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이계 결집 가능 vs 아직은 역할 제한

이재오 전 한나라당 의원이 전격 귀국하면서 여권내 역학 구도에 변화가 올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 전 의원은 당분간 정치와 거리를 두겠다고 밝혔지만, 당분간이 얼마가 될지는 모른다고 말해 본격적인 활동시기에 여권의 촉각이 집중되고 있다.

조용한 행보

2008년 총선에서 낙선한 뒤 미국에 체류 중이던 한나라당 이재오 전 의원이 28일 저녁 10여 개월 만에 김포공항을 통해 귀국했다.
이명박 대통령의 핵심측근인 이 전 의원이 이날 귀국한데 이어 본격적인 정치 활동을 재개할 경우 한나라당은 물론 여권의 역학구도 전반에 적잖은 변화가 뒤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이 전 의원은 전날인 27일 새벽 미국 샌프란시스코를 출발해 같은날 오후 일본 도쿄에 도착했으며, 도쿄에서 1박한 뒤 28일 저녁 10시20분쯤 대한항공편으로 김포공항을 통해 귀국했다고 측근인 한나라당 진수희 의원이 전했다.

특히 이 전 의원은 거창한 귀국행사를 피하기 위해 가족을 비롯한 일부 극소수 인사 외에 누구에게도 귀국 일정과 귀국 경로 등을 자세히 알리지 않은 채 극비 귀국했다.
따라서 이날 공항에는 이 전 의원의 팬클럽 회원, 취재진 등이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으며, 국회의원 시절 수행비서만이 공항에 나가 이 전 의원을 맞이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전 의원은 현재까지 가급적 여의도행을 삼가며 정치 전면에 나서지 않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 전 의원은 귀국 직후 서울 은평구 자택이 아닌 선산이 위치한 자신의 고향 경북 영양으로 향했으며 영양에서 1박을 한 뒤 서울 은평구 자택에 돌아왔다.

그는 귀국 사흘째인 30일 지역구(서울 은평을) 주민들에게 자전거를 이용한 순례를 하고 오후에는 지역구 사무실을 방문하는 지역구 순례 활동을 재개했다.
이 전 의원은 또 자신을 찾아오는 정치인들과의 만남까진 사양하지 않겠지만 대규모 정치인 모임은 피할 계획이라면서 '친이재오계' 모임과의 회동은 자제할 입장임을 밝혀 당분간 지역구 활동에 전력할 것임을 시사했다.

이에 대해 진수희 의원은 “지금까지는 이 전 의원이 생각했던대로 '조용한 행보'가 이어지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러한 행보는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 측근은 “이 전 의원이 당분간 미국에서의 연구성과를 바탕으로 대학 등에서 특강하거나 저서를 집필하는 일에 몰두할 것”이라고 말했다.

시간 벌기 위한 수순

하지만 이재오 전 의원이 조용히 있는다 하더라도 그가 가지고 있는 영향력과 파급효과를 감안할 때 그의 조용한 행보는 '친이재오계 결집'을 위한 시간을 두기 위한 수순이라는 관측도 재기되고 있다.
이 전 의원이 10개월 동안 외유 활동으로 인해 정치적 공백이 컸던 만큼 귀국 이후 조용한 행보를 통해 세결집을 위한 시간을 벌고 동시에 귀국직후 성급히 활동시 정치적 잡음이 일어날 우려가 있어 이를 최소화하겠다는 의도라는 것.

이재오 의원이 휴식과 탐색의 시간을 통해 당내 분위기 파악과 정치적 여건을 파악한 이후 언제든 정치에 직간접적 영향을 끼칠만한 위치에 돌아올 수 있다는 것이 정치권의 의견이다.
실제로 이 전 의원은 “당분간이 얼마가 될 지 모른다”는 말로 머지않아 정치활동을 재개할 수 있다는 뜻도 내비쳤다.

이 전 의원은 “현실정치를 해야 될 여건이 온다면 지금 나라에 할 일들도 많다. 어려운 일도 많고. 그런 일에 헌신적으로 일을 하고 그럴 것”이라며 복귀 의사는 분명함을 시사했다.
이 같은 분위기에 10월 서울 은평을 재선거 출마설 역시 여권내서는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고 5월 중 이뤄질 원내대표 선출서 이 전 의원이 간접적으로라도 영향을 행사할 것이라는 시각도 상당하다.

한편 이재오 의원의 귀국을 계기로 친이계파가 본격 세결집을 시도할 가능성도 크다.
이는 지난해 12월 열린 친이재오계의 회동 모임에서 공성진 의원이 계파정치론을 공식적으로 천명한바 있기 때문이다.

공 최고위원은 “세계적인 미래학자들이 21세기의 3대 전략에 대해 '기존 질서의 파괴, 차이, 산종'을 얘기하곤 한다”며 “산종은 바로 계파를 의미하는 것인데 비슷한 사람끼리 모여 시너지를 주고 시각이 다른 분들과는 적절한 긴장을 유지시켜야 상호 발전이 가능하다는 얘기”라고 전제하며 친이계파의 본격적인 계파의 결집을 공식적으로 천명했다.

그는 “계파가 무슨 필요가 있느냐는 얘기들을 많이 하지만, 나는 화이부동(和而不同)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계파간 치열한 논리 투쟁을 할 때 한나라당이 성공하고 나라가 잘 되는 것”이라고 밝혀 이 전 의원이 조용히 있는다 하더라도 그를 둘러싼 친이계의 결집행보가 시작될 것이란 시각도 제기됐다.

역할 제한론 의견도 대두

하지만 이재오 전 의원의 역할이 그렇게 쉽게 확장되진 못할 것이란 의견 역시 제기되고 있다. 친박계파의 이 전 의원에 대한 경계론이 상당하기 때문.
친박계서는 벌써부터 이 전 의원의 조용한 행보에도 불구하고 정치와 거리를 둘 것을 거듭 주문하고 있다.

허태열 최고위원은 지난 2월 KBS라디오 인터뷰에서 “(이 전 의원의 귀국이) 당내 화합에 전혀 영향이 없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당분간 당내 활동을 자제했으면 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그는 또 원외당협위원장협의회가 친이재오계 세력 확장을 추진할 것이라는 관측에 대해 “이 조직이 친 이재오 조직이 된다면 당이 분란에 빠질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이 같이 현재 세가 강한 친박계가 분명히 이 전 의원에 대한 경계심을 늦추지 않는 상황서 아직까지 정착하지 못한 이 전 의원이 4-5월중 당협위 선출과 원내대표 선출 과정서 영향력을 행사해 친박 세력을 자극한다면 친이-친박간 충돌이나 접전으로 이어져 오히려 자신의 정치활동이 더욱 위축될 우려가 크다는 여권내 의견도 제기되고 있는 상황.

또한 그동안 범친이계를 이끌었던 이상득계 역시 지난해 '55인 공천항명 파동'이후 공식 관계 회복이 완전치 않아 이 전 의원의 친이계내 입지 역시 당분간 제한될 것이라는 의견 역시 배제할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이 전 의원이 당장 정치적 입지를 확고히 자리잡기는 힘들다는 것이 정치계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투데이코리아 전웅건 기자 k2prm@todayk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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