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엄사 의식을 김 할머니가 의식이 있었다면 어떤 생각을

“김 할머니는 왜 안 죽는 거야!”

<정우택 논설위원>

존엄사 의식을 치를 때 김 할머니가 의식이 있었다면 마음이 어땠을까?

존엄사라는 무시무시한 살인의식을 당한 김 할머니가 오히려 더 생생하다. 코에 박힌 산소 호흡기를 떼어내고, 목사가 와서 잘 죽어서 천국으로 가라고 찬송까지 불러주었는데 김 할머니는 죽지 않고 오늘도 버티고 있다.

김 할머니가 존엄사를 거부하고 자가 호흡을 하면서 버티는 것을 보면서 필자는 할머니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김 할머니 죽지 말고 몇 년은 더 사세요. 당신을 두고 존엄사 의식을 치른 사람들에게 정신 좀 들게 해주세요. 하늘나라는 언제든지 갈 수 있으니 서둘지 마세요.”

며칠 전 출근길에 전철에서 눈을 감고 있었다. 이런 얘기가 들렸다. “김 할머니는 왜 빨리 안 죽어서 여러 사람을 골치 아프게 만들어?” 필자는 도대체 어떤 인간들이 김 할머니에 대해 악담을 하는지 눈을 뜨고 봤다. 멀쩡하게 생긴 직장인이었다.

그들의 논조는 이랬다. 김 할머니가 버티기 작전에 돌입해서 존엄사를 인정한 대법원의 입장이 말이 아니고, 다음은 존엄사를 주장한 자식들도 입장이 난처해질 수 있다는 것이었다. 더 황당한 것은 김 할머니가 산호 호흡기를 뗄 때 눈물을 흘렸는데 그렇다면 할머니가 의식이 있다는 게 아니냐는 논리였다.

그들은 수차레 열을 올려가며 호흡기를 떼어내자 김 할머니가 눈물을 흘렸는데 이것은 김 할머니가 거동만 못 할 뿐 희미하게나마 의식이 있던 게 아니냐며 의문을 제기했다. 병원측이 무의식중에도 눈물이 나올 수 있다고 했지만 그들의 말은 김 할머니가 말을 듣고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 말에 필자도 동조를 하고 싶다. 이유는 이렇다. 지난해 필자 친구의 아내와 딸이 우산을 쓰고 올림픽 공원을 산책하는 데 뒤에서 아가시아 나무가 쓰러져 나무에 깔리는 사고를 당한 일이 있다. 딸은 병원 응급실에 옮겨졌다. 의사의 말에 따르면 갈비뼈가 7개나 부러졌고, 내장이 여기저기 파손됐다. 사실상 다 죽은 모습이었다. 응급실에 누워있는 딸을 보고 부모, 가족, 필자, 의료진 등 많은 사람들이 한 마디씩 했는데 요점은 살기 힘들 것 같다는 것이었다.

다행이 딸은 깨어났고 나중에 이런 얘기를 했다고 한다. “아빠, 나 응급실에 누워 있으면서 하는 얘기 다 들었다.” 얼마나 충격적인 말인가? 당시 딸을 지켜본 사람들은 거의 살 수 없다는 식으로 말을 했다. 그런데 이 말을 듣고 있었던 것이었다. 말을 듣고 있는데 죽는다고 하니 당시 딸의 마음이 어땠을까?

이번에 김 할머니도 이런 모습이 아닌지 생각해 본다. 만일 할머니가 말을 듣고 있는데 존엄사 의식을 치르는 것을 알았다면 마음이 어땠을까? “뭐, 내가 살아있는데 호스를 빼고, 나를 하늘나라로 보내?” 별 생각이 다 들었을 것이다. 자식을 원망했을 것이다. 살아있는 사람을 두고 천국에 잘 가라고 찬송을 부르고, 성경 말씀을 들이대는 목사는 정말 미웠을 것이다.

김 할머니의 버티기는 대법원의 입장에서 볼 때도 솔직히 골치일 것이다. 대법원은 대법원 판사들 간의 논쟁 끝에 가까스로 존엄사를 인정했는데 지금 보면 대법원의 판단이 너무 성급했다는 결론이 나기 때문이다. 대법원 판결은 호스만 떼면 김 할머니가 곧 숨을 거둘 것처럼 돼있다. 그러나 할머니는 이를 거부하고 있다. 대법원이 진보적 판단을 한다는 의미에서 존엄사를 선듯 받아들였지만 지금 보면 꼴이 말이 아니다.

김 할머니가 자가 호흡으로 살아있는 모습은 자식들의 입장에서 2가지로 해석될 수 있다. 하나는 산소호흡기 없이도 살 수 있는 사람을 병원 측이 과잉진료를 했다고 주장할 수 있다. 실제로 가족이 소송을 낸다는 보도도 있었다. 당연히 가족으로서는 이런 생각이 들어갈 것이다.

하지만 다른 측면에서 보면 자식들은 미안할 것이다. 죄를 지은 느낌일 것이다. 편안하게, 고생하지 않고 하늘나라로 보내드리기 위해 법적인 싸움도 하고, 주변 사람들의 따가운 눈총도 마다하며 어려운 결정을 했는데 지금 보면 결국 선택이 잘 못된 것으로 비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경제적인 측면이나 법적인 측면에서 합법성과 당위성을 갖추었다고 하더라도 존엄사 의식을 치른 할머니가 살아있으니 말이다.

필자는 대법원의 판결도 옳고, 자식들의 판단과 처신이 옳았다고 하더라도 할머니가 죽지 않고 살아있는 것을 보면서 할머니의 마음을 헤아리고 싶다. 존엄사 의식을 치를 때 할머니가 완전히 의식이 없었다면 차라리 다행이지만 만에 하나 의식이 있는 상태였다면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정우택/

예아름미디어 대표/ 프리랜서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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