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고일환 기자 = 5.31 지방선거에서 완패 위기에 빠져 있는 열린우리당내에 `선거 책임론'과 이후 `정계개편'을 둘러싼 갈등이 점차 노골화 되고 있다.
2.18 전대 이후 수면 밑으로 가라앉았던 계파간 갈등은 정동영(鄭東泳) 의장의 `선거후 정계개편론'에 대한 당내 논란을 계기로 폭발 수위까지 차오른 분위기다.
당 최고위원인 김두관(金斗官) 경남지사 후보는 28일 긴급 기자회견을 갖고 "당을 이렇게 만들고도 책임질 줄 모르고, 자신의 정치적 장래를 위해 당을 사사로이 농락하는 사람들은 정계개편을 말하기에 앞서 책임있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김 후보는 이어 "지방선거 투표일 전까지 스스로 거취를 표명하길 요구한다"며 정 의장의 사퇴까지 요구했다.
김 후보는 특히 우리당의 정체 원인에 대해 "실용주의가 개혁의 순간마다 발목을 잡아 우리당의 정체성을 흔들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당내 갈등의 뇌관과도 같은 정체성 문제를 언급함으로써 정 의장뿐 아니라 당내 주류세력 전체에 대해 사실상 전쟁을 선언한 셈이다.
당내 일각에서는 김 후보가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의 정무특보 출신으로서 당내 친노(親盧) 그룹을 대표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전날 노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분류되는 이강철(李康哲) 정무특보도 정 의장의 정계개편론 주장에 대해 "정치적 꼼수"라고 비판한 사실을 감안한다면 친노그룹이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는 것이다.
실제 의도가 무엇이냐에 상관없이 노 대통령의 측근들이 연이어 정 의장의 대연합론을 비판하고 나섬으로써 청와대와 당, 현 정권과 차기 주자간의 정면충돌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당내 일각에서는 선거이후 호남 출신 의원들을 중심으로 한 대연합론 지지파와 이에 부정적 입장을 보이는 친노그룹간 갈등이 표면화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노 대통령의 탈당과 친노세력의 신당창당 시나리오도 이 같은 갈등 시나리오 가운데 하나다.
김 후보의 공개적인 비판제기에 대해 정 의장측도 불쾌하다는 표정을 감추지 않고 있다.
우상호(禹相虎) 대변인은 "지금 힘들지 않은 사람이 우리당 내에 누가 있느냐"며 "지금 이 시간에도 목이 쉬도록, 발에 물집이 잡히도록 사력을 다하는 지방선거 후보들, 당원들, 지지자들이 있다. 지금은 서로가 서로를 격려하고 위로하며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할 때"라고 말했다. 우 대변인은 김 후보의 회견 내용을 정 의장에게 보고했으나 정 의장은 `노 코멘트'였다고 전했다.
정 의장의 한 측근은 "김 후보도 최고위원으로서 지도부의 일원인데 책임론을 제기할 자격이 있는지 모르겠다"며 "김 후보가 한 표라도 더 얻어보자는 당 지도부의 노력에 찬물을 끼얹었다"고 분개했다.
이날 김 후보의 기자회견 내용을 사전에 파악했던 정 의장측은 기자회견을 만류하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지만 실패했다는 후문이다.
그러나 당내에서는 친노.영남 세력의 선거 책임론과 통합 반대론에도 불구, 선거 이후 곧바로 당내 갈등이 본격화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견해가 많다. 책임론을 제기할 경우 `대안'이 마땅치 않은데다, 현 지도부가 실제 당내 역학구도에서 대표성을 갖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친노그룹으로 분류되는 유인태(柳寅泰) 의원은 27일 CBS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선거에서 당이 참패하더라도 지부의 책임을 묻기는 힘들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또 2.18 전당대회 과정에서 `실용파 책임론'을 제기했던 재야파 소속의 한 의원도 김두관 후보를 향해 "자기 선거를 위해 실용파 책임론을 제기한 것 같다"고 말했다.
정 의장은 이날 당원들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길게 보고 깊게 호흡하자"며 "우리의 사명은 이제부터"라고 말해 선거이후 당의 분열 가능성에 사전 쐐기를 박기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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