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집 '너는 이 세가지를 잊지 말라' 저자 인터뷰

고2 때 일생 단 한번의 편지
당신이 가지지 못한 세가지요
간절히 소망한 세 가지였음을

달자 보아라

죽을 때까지 공부를 해라
돈도 벌어라
행복한 여자가 되거라

-에미가

문단데뷔 40년이 훌쩍 넘는 원로중견시인 신달자(63)의 산문집 '너는 이 세 가지를 명심하라'가 나왔다. 지난 25일 서울 명지전문대 문예창작과 교수실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가진 신 시인은 “우리 어머니가 가지지 못한 세 가지를 나 고교 2년 때 당부하셨는데, 내 나이 50에 이르러서야 이룬 이야기”라고 첫 말문을 열었다. 그녀는 “어머님에 대한 이야기가 늘 내 마음에 가시처럼 박혀 있으니 굵은 가시를 뽑아버려야겠다는 생각에서 이 책을 결심했다”며 “나도 나이가 많고 딸들도 있고 해서 내 딸들에게 무슨 이야기를 해 줄 수 있나 살펴봤더니 결국 시대가 변해도 어머님이 내게 해 주신 이런 말씀이겠더라”고 연륜이 빚어낸 집필사유를 밝혔다.

문맹 어머니가 손수 쓰신 석줄 당부

시인 신달자는 자신의 이름자도 겨우 쓰는 어머니로부터 일생 단 한 번의 편지를 받았다. 그 내용인 즉, “달자 보아라. 1. 죽을 때까지 공부를 해라 2. 돈도 벌어라 3. 행복한 여자가 되거라 -니 에미가”라는 삐뚤삐뚤한 글씨에 받침이 다 틀린 석줄 당부의 말이었다. 신 시인은 “이것이 내 어머니의 모든 학문이며 학식이며 지식이었다”고 적고 있다. 그녀의 나이 열일곱에 처음 들었던 당부를 대학 들어와서 더는 잊어버릴 수 없는 문자로 다시금 일깨워준 것. 그것은 어머님이 가지지 못했으나 간절히 소망했던 세 가지였음을 그녀도 잘 알고 있었다. 여섯 딸 가운데 막내였던 그녀에게 마지막으로 걸었던 어머니의 그 당부를, 그러나 신 시인은 스물다섯 결혼과 동시에 져버렸다. 가난한 생활에 치여 공부도 시도 접고 불행한 시절을 보내는 그 딸을 독촉하며 지켜보던 어머니는 어느 순간 기대를 놓아 버렸고, 이어 일 년도 채 안 돼 작고한 것.

신 시인은 “어머님은 내 이룸의 출발도 못 보고 가셨다”며 “어머님 살아생전에 이루지 못한 죄의식이 세월이 갈수록 커졌다”고 밝혔다. 이런 그녀의 죄의식은 시집 '어머니 그 삐뚤삐뚤한 글씨'(2001)에도 잘 드러나 있다.

“일생 단 한 번/ 내게 주신 편지 한 장/ 삐둘삐뚤한 글씨로/ 삐뚤삐뚤 살지 말라고/ 삐뚤삐뚤한 못으로/ 내 가슴을 박으셨다/ 이미 삐뚤삐뚤한 길로/ 들어선/ 이 딸의/ 삐뚤삐뚤한 인생을/ 어머니/ 제 죽음으로나 지울 수 있을까요”('어머니의 글씨' 전문)

"가지 끝에서 떨어졌지만/ 저것들은/ 나무의 내장들이다// 어머니의 손끝을 거쳐/ 어머니의 가슴을 훑어 간/ 딸들의 저 인생 좀 봐// 어머니가 푹푹 끓이던/ 속 터진/ 내장들이다"('낙엽송' 전문)

신 시인은 이 시집 한권을 통째로 어머님께 바치는 시들로 가득 채웠음에도, 그녀의 어머님에 대한 안쓰러움과 이를 외면했던 자신에 대한 질책에서는 벗어나지 못했다. 이번 산문집 또한 어머니를 염두에 두고 바깥나들이를 시킨 것을 보면 말이다. 그녀는 “어머니는 제거나 절개할 수 없는 혈관 같은 존재”라며 “내 몸 속에 돌면서 언제나 나를 살아있게 한다”고 그 뗄 수 없는 상관관계를 말했다. 그렇다. 신 시인의 어머니는 그녀의 가슴에 죄의식이라는 굵은 가시만 박은 게 아니라, 그 가시에 박힌 고통으로 더 뜨거운 시를 쓰게끔 하는 원동력이 되기도 했던 것이다. 그녀의 시들이 가슴을 치는 절절함을 지닌 데에는 그런 '한'도 단단히 한 몫 했기 때문이 아닐까. 그것은 그녀의 시에 '서정성'으로 승화돼 독자들에게 한층 깊은 울림이 됐을 터. 어쩌면 그녀는 이번 산문집으로도 그녀가 빼고자 했던 '굵은 가시'를 여전히 가슴에서 내리지 못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걱정할 것 없다. 이제 그녀는 '가시'를 '시'로 빚어 낼 수 있으니.

시는 질투심 많아 시 앞에만 무릎 꿇어야

신 시인을 구원해 준 건 다름 아닌 '시'다. 어머니의 당부대로 평생 공부하게 해 줬으며 문예창작학 교수로 교단에 세워 꼬박꼬박 월급도 받게 해 줬다. 그리고 그녀 나름의 신념에 따라 행복한 여자로도 만들어줬다. 신 시인에게 시는 타자가 아닌 '나 자신'이다. 이런 합일을 이루기까지 그녀는 먼 길을 왔다.

그녀는 “시는 질투심이 많은 물건이라 딴 짓하다가 오면 안 받아주더라”며 “시한테만 무릎을 꿇어야 문을 여는 게 시”라고 고백했다. 정말 시와 내밀한 관계를 가진 시인에게서만 나올 수 있는 체험의 증언이다. 그래서 그녀는 “한동안 시 앞에만 무릎을 꿇고 문을 열어주길 기다렸다”며 “요즘에 이르러서야 좀 열리는 기분이어서 시 쓰는 게 참 즐겁다”고 소녀 같은 웃음을 지어보였다. 한창 사랑에 빠진 이처럼 '시'를 이야기할 때마다 '달뜬' 표정의 그녀를 바라보며, 육십 줄에 접어 든 그녀를 저처럼 설레게 하는 '시'가 새삼 커 보였다. 그런 시와 오랜 세월 벗해온 그녀 또한.

신 시인은 중 3때 태어나서 처음으로 시집을 구경했다. 그녀가 생각하는 책은 꽉꽉 글씨가 차 있는 것인데, 공간이 뻥 비어 있어 이상했고 그 공간이 아까웠다는 웃지 못 할 소감을 전했다. 그러던 소녀가 지금 그 빈 공간이 더 많은 말을 숨기고 있다는 걸 잘 알며, 그 숨바꼭질을 자행하며 즐길 줄 아는 시인이 됐다. 신 시인은 “한 때 살아가기가 너무 힘들어 나를 숨기려 내 상처를 숨기려 겉옷을 입히다 보니 내 시가 아닌 게 돼 버렸던 시절이 있었다”면서 “그러나 지금 손을 놔 버리고 순종하니 외려 시가 더 맑아지고 깊이가 나는 듯싶다”는 자평을 덧얹기도 했다.

그럼에도 시인은 여전한 욕심꾸러기다. 그녀는 “좋은 글을 보면 샘이 난다. 내가 이렇게 쓰고 싶었는데 하는 질투심이 난다”며 “반대로 좋은 글을 썼을 때는 정말 행복감을 느낀다. 거기에 누가 좋은 시 썼다 그러면 하루 굶어도 좋을 것 같다”고 시 앞에 어리광쟁이를 자처했다. 시도 그녀와의 이런 밀회를 더할 나위 없이 즐거워하는 게 분명하다. 선뜻 제 속살을 드러내며 좋은 시를 내어주는 걸 보면.

신 시인은 어느덧 내후년에 정년퇴임을 맞는다. 그녀는 이를 기념해 현재 쓰고 있는 연작시 등을 묶어 그 무렵 시집 2권으로 묶어 낼 계획을 차근히 진행하고 있다. 신 시인의 '샘나는 시'를 얼른 훔쳐보고 싶은 마음이 이 가을날만큼 깊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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