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김용태 의원>

2008년 9월 11일은, 한나라당에게 있어 '기록적인 참사'로 남을 것이다.
그날을 넘긴 새벽 3시 40분, 직권상정조차 못한 상황을 들으면서 우리 한나라당 의원들은 얼이 나갔다. 견딜 수 없는 모멸감이 의총장을 휩쓸었다.
이것은 전략적 판단 오류에 의한 참사가 아니다. 관성에 의해 누적된 참사도 아니다. 참을 수 없이 가벼운 안일이 만들어낸 해프닝성 참사이기에 그간 한나라당이 겪었던 그 어떤 것보다 내상이 클 것이다.
그러나, 이번 사태 책임을 의원들의 안일한 대응 태세에서 비롯된 해프닝으로 돌릴 수는 없다. 이번 사태는 그간 홍준표 원내대표단의 행태가 빚은 “구조적 참사”로 규정해야 한다.
원구성 협상에서 원내대표단은 수차에 걸쳐 전술적 오류(쇠고기 특위 증인채택 문제 등)를 범하면서 민주당에 끌려 다녔다. 더 큰 문제는 원내대표가 협상에 있어 원칙과 질서를 저버리고 '원 구성이 지상 목표이며 이를 위해서는 다 양보할 수 있다'는 전략적 오류를 범했다는 것이다. 그 어디에도 자신의 목표를 앞세워 제 카드를 다 보여주는 협상은 있을 수 없다.
이러한 와중에 원내대표가 소집했던 의원총회나 예정되었던 국회 회의가 수없이 연기되고 취소되었다. 비상대기를 반복하다가 하루가 지난 날이 얼마나 많았던가?
이번 9월 11일 사태도 이와 똑 같은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2시에 본회의를 할 수 있을 거라는 통보가 추후 연기되고, 급기야 저녁 내내 비상대기로 바뀌었다. 상황이 이러할진대 '오늘도 본회의가 열리기는 틀렸다'는 생각을 한 일부 의원들을 탓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그 다음날은 추석연휴 전날이라 지역일정이 빼곡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다시 한번 확인하거니와 이날의 참사는 '양치기 소년의 비극'이었다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홍준표 대표는 사태의 모든 책임을 지겠다고 선언했다. 하루가 급한 추경예산을 통과시키지 못한 비상한 상황, 한나라당 출신 국회의장조차 직권상정을 할 수 없게 만든 그 사태, 그리고 선진과 창조당에게 애걸하다가 보기 좋게 거절당한 그 수모에 책임을 진다는 것이다.
물론 책임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한나라당이 입은 이 내상은 어찌할 것인가? 정기국회에서 민주당에게 주도권을 빼앗겨버린 전략적 손실도 막심하거니와 과연 국민들이 한나라당을 어찌 볼 것인가를 생각할 때 기가 막힐 뿐이다. 이 자괴감을 어찌한단 말인가?
이제 도리가 없다. 홍준표 원내대표단은 신속하게 후임 원내대표단이 구성될 수 있도록 길을 터주고, 후임 원내대표단은 정기국회를 향해 새롭게 출발해야 한다. 후임 원내대표단에게 다른 무기가 있을 수 없다. 그것은 <원칙>과 <용기>이다. 일치단결, 이번의 내상을 치유하면서 정기국회에서 이명박 개혁을 전면화해야 한다.
한나라당에게 물러설 곳은 없다. 뒤는 死地다. 앞으로 나아가는 용기와 좌고우면하지 않는 원칙만이 한나라당의 살 길이다.

한나라당 국회의원 김 용 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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