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고향 북 쪽 나라

하늘이 맑고 푸른 날은 고향 생각이 난다. 지금은 가 볼 수 없는 북녁 땅, 고향 생각을 하다 보면 언젠가 가 볼 수는 있을까 하는 생각에 가슴 한 구석이 답답해 질 때가 있다.

가서 내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 있는 날이 오기는 오는 걸까.

할아버지는 이 쪽 저 쪽을 다 겪어 보신 후에 며느리를 불러 앉혀 놓고 말씀 하셨다. 아무래도 빨갱이는 안되겠다. (남 쪽으로) 내려가라.

그래서 나는 어머니 손에 이끌려 남 쪽으로 오게 됐다.

사람의 운명이란 이렇게 한 순간에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그 때 만약 어머니가 아니 되옵니다. 저도 여기서 죽든지 살든지 아버님을 모시고 함께 있겠습니다 하고 효도을 했더라면 나는 꼼짝 없이 지금 쯤 어버이 수령의 품 안에서 '절대 행복'을 누리며 살고 있었을 것이다.

나는 오래 전에 평양에 단군 왕능이 있다는 소식을 들은 적이 있다.

단군 할아버지의 유골을 보관하고 있는 곳인데 그의 뼈는 보통 사람들의 것보다 커서 생존시의 우람한 체격을 상상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 때 나는 북 쪽 사람들의 단군에 대한 존경과 애정을 전해 들으며 감격했다. 한 가닥 의심이 없지는 않았지만.

우선 어떻게 그 것이 단군 할아버지의 뼈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었을까. 어디서 발굴해 냈을까 나의 상상력은 끝 없이 뻗어 나갔다. 곰, 호랑이, 웅녀, 그리고 쑥과 마늘 - - - - -

보통 사람의 뼈보다 커서 우람한 체격을 연상할 수 있다는 대목에 가서는 그럴 만도 하다고 생각했다.

한 민족의 시조가 되는 분이 가무잡잡하고 왜소한 모습을 하고 있다는 것은 말이 안되겠기 때문이다. 만약 통일이 된다면, 그래서 왕래가 자유롭게 된다면 나는 제일 먼저 단군의 유골이 보관 되어있는 곳에 가 보고 싶다.

좀 오래된 얘기지만 나는 또 들은 것이 있다.

북 쪽 사람들이 미국과 협상할 때 흥정하는 것 중의 하나가 6.25 동란 중에 전사한 미군들의 유해 반환이다. 이 세상 끝까지라도 찾아가는 미국 사람들의 '약점'을 아는 그 들은 유해 발굴을 도와 주거나 반환해 주는 조건으로 뭔가를 뜯어내곤 했다. 이에 재미를 붙인 북 쪽 사람들은 유골을 몇 구씩 띠엄 띠엄 '팔아' 먹곤 했다.

미 해병대의 사열을 받으며 성조기에 덮혀 귀국한 미군의 유골은 하와이에 있는 모 연구 기관에서 분석및 확인 절차를 거치게 된다.

누구의 것인가를 알아야겠기 때문이다. 한 번은 그 유골들이 개와 돼지의 뼈라는 것이 밝혀진 적이 있다.

단군의 유골은 확인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그들이 미군(승냥이)의 유골은 가려내지 못한 것이다. '거래'는 신용이 바탕이 되지 않으면 계속될 수 없다는 진리는 공부를 하지 않은 사람도 안다. 한 번은 넘어갈지 몰라도 두 번째는 쥐도 안 속는다.

그러한 사고는 결국 위폐 발행과 마약 거래라는 '작품'으로 꽃을 피웠다.

어떻게 자칭 국가라는 집단이 그러한 행동이 국제 사회에 먹히리라고 믿고 있다는 말인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그런 사람들과 머리를 맞대고 의논도 하고 협상도 한다니 무얼 어떻게 하는지 나는 궁금해서 죽을 지경이다.

금강산 관광의 문이 열렸다고 했을 때 나는 그들의 아량에 감복했던 적이 있다. 그러나 딱하게도 금강산에 들어갈 때 마다 한 사람당 얼마씩 입장료를 내야 된다는 조건은 몰랐었다.

개성 선죽교도 개방한다고 해서 과연 역사를 공유하는 것은 행운이고 그 것을 서로 나누는 것은 한 민족으로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금강산보다 비싸다고 하는 것 같았다. 하긴 이 쪽에서도 명승지에서 입장료를 받기는 받는다.

이산 가족 상봉에 합의해서 생이별을 하고 있던 가족들과 인도적인 입장에서 서로 만나게 해준다고 했을 때 그 들도 핏줄 앞에서는 어쩔 수 없구나 했다. 그런데 미사일 발사를 계기로 분위기가 냉냉해지니까 그 행사를 당분간 중지하겠다고 한다.

먹을 것도 더 달라고 하고 비료도 더 줘야한다는 것이다.

옛날에는 꿈도 꾸지 못했던 북 쪽의 텔레비젼 방송을 보는 것은 신기한 체험 중의 하나다. 한복을 곱게 차려 입은 아나운서의 입에서 흘러 나오는 엄숙한 어조는 코메디의 한토막같다.

만약 내가 이북에 살았더라면 나도 저런 말투를 구사하고 있을 것이 아닌가.

요즈음 세상에도 아직 그런 말투에 감동을 받는 사람이 있다고 믿는 모양인데 어쩌다 저렇게 까지 일그러질 수 있는지 풀 수 없는 문제 중의 하나다.

그러나 뭐니 뭐니해도 정말 재미있는 얘기는 김 정일의 골프 실력이다.

보도에 의하면 김 정일은 첫 번째 라운딩에 나가서 홀-인-원을 11개나 했다고 그 쪽 정보 최고 책임자가 공식 발표한 적이 있다.

지난 번 클럽 토너먼트에 나갔더니 내가 한국인이라는 것을 알고 獵?미국인 친구가 웃으면서 말했다. '킴 종일(Kim Jong Il)'의 골프 실력이 정말 대단 하더라는 것이었다.

내 고향이 북쪽의 푸르른 연백 평야라는 사실이 갑자기 슬퍼졌다. 거기다 대고 무슨 말을 하랴. 아무리 나는 남 쪽에서 왔다고 해도 그들이 보기에는 비슷한 코리언일 뿐이다.

세상에 이런 미개한 민족도 있는가. 미개한 것은 그래도 참을 수 있다. 가르치면 되니까. 그러나 정직하지 않은 것은 어떻게 바로 잡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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