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 되세요

서울 이야기(1) 부자 되세요

이 번 서울 방문 중에 한가지 확실하게 실감한 것은 노무현 대통령의 인기가 정말로 형편 없다는 것이었다. 만나는 사람들 마다 그를 성토하며 머리를 흔들었다. 그러니까 뭔가가 잘못되기는 잘못 되었는가 보았다.

그가 틀린 것은 무엇일까.

사람들은 우선 부동산(아파트)을 포함한 그의 경제정책을 꼽았다. 현정부의 부동산 경제 정책은 어디에 근거를 두고 있는 것일까.

사람들은 '분배'에서 그 뿌리를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나도 들은 것이 있다. 한 나라의 경제를 말할 때 역사적으로 분배를 우선한 경제 정책은 기울었고 성장을 중시한 경제 정책은 성공했다는 것이다.

부의 재분배를 주장하는 사람들에게는 부자에 대한 박탈감이나 막연한 반감이 있는 것을 보게 된다.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것을 나눠쓰자는 것이리라. 그러나 성장을 말하는 사람들의 의견은 조금 다르다. 부자들의 것을 나눠쓰자고(박탈) 한다면 누가 애써서 부자가 되려고 하겠느냐는 것이다. 부자들로 하여금 돈을 쓰게(투자) 해야 고용이 창출되고 그러면 부의 재분배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부자가 되고 싶을 것이다. 그래서 언젠가는 새해 인사가 '올해는 부자 되세요'라는 말이 유행한 적도 있다. 문제는 누구나 정정당당한 방법으로 부자가 돼야한다는 것이리라. 그러나 현실은 어떤가. 정정당당한 플레이라기 보다는 특혜나 부당한 방법으로 부자가 된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부자에 대한 거부감이 결국은 재분배라는 탈을 쓰고 잡음을 내고 있는 것이다.

또한 부자들이 돈을 쓰는 방법이 부자 아닌 사람들에게 거부감을 주었기 때문에 재분배의 이론이 힘을 받는 것도 사실이다. 성장이 우선인가 분배가 먼저인가. 여기서 깊은 경제이론을 말할 생각은 없다. 그럴만한 능력도 없다.

다만 나는 성장과 분배의 현장을 보고 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짧은 시간의 빠듯한 일정 중에 만나보고 싶은 사람도 있고 가 보고 싶은 곳도 많았지만 나는 '리움(Leeum)'을 리스트의 제일 꼭대기에 넣었다. 인터넷 신문을 통하여 익히 들었던 바라 조카들에게 부탁하여 예약도 했다.

도로 표지판이 어지러운 한남동 어딘가로 꼬불꼬불 다가가니 사진으로만 보아왔던 건물이 나타났다. 직선과 곡선의 조화다.

가운데 원통과 같은 구조물을 중심으로, 오른 쪽으로는 무광택의 직사각형 검은 상자가 배치됐고 왼쪽으로는 예리한 느낌이 드는 광택의 유리창이 감싸고 있는데 그 날카로움이 온통 햇빛을 튕겨내고 있었다.

세계적인 건축가, 스위스의 마리오 보타는 원통형과 성곽을, 프랑스의 쟝 누벨은 검은색 상자의 조합을, 왼 쪽의 유리 건물은 네델란드의 렘 쿨하스가 설계 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디자인 과정에서 개성이 강한 예술가들 간에 의견 대립은 없었을까.

그러나 어느 한 분야에서 정상을 다투는 사람들의 안목은 서로 통하는 바가있었는지 각자의 개성을 살리면서 이루어낸 전체적인 조화는 거의 완벽했다.

'작품'을 멀찌감치서 바라보면 이 것은 건물이라기 보다는 직선과 곡선이 적당히 배치된 한 폭의 추상화를 보는 것 같다.

저 것이 건물이란 말인가. 그렇다면 그 안에는 무엇이 있을까.

지하 주차장에 차를 대고 완만하게 경사진 언덕을 오르면 수수하지만 거역할 수 없는 중량감을 주는 정문이 나타난다.

로비에 들어서니 따뜻한 '조명'이 아늑한 실내를 연출하고 있다.

나는 그 빛이 조명인줄 알았다. 그러나 그 것은 자연 채광이었다. 햇빛은 설계에 의해서 강한 부분은 걸러지고 따뜻함만으로 앙금처럼 가라 앉아 있었다. 렘 쿨하스가 유리창을 건물 전체에 둘러 빛을 반사시켰다면 마리오 보타는 정선된 빛을 안으로 끌어들여 잔잔한 실내악으로 풀어내었던 것이다.

나는 건축을 잘 모른다. 그러나 건물 안으로 들어 섰을 때 느끼는 편안함은 안다. 그 것은 단지 정갈하게 닦여진 바닥의 광택 때문만은 아니었다.

나는 이 미술관을 관람하는 시간을 두시간 반 정도로 잡았다. 10시 반에 문을 여니까 관람을 끝낸 다음 오후 1시에 점심 약속을 하면 무리가 없을 줄로 알았다. 그러나 나는 무례하게도 점심 약속한 분을 오래 기다리게 하는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나는 이 번 기회에 보물이라고 하는 이조 백자도, 고려 청자도 진품들을 봤다. 때맞춰 열린 기획전, '조선 말기 회화전'에서는 영화 취화선에 나온 장승업의 '영모도 대련' 유숙의 '홍백매도 8곡병' 추사 김정희의 '죽로지실'도 직접 볼 수 있었다.

내가 그림에 대해서 뭘 아는가. 짧은 시간에 그냥 한 번 쓰윽-보고나면 끝나 버릴뻔한 감상을 예쁜 안내원이(사실은 전문가였다) 체계적으로 설명해 준 것도 고마웠다. 미모와 지성을 겸비한 여자는 만나는 사람을 즐겁게 한다.

저녁 모임에서 만난 여류 양화백에게 아까 낮에는 리움에 갔었다고 했더니 “그 분 좋은 일 많이 한 분이죠? 분배를 한 셈이잖아요.” 라고 했다.

그러니까 옆에 있던 누군가가 그 분은 사명감을 가지고 미술품들을 수집한 분이라고 거들었다.

그런 수집은 안목과 전문적인 지식, 그리고 끝없는 애정이 전제돼야 하겠지만 무엇보다도 돈이 없다면 할 수 없는 일이다. 더구나 그 보물들을 좋은 시설을 마련하여 여러 사람들이 보고 공부할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은 칭찬받아 마땅하다. 이 병철씨를 돈만 많이 가지고 있던 사람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도 없지 않다. 그 것은 내가 리움을 두시간 반 정도로 관람을 끝낼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만큼이나 틀린 생각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그에게 그만한 재력이 허락되었던 것은 다행한 일인지도 모른다. 돈을 쓸 줄 모르는 사람에게 돈이 들어간다면 그 것은 재앙이지만 뭔가 생각이 있는 사람들에게 재력이 허락된다면 여러 사람들에게 '분배'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경제에서 분배를 우선시 하면 정치는 실패한다고 역사는 말하고 있다.

경제든 정치든 문화든 우선 성장이 있어야 분배가 가능한 것이다. 자연스러운 분배는 성장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부자 되세요. 그리고 나누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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