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점심은

오늘 점심

서울 이야기(3) 오늘 점심은- - - -

서울에 다녀온 사람들이 하는 얘기 중에 한가지 공통점은 서울에서는 맛있는 음식을 골라 먹을 기회가 많다는 것이다. 골목 구석 구석에서 제각기 특징을 내세우며 손님을 유혹하는데 사람들은 저 집은 무엇을 잘하고 이 집은 무엇이 끝내준다는 '족보'를 꿰고 있다는 것이다.
계절에 따라서, 혹은 일행에 따라서 찾아가는 '그 집'은 다르기 마련이다. 이 번 서울 방문 중에 나도 몇군데 뭘 잘한다는 집을 안내 받아 따라간 적이 있다. 나는 원래 미식가는 아니다. 그저 토하지 않을 정도면 다 잘 먹는 편이라서 미식가들의 취미를 내려보곤 했는데 이 번 기회를 통하여 왜 그들이 맛집을 찾아가는지 조금은 이해를 하게 됐다.
맛과 더불어 중요한 요소는 신선미다. 주문진의 횟집도 그런 취향에 맞춰 개발된 '신선한' 식당이었다.
어항에서 유영하는 여러 마리 중에서 우리는 가장 실해 보이는 놈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주인은 뜰채로 그 놈을 들어 올렸다. 저울에 올려 놓고 무게를 잰 다음 묵직한 칼의 뒷등으로 대가리를 탁- 쳐서 기절을 시킨다.
미끈거리는 점액질 비늘을 역방향으로 긁어내고 흐르는 바닷물로 씻어낸 후 날카로운 회칼로 살을 저미기 시작한다. 손님은 바로 곁에 있는 식탁에 앉아서 젓가락을 들고 입맛을 다시며 그 과정을 재미 있다는듯이 들여다 본다.
드디어 한 접시의 회가 상에 오르면 우리는 조금 전까지 어항에서 유영하던 물고기의 '살아있는' 신선한 살을 씹게 되는 것이다.
어항 안에는 다음 순서를 기다리는 또 다른 그의 친구들이 아무 일도 없었다는듯이 천천이 움직이고 있다. 저 물고기들의 운명을 걱정하는 것은 쓸데 없는 연민일까.
일행들은 싱싱함이 증명된 '사시미'를 정말 맛있다고 떠들썩하며 부지런히 젓가락을 움직인다.
서울 강남의 한 복판, 수수한 외모의 한식당에 들어섰다.
“이 집은 그 거 잘해요. 한 번 맛 보세요.”
점심을 사겠다고 안내한 여인은 문간에서 신발을 벗고 두 계단 올라서서는 책상다리로 앉아 식사하는 사람들 사이를 날렵하게 피해가며 구석 자리로 나를 데리고 갔다. 뭘 잘한다는 말인가. 궁금해하는 나를 재미있다는듯이 쳐다 보더니 내 의견은 묻지도 않고 주문을 했다.
“그 거요.” 종업원은 알았다고 대답을 하고는 주방을 향해 뭐라고 소리쳤다. 그 순간 주문한 여인은 다시 종업원을 부르더니 “산 걸루요.”하고 수정했다. 종업원은 알았다고 또다시 길게 대답을 하고는 주방을 향해 수정주문을 보냈다.
식당 문을 들어설 때 얼핏 벽에 붙어있는 특별 메뉴 중에 '산낙지 전골' 이라는 차림표를 보기는 했다. 버섯을 보고 산에서 나는 쇠고기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 나는 순간적으로 산에서 나는 낙지도 있나? 하는 의심이 들었지만 깊히 생각하지 않았다. 점심 시간이 지난 식당은 한가했다. 주문한 음식은 생각보다 빨리 나왔다.
종업원은 식탁 한가운데 있는 불판 뚜껑을 열고 불을 지핀 다음 전골판을 얹었다. 익기를 기다리며 밑반찬을 끄적이다가 무심코 방금 가져온 전골판 쪽으로 눈길을 돌리니까 유리뚜껑 아래서 뭔가가 꿈틀 거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산)낙지였다.
그제서야 나는 산낙지란 산에서 나는 낙지가 아니라 살아있는 낙지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내가 흠칫 놀라는 표정을 하니까 종업원은 민망했던지 가지고 있던 수건으로 대충 뚜껑을 덮어 가렸다.
그래도 틈새로 꿈틀거리는 낙지의 발은 보였다.
밑에서는 가지런한 가스 불꽃이 새파랗게 타 오르고 있었다. 전골판이 차츰 뜨거워지며 김이 오르기 시작하니까 낙지의 요동은 점점 더 격렬해 지더니 결국 잠잠해 졌다. 얼마나 뜨거웠을까. 밀폐된 공간에서 몸부림치던 낙지의 최후는 싱싱함을 요구하는 인간의 이기심과 맞바꾸어진 것이다.
잠시 후 가위를 들고 나타난 종업원은 타월과 유리뚜껑을 걷어내고 익혀진 낙지 다리를 한 입에 넣기 좋은 크기로 쌍둥 쌍둥 잘랐다.
마주 앉은 여인은 조심스럽게 이빨로 먼저 뜨거운 낙지의 다리토막을 물어들인 다음 입술을 다물고 오물 오물 씹으며 나를 빤히 쳐다 보았다.
맛이 어떠냐는 물음이리라. 맛있군요. 나는 눈으로 대답하고 두번째 다리 토막을 집어 들었다. 아직 지워지지 않은 그 녀의 입술연지가 유난히 붉어 보였다. 그 때까지도 호두알만한 낙지의 머리는 남아 있었다. 잠시 후 또 다시 나타난 종업원은 낙지 대가리를 따로 걷어가더니 다른 접시에다 먹물이 흥건한 채로 썰어 내왔다. “이게 그렇게 몸에 좋대요. 드셔 보세요.” 그 녀는 자기 몫을 양보해가며 내게 더 많이 먹으라고 권했다. 나는 배가 부르다는 핑게로 두어점을 먹고는 젓가락을 놨다.
작년에 중국에 다녀온 사람으로부터 중국에서는 '원숭이 골'을 먹는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관광코스에 포함돼 있는데 살아있는 원숭이를 어찌 어찌 한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그 이야기를 들으며 야만적인 식습관을 성토했었다. 먹물이 흥건한 접시에서 낙지의 머리 조각을 집어 먹은 나는 과연 원숭이 골을 파먹는 중국사람들을 흉 볼 수 있을까.
의자생활을 하다가 오랫 만에 바닥에 앉아서 식사를 하자니 다리는 저려오고 허리는 끊어질듯이 아팠다. 두 다리를 쭉- 뻗고 어딘가에 기대어 앉고 싶었다. 반주로 마신 두어잔 소주 때문인지 얼굴이 달아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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