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당 '정치 실험' 실패 아니다"..전문가, 정당 일체감 높여야

열린우리당의 지지율이 최근 여론조사에서는 8.8%를 기록하며 창당 이후 처음으로 한자릿수로 떨어졌다.

우리당은 그야말로 초상집 분위기다. 당내 갈등과 각종 현안들로 머리가 아플 지경이다.

올 하반기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한 정계개편 문제는 여당 내부 분열의 핵심이다. 당을 깨고 새판을 짜자는 쪽과 당의 간판만 바꾸고 내부 개혁에 주력하는 '리모델링' 수준의 창당을 하자는 쪽이 서로 절충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이 가운데 완전국민경선제(오픈프라이머리)를 도입해 고건 등 범 여권인사를 영입해 대선후보로 내세우려는 여당의 고육지책도 있다.

이 외에도 열린우리당의 지지율을 갉아먹는 요인은 또 있다. 우리당은 얼마 전 당의 정체성과 같은 '기간당원제'를 사실상 폐지했다. 이로 인해 당내 개혁 성향의 의원들과 보수 성향의 지도부가 때 아닌 '개혁 대 실용' 논쟁에 휘말리기도 했다. '개혁 정당'으로서의 정체성마저 상실한 당에 국민들이 지지를 보낼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당은 창당 당시 '100년 가는 정당을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그 약속은 고작 3년 만에 무너졌다. 이제 스스로 "열린우리당의 정치실험을 끝났다"고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당원에 의해 당이 운영되고 상향식 공천제를 통해 당내 민주화를 이루겠다는 열린우리당의 야심찬 정치실험은 끝났을지 모른다.

그러나 앞으로 우리나라에 100년 가는 정당이 나올 가능성마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이제 우리나라 정당정치의 한계와 가능성에 대해 논의할 때다.

◇ 정략적 이합집산 거듭

전문가들은 우리나라 정당의 가장 큰 문제로 '정책과 이념의 부재'를 꼽는다. 장훈 중앙대 교수(정치외교학과)는 "우리나라 정당은 정책이나 이념이 아닌 정략적 이해득실에 따라 이합집산을 하는 형태"라고 지적했다. 지난 10여 년간 우리는 수많은 정당이 합당, 분당, 소멸해가는 과정을 지켜보았다.

1987년 민주화 직후 노태우 후보를 대통령에 당선시킨 민주정의당은 1990년에 통일민주당, 신민주공화당과 합당하면서 소멸했다. 3당 합당의 결과로 만들어진 민주자유당도 예외는 아니다.

1995년 민주자유당과 자유민주연합으로 분열되었으며 이 역시 오래지 않아 신한국당으로 당명을 바꾸었다. 신한국당은 또 불과 1년여 만에 한나라당으로 바뀌었다.

전문가들은 최근 열린우리당의 '분당' 논의도 기존 정당의 이합집산과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강 연구원은 "우리당의 오픈프라이머리의 도입은 외부인사인 고건 전 총리를 영입해 통합신당을 만들기 위한 사전 준비작업"이라며 "당헌 개정의 필요성이나 개혁적 목적에서 도입하는 것이라고 볼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강 연구원은 또 여당이 최근 분열을 겪는 이유에 대해 "열린우리당의 이념 스펙트럼은 좌에서 우로 실로 다양하다. 하나가 되기 힘든 이들이 한 곳에 모이는 이유는 하나다. '한나라당의 집권만은 막아보자'는 정치적 이해가 같기 때문이다. 이들이 분열을 겪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고 말했다.

◇ 지도자 중심의 당 운영과 지역주의

정당의 잦은 이합집산에 대해 전문가들은 정치지도자 중심의 당 운영과 지역주의에 기반을 둔 정치활동을 이유로 들었다. 장 교수는 "정치 지도자가 정당의 주요한 활동의 대부분을 사적으로 지배하는 개인화된 정당의 전통이 여전히 한국의 정당들을 지배하고 있다"고 말한다.

지난 5.31 지방선거는 여당의 '정책실패'에 대한 '심판'의 의미가 커 지역주의에 따른 투표행위가 절대적인 기준이 되지는 못했지만 여전히 지역주의 벽을 넘지 못했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특히 영남권의 지역주의는 한층 견고해 진 모습을 보여줬다.

대구시장에 출마한 이재용 후보(우리당)는 무소속으로 출마한 2002년(38.8% 득표)에 비해 오히려 18%포인트 가량 후퇴했기 때문이다. 문재인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부산정권" 발언 등 지난 3년 반 동안 여권의 갖은 구애에도 불구하고 영남 표심을 움직이지 못한 것이다.

정치 지도자 역시 당에 위기가 닥치면 어김없이 전략 지역으로 찾아가서 유세를 벌인다. 최근 노무현 대통령이 광주를 방문한 것이나 대선주자들이 차례로 자신의 텃밭을 찾아가 유세를 벌이는 것도 지역주의 정치의 구태를 벗어나지 못한 증거다.

◇ '정당 일체감'의 결여

장 교수는 유권자들이 지역주의에 따라 투표하는 행위가 '정당 일체감의 결여' 때문이라고 말한다. 양당제가 발달한 미국의 경우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과의 정서적 일체감이 강하다고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낙태와 동성애, 줄기세포 실험 등에 찬성하는 사람은 민주당을 지지할 가능성이 크다. 정책과 이슈에 따른 정당 지지가 뚜렷하게 구분된다는 말이다.

그러나 강 연구원은 "반드시 정당 일체감이 필요한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그는 "영국과 같은 기간당원제가 정착된 나라의 경우 '정당 선호도 조사' 따위는 하지 않는다"며 "우리나라도 지금과 같은 '유령당원' '종이당원'이 아닌 진정한 진성당원이 당에서 제 역할을 해준다면 정책정당을 구현할 수 있다"고 말한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정당개혁을 흔들림 없이 지속해야 한다는 말이다.

현재 우리당은 스스로 '정치 실험에 실패했다'고 규정하지만 외부적으로 여당의 정당 민주화 노력에 대해선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시각이 많다. 강원택 숭실대 교수(정치외교학과)는 "2002년 이후 제왕적 당 총재에 의해 주도되는 정당의 모습이 많이 변했다"면서 "최근 민생과 관련한 실용적인 정책에 국민들의 관심이 쏠리는 것도 정당 민주화가 어느 정도 이루어졌다는 자신감 때문"이라고 말했다.

강 연구원은 "새로운 실험에는 언제나 시행착오가 있기 마련"이라며 "열린우리당의 '정치 실험'을 실패로 규정해선 안된다"고 말했다. 장 교수도 "국민들이 여당을 외면한 것은 결코 정당개혁 때문은 아니"라면서 '기간당원제'를 폐지는 국민들의 요구를 제대로 읽지 못한 결과라고 지적했다.

◇ 정책연구소의 역할 변화 필요

우리나라는 개정 정당법에 따라 각 정당 부설로 정책연구소를 설치하도록 하고 있다. 현재 열린정책연구원(열린우리당), 여의도연구소(한나라당), 진보정치연구소(민노당) 등이 활동하고 있다.

강 연구원은 "현재 정책연구소는 거의 당의 '정책위원회' 역할을 하고 있다"며 "정책연구소가 정책보다 앞서가는 미래의 비전을 제시하기 위해서는 독립적으로 운영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최근 영등포 당사로 자리를 옮기는 열린정책연구원측의 생각은 다르다.

열린정책연구원의 한 관계자는 "(당사로 자리를 옮긴 뒤)당과 더 긴밀하게 정책을 운용해 나갈 것"이라며 "정책 연구의 독립성에는 전혀 문제 될 게 없다"고 말한다.

'100년 정당'의 가능성에 대해 전문가들 대부분은 "지금과 같은 상황에선 절대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공통적으로 지역주의에 물들지 않은 젊은 세대들에게 희망을 걸고 있다.

흔히 '정치는 생물'이라고 한다. 그만큼 변화무쌍하다는 말이다. 국민들이 정치 개혁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면 언젠가 우리도 정치에서 '희망'을 얘기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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