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 "외환위기 이전에나 가능했던 관치"

(서울=연합뉴스) 박용주 기자 = 금융감독원이 시중은행의 주택담보대출 신규 취급 한도를 제한하는 구두 창구지도에 나선 것과 관련, 각계의 비난이 빗발치고 있다.
특히 학계의 일부 전문가들은 금융감독 당국의 이번 조치가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 직전인 1990년대에나 가능했던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라고 비판했다.
또 대출을 받으러 갔다가 '무조건 안된다'는 말을 듣고 뒤돌아선 소비자들도 금감원의 관치로 자금조달 계획에 차질이 빚어졌다며 불만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22일 은행업계에 따르면 금감원의 대출한도 제한조치로 일부 시중은행들이 주택담보대출 신규 취급을 중단하자 학계.업계.소비자들이 일제히 반발하고 나섰다.
이병윤 금융연구원 박사는 "금감원이 이같은 대출총량제한에 나섰다는 점을 믿을 수가 없다"면서 "만약 사실이라면 굉장히 무리한 정책"이라고 말했다.
이 박사는 "정부가 금융시스템 전체의 리스크 관리를 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은행의 대출 포트폴리오에 대해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은 말이 안된다"고 설명했다.
익명을 요구한 민간연구소 관계자는 "감독당국이 월별 대출증가 한도를 내부적으로 정하고 창구지도를 하는 것은 IMF 외환위기 이전에나 가능했던 얘기"라고 말했다.
그는 "담보인정비율(LTV)이나 부채상환비율(DTI) 등은 원리금 상환능력에 근거한 것이지만 이번 창구지도는 불특정 다수에 대한 규제로 합리적인 근거가 없다"고 말했다.
시중은행 여신부서 관계자는 "이같은 규제는 과거 재무부와 한국은행이 은행 대출의 총량을 관리하던 시절에 나왔던 것과 비슷하다"며 "금리자유화 이전 시기로 회귀한 느낌을 받는다"고 말했다.
금감원의 창구지도에 따라 주요 시중은행들이 주택담보대출 신규 취급을 사실상 중단함에 따라 일선 창구에서도 소비자들의 불만이 터져나오고 있다.
시중은행에 21일 대출 상담을 하러 갔다가 '7월에 오라'는 말을 듣고 돌아온 고객 A씨는 "은행이 무슨 고깃집도 아닌데 월초에 간 사람들은 대출이 되고 월말에 가면 대출이 안된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역시 대출을 거부당한 B씨도 "아파트를 구입하기로 하고 잔금 일정을 다 잡아놨는데 갑자기 돈을 빌릴 곳이 없어져다"며 "관치가 도를 넘어섰다"고 말했다.
시중은행의 실무 담당자들도 공공연하게 이번 대책을 비난하는 분위기다.
시중은행 고위 관계자는 "은행도 서비스 회사로 고객과 약속이 있는데 똑같은 고객에게 월초에는 대출을 해주고 월말에는 안된다고 하니 민망해 죽을 지경"이라고 털어놨다.
다른 은행 관계자는 "일부 대형 시중은행에만 이번 조치가 해당돼 단골고객들이 여타 금융회사로 이동하고 있다"며 "형평성에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은행 관계자는 "금감원의 LTV, DTI 조치 등이 시장에서 별 영향을 미치지 못하자 무리한 정책을 취하는 것 같다"며 "도를 넘어선 정책"이라고 말했다.
금감원은 기존에 제시한 LTV, DTI 제한을 제대로 준수하라는 공문을 보낸 적은 있지만 신규대출 한도를 제한하는 구두 조치를 취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선 부인하고 있다.
이에 대해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 "피해자가 여러명 있는데 가해자가 없다면 피해자가 모두 자해를 한 셈이 되는 것"이라고 비꼬았다.
금감원은 최근 일부 시중은행에 구두로 6월 주택담보대출 잔고를 더 이상 늘리지 못하도록 창구지도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은행업계는 시중은행들의 6월 주택담보대출 순증액이 5월 순증액의 50%를 넘어서면 금감원이 구두경고에 나서고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신한.우리.하나은행과 농협은 주택담보대출 신규 취급을 중단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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