, 사파티스타의 얼굴이 그려진 티셔츠르르 입은 그에게 윙크를 보내던 한 이탈리아 노인, 스페인 무정부주의자의 후손인 '소시알리스따' 친구 올가의 기억, 코뮌 전사의 묘에서 우연히 마주친 고향 마을 성당의 신부님들. 신 자유주의와 무관심이 전 지구를 휩쓰는 이 씁쓸한 시대에 그는 이들의 미소에서 전해오는 마음에서 연대감과 힘을 얻고 여행을 계속한다.

그러나 여행의 모든 추억이 즐겁기만 한 것은 아니다. 안토니오 그람시가 영화배우의 이름이내고 되묻는 스페인 대사관 직원, 할 수만 있다면 숨 쉬는 공기에까지 돈을 매기려들 이탈리아 여행지들, 빈센트의 흔적보다 관광객이 더 많은 반 고흐의 밤의 카페, 그리고 가난한 이들의 성자인 성 프란체스코를 만나고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호화로운 예배당과 오가는 돈다발을 떠올리며 저자는 “쓸쓸하고 또 쓸쓸했다”고 적고 있다.

이같은 여행의 풍경 속에서 저자가 매번 마주치는 것은 결국 그가 돌아갈 자리와 그곳에 있는 사람들이었음을 고백한다. 바흐를 찾아간 성 토마스 교회에서 그는 바흐의 아내 안나 막달레나를 통해 자신의 어머니를 떠올렸고, 신탁의 성소 델포이에서는 서울로 돌아가면 살아내야 할 생활의 예감을 떠올렸다.

저자는 여행은 왜 떠나는가 하는 물음에 이렇게 답한다. “여행이란 음악과 같다. 음악이 시간 속에서 소멸됨으로써 완성된다면 여행 또한 그렇다. 그리고 아스라한 기억이 남는다. 이런 기억으로, 좋은 추억으로 우리는 겨우 살아가는지도 모른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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