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 올해의 예술상 미술부문 수상자

지난해 '풍경과 놀다' 전시회로 한층 탄탄한 작품세계에 들어선 미술가 강홍구 사진 =이상운기자
“일상화 돼 있어 그냥 지나치고 이슈가 되지 않는 게 더 무섭다. 나는 지금 두 눈으로 봤고 힘들어 견딜 수 없으니 기록한다.” 회화와 사진의 영역을 동시에 넓혀 나가고 있는 '경계에 핀 꽃' 강홍구(53) 미술가가 내뱉은 사진 담론의 핵심이다.

지난 3일 서울 명동 한 카페에서 만난 그에게선 현장을 누비고 발로 뛰는 이에게서 맡을 수 있는 바람 냄새가 한가득 묻어났다. 카메라가방을 등에 메고서 단단한 워커를 챙겨 신고 겨울모자를 귓불까지 푹 눌러 쓰고 나타난 그의 모습은 영락없이 길 위에 놓인 사람이다. 그 길 위에서 보고 느낀 것들이 그의 '디지털 사진' 작업을 통해 각색되고 비틀어져 우리 앞에 낯설고 신선한 감흥으로 펼쳐지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지난해는 그의 입을 빌자면 “살다보니 별일도 다 생긴” 한 해다. 지난 여름 서울 로댕갤러리에서 가진 '강홍구: 풍경과 놀다' 전시회가 한국문화예술진흥위에서 주관한'2006 올해의 예술상' 미술부문 수상작으로 선정된 것. 3천만원이라는 적지 않은 액수의 상금 이야기도 놓칠 리 없다. 복권기금으로 운용되다 보니 “세금도 안 떼이고 복권보다 더 좋았다”며 반 우스갯소리를 던지는 그의 너털웃음이 솔직 그 자체다. 게다가 그간의 작업을 최근 한 권의 포토 에세이 '게으르게 사진 찍기 -디카 들고 어슬렁'(마로니에북스)으로도 묶어 냈다.

◆ 나는야 '사진 이용자?'

강홍구는 한때 초등학교 교사였다. 전남 신안 태생인 그는 지금은 폐교된 목포교대를 졸업하고 완도에서 6년간 똘망똘망한 아이들을 가르쳤다. 그러던 그가 홍익대 대학원에서 회화를 전공하고 미술가로서의 길로 들어섰던 것이다. 더군다나 지금 그는 전통회화가 아닌 회화와 사진의 경계를 즐기고 있다. 이같은 몇 번의 방향 틀기는 “하고 싶은 걸 하자. 후회해도 상관없다”는 그의 간명한 좌우명에 따라서다. 그렇게 막상 본격적으로 미술에 몸담고 보니 그림 자체의 재미가 덜해져 컴퓨터 이미지를 생각하게 됐고, 값싸게 작업하자는 취지에서 손을 댄 것이 '디지털 이미지'였단다.

최근 그의 작업이 한 권의 책으로 묶여 나왔다.(마로니에북스 펴냄. 1만2천원)
그는 소위 '똑딱이 디카'로 주된 작품을 만들어 왔고, 이를 들고서 지난해 까다롭기로 소문난 '로댕갤러리'에 당당히 입성했다. 로댕갤러리로서도 그간의 전력을 본다면 이색 작가전이 아닐 수 없었다. 지난 99년 금호미술관 전시 당시 리플릿에 자칭 'B급 작가'라고 쓴 것이 아직도 그의 주요 타이틀로 회자되고 있지만, 그가 의미한 'B급'은 단순 상하의 개념이 아닌 제도권 밖을 누비던 아웃사이더적 성향을 짚은 듯 싶다. 그 또한 “농담 삼아 여러 의미를 담아서 한 말”이라면서 “제도권 들어와서도 자기 이야기를 계속 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하다”고 덧붙인 걸 보면 말이다.

언론매체를 포함해 종종 그를 '사진작가'로 칭하기도 하지만, 그는 스스로를 '사진 이용자'라고 정의했다. 그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사진작업을 하고자 한 것이 아닌, “미술회화의 확장 영역으로 디지털 이미지를 선택”한 것이다. 회화와 사진의 경계를 미술가도 사진가도 공유할 수 있지만 어느 영역에 발을 담그고 있느냐는 정체성에 따라서 그려내는 맛과 의미가 달라지게 마련인 법. 그는 이와 관련, “나를 사진작가라고 하면 사진작가 진영에서는 달가워하지 않을 것이다. 장비나 기술적인 측면은 오히려 아마추어 사진작가들이 훨씬 뛰어날 것이다. 나 또한 그 호칭은 달갑지 않다. '사진 이용자' 혹은 '미술가'가 적합할 것이다. 내 작업은 미술의 영역이다”라고 분명한 선을 그었다.

◆ 폐허와 디지털로 시대를 밀고 가다

미술가 강홍구가 담아낸 우리 사회의 단면들은 쓸쓸하고 허하다. 그간 우리가 무심결에 지나친 것들이 그의 사진에 잡혀 '나는 이렇게 아팠노라' 날것으로 뛰고 있다. 그가 주로 다루는 소재들은 재건축지역이나 그린벨트 주거철거지역 혹은 우리의 기억들로부터 버림받은 황량하고 황폐한 공간이다. 서울 불광동에 터를 잡고 있는 그는 “우선 내가 사는 곳 근처에 재건축 현장이 많다는 지리적 이점을 꼽을 수 있다. (이런 현장들은) 파괴와 재개발 그리고 그린벨트가 한 묶음으로 돌아가는 우리 사회의 모순지점이 집약돼 있는 곳들이다.”고 설명했다.

오쇠리 풍경 6 Scene of Ohsoi-ri 6, 2004, 디지털 사진 인화 digital photo&print, 100X260cm

그린벨트-세한도 Greenbelt-Sehando, 1999-2000, 디지털 사진 인화 digital photo&print, 0X260cm

디지털은 이 시대의 감수성이다. 그는 이 시대와 같이 간다. 이 시대의 산물인 폐허의 공간을 이 시대가 만들어 내고 향유하는 디지털 사진으로 담아낸다. 그것도 '똑딱이 디카'로 찍어 여러 컷을 이어 붙여 하나의 장면을 연출해 내는 방식을 취한다. 한 컷으로 찍은 것에 비하면 분명 부자연스럽다. 그러나 이 부자연스러움에서 우리는 그의 사진에 담긴 피사체와 일정 거리를 유지하면서 그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읽어낼 수 있는 비평적 시선을 확보하게 된다. 그의 이같은 작업은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소외효과가 얻어내는 성과와 유사한 지점에 놓여 있음을 볼 수 있다.

거기에 합성으로 연출한 '생선'들이나 비현실적인 크기로 일상의 골목길에 드러누워 있기도 한다. 그는 이를 두고 “죽음에 대한 패러디”였다면서 “생선 자체의 이미지에 관심이 있었고 엉뚱한 데 뒀을 때의 느낌”을 즐겼다. 이는 마르셀 뒤샹이 수세식 변기를 전시장으로 가져와 '샘'으로 명명한 '낯설게 하기'의 다름 아니다.

미키네 집-구름 Mickey's House-Clouds, 2005-2006, 디지털 사진 인화 digital photo&print, 90X250cm

특히 컬러의 인형집이나 인형이 무채색의 폐허의 공간을 지배하며 적극 활용된 작품들은 낯설게 하기의 전형이다. 거대 폐허 위에 덩그러니 놓인 장난감은 '생뚱'맞으면서도 이미지의 충돌에서 오는 은유로 우리에게 충분한 즐길 거리를 제공해 준다. 그러나 이들 소품은 처음부터 기획된 것이 아닌, 폐허가 된 “현장에서 우연히 발견한” 것들이란다. 그는 “현장에 가면 현장 이미지가 강해서 합성할 필요도 없다”고 현장이 가진 생생한 이미지를 역설했다.

이런 취지의 사진작업이 계속될 것인가에 대한 물음에 그는 “현장이 확대되고 있는 한 당분간은 계속 될 것”이라고 의지를 다졌다. 이와 함께 그는 다른 주제의 작업도 겸하고 있는 상태다. 그는 도시 변두리 폐허가 된 집들에 핀 꽃으로 꽃밭이 된 곳들을 다니며 찍은 사진들로 '변방의 가을'을 기획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이어 “사람들한테는 기이하게도 심미적 욕망이 크구나” 싶었다면서 “가장 원시적 방법이 꽃”이라는 것도 새삼 깨달았다고 했다. 관련 사진이 웬만큼 모였다는 그는 제목을 '심미적인 것의 바닥' 혹은 '심미성의 바닥'으로 고민하고 있었고, 전시는 내년 쯤 내다봤다.

"쨍하고 예쁜 사진"보다는 "세계를 넓게 보는 법"을 강조하는 강홍구 미술가 사진=이상운기자

그는 디지털카메라의 보급화 등으로 “사람들이 사진을 즐기는 게 굉장히 좋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사진도 찍는 것보다는 읽는 법을 익혀야 한다. 기술적인 면은 워낙 뛰어난데 시야가 좁다. 쨍하고 예쁜 사진에만 매료돼 있다. 세계를 넓게 보는 법을 익힐 필요가 있다”고 사진미술가다운 조언을 덧붙였다.

이날 만난 미술가 강홍구는 그의 사진처럼 군더더기 없이 솔직담백한 사람이었다. 나이가 믿기지 않을 만큼 천진했으며 반짝이는 눈빛에는 개구쟁이 끼도 다분했다. 그런 그가 마지막으로 힘주어 한 말은 장난끼와는 저만치 떨어져 있는 명제였다. “이미지가 세계를 바꿀 수 없다는 걸 바보가 아니니 안다. 그래도 해야 한다. 그게 운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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