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기부 'X파일' 사건과 '삼성공화국론(論)'에서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 헐값배정을 통한 변칙상속 의혹에 이르기까지 온갖 악재에 시달리던 삼성이 '국민여론 수렴'을 위해 발표했던 '2.7 사회공헌 대책'이 사실상 마무리됐다.
삼성은 숨진 이건희 회장의 막내딸 이윤형씨의 유산인 삼성계열사 지분과 이 회장 및 장남 재용씨의 삼성전자 지분 등을 삼성이건희장학재단과 교육부에 기부함으로써 8천억원 사회헌납 절차를 마무리지은 데 이어 삼성에 쓴소리를 해줄 옴부즈맨 성격의 '삼성을 지켜보는 모임(삼지모)' 인선도 완료했다고 23일 밝혔다.
이에 따라 온갖 구설수와 의혹 속에 5개월간 해외에 체류했던 이 회장이 귀국한 직후 발표됐던 '2.7 대책'은 사실상 모든 항목에 걸쳐 이행이 마무리됐으며 이와는 별도로 발표하겠다고 삼성이 밝혔던 중소기업 지원대책도 24일 청와대에서 열리는 '대중소기업 상생회의' 직후 구체적인 내용이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8천억원 사회헌납 = 삼성은 2월7일 발표한'국민 여러분께 드리는 말씀'을 통해 ▲삼성이건희장학재단 출연금 4천500억원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CB) 배정 등을 통해 이 회장 자녀들이 부당하게 취득했다고 시민단체가 주장하는 이득금 1천300억원 ▲윤형씨의 유산 2천200억원 등 8천억원을 조건없이 사회에 헌납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삼성의 이 같은 약속은 최근 윤형씨가 보유했던 삼성에버랜드 등 계열사 지분을 삼성이건희장학재단과 교육부에 기부하고 이 회장 부자가 1천300억원 상당의 삼성전자 지분을 이 재단에 현물 기부함으로써 이행이 완료됐다.
민간이 설립한 공익재단은 특정업체의 지분을 5% 이상 보유할 수 없다는 규정에 따라 윤형씨가 보유했던 삼성에버랜드 지분 가운데 기존에 이 재단이 이미 보유하고 있는 0.88%를 제외할 경우 넘길 수 있는 최대치인 4.12%가 삼성이건희장학재단에 이전됐고 나머지 4.25%는 교육부에 기증된 것이라고 삼성측은 설명했다.
삼성 관계자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밝힌대로 헌납되는 8천억원의 용처와 운영주체는 정부와 사회의 논의결과에 따를 것"이라면서 "따라서 자산이 크게 늘어난 삼성이건희장학재단이 본래의 명칭과 사업목적을 유지할 지, 아니면 완전히 별개의 새로운 재단으로 거듭날지에 관해서도 삼성은 일체 관여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마찬가지 맥락에서 삼성이건희장학재단에 기부된 삼성전자 등 삼성 계열사 주식을 어떻게 처리할지도 앞으로 구성될 새 재단이 결정할 문제"라고 밝혔다.
그러나 삼성의 헌납액을 토대로 출범할 공익재단의 운영주체와 활동방향을 두고 진보와 보수 등 각 세력이 저마다 다른 요구사항을 내놓고 있어 앞으로 논의과정에서 격론이 예상된다.
◆삼지모 구성= 김형기 좋은정책포럼 공동재표, 방용석 전(前) 노동부 장관, 신인령 이화여대 총장, 안병영 전 교육부총리, 이정자 녹색미래 대표, 최열 환경재단 대표, 최학래 전 한겨레신문 사장, 황지우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 등 8명이 참여한다.
삼지모 멤버들은 삼성전략기획위원회(위원장 이학수 부회장)와 매분기 한차례씩 정례 모임을 갖고 사회가 삼성에 바라는 바에 대해 별도의 주제없이 자유롭게 토의하게 된다고 삼성은 설명했다.
삼지모 구성원들은 시민단체, 노동계, 언론계, 문화예술계 및 학계 등으로 출신분야가 다양하며 우리사회의 민주화와 시민.환경.예술운동에 나름대로 기여한 존경받는 인사라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다.
그러나 삼성이 애초에 공헌한대로 삼지모 멤버들이 '삼성에 비판적인 입장을 취해왔고 삼성에 쓴소리를 해줄 수 있는' 사람들인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도 없지 않다.
이런 점에서 그동안 삼성을 줄기차게 비판해왔던 시민단체 출신 인사들 가운데 일부가 삼지모에 참여할 것이라는 일각의 예상이 빗나간 점은 삼지모 활동의 '진정성'에 의문을 갖게하는 요인이 될 수도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기타 조치들 = 지난 4월13일 전국 103개소의 자원봉사센터를 개소하는 등 사회복지 확대 및 자원봉사 강화 방침은 착실히 이행되고 있다.
삼성은 자원봉사센터에 앞서 소속 변호사들로 '삼성법률봉사단'을 구성해 서민, 소외계층을 위한 무료 법률상담과 변론활동에 나섰고 올해중 '의료봉사단'도 구성할 예정이다.
구조조정본부 축소개편도 이미 완료됐고 이에 따라 게열사별 독립경영 체제가 뿌리를 내려가고 있다고 삼성측은 자평하고 있다.
삼성SDS 신주인수권부사채(BW) 관련 증여세 부과소송과 공정거래법 헌법소원 등 정부를 상대로 한 소송 취하는 '2.7 대책' 직후 실천에 옮겨졌다.
◆중소기업 지원 = '2.7 대책'과는 별도로 발표하겠다고 삼성이 밝힌 중소기업 지원대책은 24일 열리는 청와대 상생회의 직후 구체적인 방안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
삼성 관계자는 "납품대금 현금결제나 기술이전, 금융지원 등 '전통적인' 방안 이외에 경영기법의 전수, 정보 공유, 임직원 파견 등 중소기업들에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는 다양한 조치들이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은 '2.7 대책' 발표 후 각 계열사별로 협력업체들과의 논의를 통해 구체적인 아이디어를 취합해 왔다.
삼성은 그러나 정몽구 현대.기아차 회장의 구속을 계기로 재벌그룹들의 편법 경영권 승계 등이 함께 비판의 표적이 되고 있는 상황 때문에 중소기업 지원대책 발표 시기와 형식, 내용 등을 결정하는 데 고심하고 있다.
삼성 관계자는 "삼성이 중소기업 지원책을 내놓을 것이라고 이미 공표한 마당이고 청와대 회의 직후 대책을 발표하는 것이 시기적으로는 적당하다고 보지만 현재의 재계 상황도 고려하지는 않을 수 없어 고민"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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