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인센티브 조건 제시.. 노조 '정부가 자율성 저해' 비난

공기업 노동조합들이 정부가 추진 중인 퇴직연금제도에 반발, 집단적 가입거부 의사를 밝혀 파문이 일고 있다.

정부투자기관 노동조합 협의회 소속 13개 공기업 노조가 지난달 26일 퇴직연금제를 도입한 공기업에 대해서만 경영평가 가점을 부여하겠다는 정부방침에 반기를 들고 퇴직연금 가입에 거부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공동합의서에 서명한 13개 공기업 노조는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 대한광업진흥공사, 한국관광공사, 한국토지공사, 한국수자원공사, 한국조폐공사, 한국도로공사, 농수산물유통공사, 대한주택공사, 한국농촌공사, 한국석유공사, 한국전력공사, 한국철도공사이다.

퇴직연금제는 지난해 10월말 시행, 1년이 지난 올 10월 말까지 전국 130만 개 사업장 중 약 10% 정도만 가입한 상태다. 그나마 퇴직연금제에 가입한 1만3400여 사업장 중에서도 100인 미만의 소규모 사업장이 98.4%로 대부분을 차지했고, 500인 이상의 대뮤모 사업장은 36군데뿐이다.

▲ 자료출처: 증권연구원

퇴직연금제도란, 회사가 근로자의 퇴직급여를 금융기관에 맡겨 운용한 뒤 근로자가 퇴직할 때 연금이나 일시금으로 주는 제도이다.

기존의 퇴직금제는 일시금 형태로 지급되지만, 퇴직연금은 10년 이상 가입하고 55세가 넘으면 연금으로 지급된다는 점에서 다르다.

연금수급 요건을 갖추지 못하거나 가입자가 원할 경우 일시금으로 받을 수도 있다. 퇴직연급에는 '확정급여형'(DB)과 '확정기여형'(DC)의 두 종류가 있다.

DB형은 가입자가 받을 퇴직급여가 미리 확정되고, 회사가 부담할 금액이 운용실적에 따라 달라진다. 운용에 따른 리스크나 가입자에 대한 최종 지급 책임이 모두 회사의 몫이다.

DB형의 경우 회사는 퇴직금의 60%를 외부 금융기관에 5년에 걸쳐 적립한다. 그리고 운용결과가 약정수익율에 미달하면 그 차액을 회사가 부담한다. 결국 가입자는 신경 쓸 일 없이 퇴직시에 퇴직금을 수령하면 된다.

이에 반해 DC형은 회사가 부담할 금액이 미리 확정되고, 가입자가 받을 퇴직급여는 운용 실적에 따라 달라진다. 회사는 금융기관에 정해진 부담금을 입금하는 것으로 의무가 끝나며, 그 이후 운용에 관한 내용은 모두 가입자가 책임진다.

DC형의 경우 회사는 퇴직금 전액을 매년 외부 금융기관에 적립하고, 가입자 개인이 외부 금융기관과 약정을 맺게 된다. 당연히 운용수익의 결과를 가입자가 모두 책임지게 된다.

작년 말 정부는 “퇴직연금제를 도입해 기업이 잘 못됐을 경우 퇴직금을 한 푼도 받지 못할 가능성이 큰 중소기업 노동자들의 퇴직급여를 안정적으로 보장함으로써 노후생활을 영위하는데 도움을 주려한다”고 퇴직연금제의 도입목적을 밝혔다.

그러나 일부 관련 전문가들은 “내놓고 말은 못하지만 수십조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는 퇴직연금이 금융시장 활성화에도 기여하기를 내심 바랐을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그런데 기획예산처는 공기업의 경영평가시 올해 퇴직연금제에 가입한 공기업에게만 10점의 가산점을 주기로 하고 공기업 경영평가 항목에 '퇴직연금 가입여부'를 신설했다. 공기업을 먼저 가입시켜 민간기업의 활발한 가입을 유도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공기업 노조는 “퇴직연금제의 가입은 노사합의가 전제돼야 하는 자율항목임에도 불구하고 경영평가 점수가 직원들의 상여금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기 때문에 10%의 인센티브로 반강제성을 띄게 됐다”며 반발했다.

김주영 한전 노조위원장은 “퇴직연금제도가 여러 불완전한 요소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공기업들에게 가입을 강요하고 있다”며 “올해 말까지 퇴직연금제를 도입하면 10%의 인센티브를 준다고 하는데 자율적인 결정이 가능하겠는가?”라며 반문했다.

또 김 위원장은 “10점이라면 굉장히 큰 비중”이라며 “정부가 경영평가를 무기로 공기업들을 주무르겠다는 발상”이라고 비판했다.

기획예산처 관계자는 “노조의 의견을 수렴해 관계부처 회의를 거쳐 확정된 사안을 노조가 뒤늦게 반발하고 있다”며 정부는 물러설 뜻이 없음을 내비쳤다.

공무원 노조 측은 “퇴직연금제를 시행하면 현 퇴직금제보다 다 많은 세금을 내야한다는 연구결과도 있고, 또 퇴직연금이 예금자보호법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만약 퇴직금을 운용하는 금융회사가 도산할 경우 근로자들이 보상을 받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며 정부의 제도적 개선을 요구했다.

그러나 퇴직연금 사업자들은 이러한 노조의 주장에 “사실을 잘못 알고있다”며 “근속연수와 연봉에 따라 세율 문제가 다르기 때문에 반드시 세금 차원에서 불리하지도 않을뿐더러 자기자본비율 등 재무건전성 요건을 철저히 갖춘 금융회사들만 사업자로 등록시키기 때문에 퇴직금을 운용하는 회사들이 망할 염려는 없다”고 밝혔다.

한 공기업의 퇴직연금 담당장는 “노조의 반대로 직원들을 대상으로 한 제도와 상품 설명이 충분히 이뤄지지 못해 퇴직연금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공기업 퇴직연금 사업자들은 현행 퇴직보험제가 2010년 까지 한시적으로 유지되기 때문에 2011년부터는 대부분의 기업이 퇴직 연금제로 전환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따라서 노조합의가 이루어질 경우 빠른 시일 안에 제도도입을 추진하기 위해 공기업과 사업자들은 별도로 퇴직연금 도입을 위한 사전 준비 작업을 조심스레 진행해 나가고 있다.

지난 8월 퇴직연금제를 가장 먼저 도입한 조폐공사 이후 다른 공기업이 또 퇴직 연금제를 도입한다면 제도도입이 속행 될 것이라는 것이다.

공기업 노조와 정부간의 합의가 원만하게 이뤄질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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