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남동 재벌촌, 마포구 쪽방촌 그들의 삶은…

참여정부 이후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특히 최근 이어지고 있는 부동산 폭등과 끝 모르게 추락하는 서민경제는 이 같은 현상을 더욱 부추기고 있는 실정이다.

더욱이 경기침체 속에 이어지는 요즘의 연말 성시는 우리 사회 빈부 격차의 이면을 더욱 도드라지게 한다. 본지가 살펴본 같은 삶, 다른 모습. 그들의 생활을 조명해 봤다.

대한민국 최상위 부유층의 전유물로 여겨지는 '부의 상징' 타워팰리스. 하지만 수십억대의 위세를 자랑하는 타워 팰리스도 혀를 내두르게 만드는 곳이 있다. 일명 '재벌가 집성촌'으로 불리는 한남동 주택가가 그곳이다.

한남동 일대에 살고 있는 소위 재벌 기업 회장들의 일부 사생활이 드러나면서 이곳에 대한 관심은 나날이 증폭되고 있다.

현재 알려진 바에 따르면, 한남동 일대에 살고 있는 재벌그룹 회장은 7~8명 정도인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구본무(LG)회장을 비롯한 그룹총수들이 한남동에 터를 잡고 있다. 여기에 박삼구 금호 아시아나 그룹 회장,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도 한남동 재벌가 패밀리 일원으로 알려져 있다.

◆이웃사촌 상상도 못해

지난 12일 오후 1시경 기자가 찾아간 한 재벌가는 아직 마무리가 덜된 듯 마무리 공사가 진행 중이었다. 이미 언론을 통해 수차례 된서리와 소위 '까발리기'에 시달린 탓일까. 외부인의 낮선 방문에 심한 불쾌감을 드러냈다. 경비를 담당하는 한 관계자는 기자의 시선에 “무슨 일이냐”며 경계심을 드러내고 다가섰다.

이 관계자는 “지난2002년 4월 공사 시작부터 최근까지 언론의 접촉으로 심기가 불편하다”며 “사생활 보호라는 최소한의 예의도 모르느냐”며 거친 반응을 나타냈다.

한남동 주택가 방범 초소에서 근무 중이던 지역 방범대원 박모씨(65)는 “기자들이 숱하게 찾아와 연일 귀찮게 하는 통에 우리도 죽을 맛”이라며 “일대 재벌 회장들 집에서 항의가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박씨에 따르면, 이곳에 살고 있는 대부분이 소위 재벌가 회장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보니 사생활 노출 우려로 극도의 민감함을 나타낸다. 이웃사촌이라는 말은 이곳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는 것. 오후 1시가 조금 넘은 시간임에도 거리에서 인적을 찾아보기란 불가능했다. 높다란 담벽 사이로 쭉 뻗은 한산한 거리가 을씨년스러울 정도였다.

박씨는 “솔직히 사람 사는 맛은 전혀 없는 동네”라며 “나라면 돈 주고 살라고 해도 싫다”고 고개를 저었다.

◆스산한 골목길

LG구본무 회장의 집과 이명희 신세계 그룹 회장의 자택 역시 인적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스산한 분위기 속에 웅장한 외관만이 기자를 압도하고 있었다. 다른 재벌 그룹 회장 일가의 자택 역시 마찬가지였다.

한 풍수전문가는 재벌가의 한남동 선호 성향에 대해 풍수지리학적 성향을 들어 설명했다. 이 전문가는 “한남동 일대의 경우 전형적인 배산임수의 지형을 나타내고 있다”며 “교통 및 안전 등 여러 입지 여건도 폐쇄적이고 개인적 성향의 재벌가가 선호할 만한 곳”이라고 말했다.

취재를 마치고 내려오는 한남동 일명 '재벌가 집성촌'. 어슴프레 해가진 주택가 길목. 기자의 등 뒤로 세차게 불어오는 차가운 한줄기 바람이 이곳의 싸늘한 인심을 대변하는 듯 했다.

◆한 달 생활비 20만원

마포구 쪽방촌 전경

지하철 2호선 이대역. 화려한 네온사인과 하루 24시간 언제나 붐비는 젊은이들로 활기가 넘치는 곳이다.
그러나 이곳과 맞닿은 노고산동 기슭 쪽방촌의 일상은 힘겹고 고달프기만 하다.

이곳에 살고 있는 박모씨(68. 여)는 “그냥 죽지 못해 사는거지 뭐”라며 깊게 패인 얼굴의 주름 너머로 힘겹게 웃음을 지어 보였다.

6년 전 남편과 사별하고 혼자가 된 박씨의 수입은 기초생활보장 급여 32만원이 전부. 그마저도 월세와 약값을 대고 나면 손에 쥐는 건 20여만 원 뿐이란다. 이 돈으로 한 달 생활을 버티기란 쉽지 않다.

매 끼니 라면으로 떼우기 일쑤라는 것. 추운 겨울 난방은 사치에 불과하다. 근처 연탄가게에서 겨우 한 장씩 사다 때는 연탄이 고마울 따름이라고 말한다.

박씨는 “작년까지만 해도 지하철에서 폐신문지수거 일을 했지만, 올해 초 허리를 다친 뒤로는 그마저도 쉽지가 않다”며 “요즘 같은 날씨엔 정말 사는 게 말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남편 복 없는 년이 자식 복도 없다”며 “딸자식은 자기 먹고 살기도 바빠 연락 끊긴지 오래며, 아들은 50이 넘었지만 길거리 노숙자나 다름없이 지내고 있다”며 자신의 신세를 비관했다. 박씨는 “그래도 오늘 하루에 감사하고 내일을 고맙게 살다보면 좋은 일도 있지 않겠느냐”며 애써 쓴웃음을 지어 보였다.

현재 이곳에서 생활하는 기초생활 수급 대상자는 총 119세대 173명. 이 가운데 박씨와 같은 독거노인은 총 30명 정도다. 이들은 기초생활 보장 급여로 한달 평균 적게는 3만3,000원에서 많게는 40만 원 가량으로 힘겹게 생계를 꾸려나가고 있었다.

◆더 이상 나쁠 것도 없다

같은 날 밤 12시. 서울역에는 열차의 운행이 모두 끝나고 마지막 열차에서 내린 승객들이 서울 역사를 모

서울역사앞 노상에서 잠을 청하는 노숙인들
두 빠져 나가자 언제부터 있었는지도 모를 노숙자들만이 대합실을 채우고 있었다.

대합실 의자에 앉아 쉬고 있던 노숙자 김모씨(38. 남)는 “11월 초만 해도 날씨가 많이 춥지 않아 밖에서 잤는데, 요즘은 날이 추워져 큰일”이라며 “그나마 여기도 직원들의 눈치를 봐가며 잠깐씩 몸만 녹이러 들어온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것도 서울역이 문을 닫는 새벽 1시까지 뿐이다.

늦은 밤 서울역사 주위에는 대합실뿐만 아니라 역 광장을 비롯해 지하철역까지 어딜 가나 노숙자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구 서울역사 앞, 쌀쌀한 날씨에도 대부분의 노숙인들은 라면박스와 침낭하나에 몸을 의지한 채 한껏 몸을 웅크리고 잠을 청하고 있었다. 일부 노숙자들 중에는 그마저도 없는지 얇은 옷차림에 맨발을 드러낸 채 추위에 떨고 있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몇몇 노숙인들은 역사 앞 길 모퉁이에 모여 소주잔을 기울이며 모여 있기도 했다. 서울역 관계자는 “추위를 잊기 위해 겨울이면 술을 마시고 길거리에서 잠을 청하는 노숙인들이 많다”며 “때때로 동사한 사람들이 발견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기자에게 담배를 요구하며 다가선 한 노숙인은 “장사를 하다 망해서 2년 전부터 노숙을 하고 있다”고 자신의 처지를 설명했다. 여 아무개(42. 남)라고 밝힌 그는 “너무 추워서 술을 마시지 않으면 잠을 잘 수가 없다”며 “추위를 달래기 위해 술을 많이 마시다 보니 겨울이 되면 이곳 사람들끼리도 시비가 자주 붙는다”고 말했다.

그는 “날씨가 많이 추운데 나보다는 가족들이 걱정이라며 가족들 볼 낮이 없어 지금은 어떻게 지내는지 연락도 못해보고 있다” 고 신세를 한탄했다.

오랫동안 노숙생활을 해 왔다는 최모씨(44. 남)는 “지금까지 이렇게 살아왔고 또 이게 편하다. 몇 푼 되지도 않는 돈을 벌기위해서 힘들게 일을 할 생각은 없다”며 “하루 일해 몇 만원 벌어봐야 생활은 더 나아질 것도 없다”며 묵은 때에 절어버린 점퍼 깃을 여미며 잠을 청했다.

김재범·김승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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