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년 역사의 전국 고교야구대회-그곳엔 학부모들의 함성소리만


[부산=김지훈 수습기자] 제 61회 화랑대기 전국 고교야구 대회. 패기 넘치는 선수들의 함성소리가 그라운드를 가득 메운다. 우승후보가 1회전에 탈락 하기도 하고 예상치 못한 팀이 우승을 하기도 하는 토너먼트 방식의 고교야구 대회는 매 경기가 결승전.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고 어린 선수들의 플레이에서는 투지가 넘쳐흐른다. 녹색 다이아몬드 위, 홈 플레이트 쟁탈을 위해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다.

반면 관중석은 너무나 평화롭다. 70년대 고교야구 전성기를 회상하며 여유롭게 경기를 관전하는 몇 몇 노인들이 관중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와중에 조금이나마 선수들과 호흡을 함께 하는 작은 무리의 관중들, 바로 선수의 학부모들이다.

7월 15일 개막한 화랑대기 고교야구대회의 첫 날. 전국을 강타한 폭우 때문에 첫 날 경기가 치러지고 있던 부산 구덕야구장에는 여느 대회와 다름없는 풍경이 연출되고 있었다. 1949년부터 시작된 화랑대기 고교야구대회는 광주 무등기, 대구 대붕기와 함께 '지방 3대 고교야구 선수권대회'로 분류되고 있지만 프로야구 출범을 기점으로 하락해버린 인기를 거스를 수는 없어 보였다.

이날 두 번째 경기로 치러진 인천 제물포고와 부산공고의 경기가 한창이던 오후 2시. 본부 관중석 한 쪽에서 선수들을 독려하는 응원소리가 끊이지 않고 들려온다. 멀리 인천에서 아들의 경기를 지켜보기 위해 부산까지 내려온 제물포고 선수의 아버지 정상옥(43 | 사진)씨다.

“제물포고 선수단을 응원하기 위해 어제 KTX를 타고 부산에 왔습니다. 저는 유통업을 하는데 일은 아내에게 맡겨두고 왔어요.” 부산까지 경기하러 내려온 아들과 아들 같은 선수들을 독려하기 위해 사비를 들여 내려온 것이다.

선수들의 경우 대회 참가 때 마다 버스를 타고 단체로 이동하지만 학부모들은 개인 차량을 이용하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해 응원을 다닌다고 한다.

“한 해 개최되는 전국 대회가 9개에요. 그 중에서 보통 4개 정도의 전국대회에 참가하고 있는데 저 같은 경우 웬만해서는 빠지지 않고 응원을 다닙니다. 만약 직장생활을 한다면 불가능한 일이죠.”

인터뷰가 진행되던 중에 그의 아들이 타석에 들어섰다. 1대1 동점의 팽팽한 투수전이 계속되던 중에 맞이한 득점기회. 삼진으로 물러나자 그의 얼굴에는 아쉬움이 가득했다.

“이럴 때는 (다른 학부모들에게)미안합니다. 제 아들은 선발출장이라도 하지만 못하는 선수 들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그는 이 순간 그의 아들이 가장 아쉬워 한다는 것을 알기에 다시 한 번 파이팅을 크게 외쳐 주었다. 그는 삼진 아웃을 당하고 들어오는 선수에게도, 안타를 맞은 투수에게도 모두 자신의 아들인 것처럼 이름을 불러주며 독려해주고 있었다.

“근데 쟤들한테까지 제 목소리가 들릴지 모르겠네요.”

그를 비롯한 모든 학부모들은 경기 시작 전부터 단 한명도 자리를 뜨지 않았다. 진지하게 경기를 지켜보던 그는 학부모의 입장에서 지켜본 고교야구에 대한 얘기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현재 우리나라의 고교야구는 학원스포츠 형태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더욱이 진로 또한 팀 성적에 의해 좌우되기 때문에 선수들은 야구밖에 할 수 없는 환경에 놓여있습니다. 학업에 신경 쓸 여유가 없어요.”

학교에서 정규수업을 제대로 받지 않는다고 한다. 대회에서 성적을 내야 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시간은 연습에 투자 해야만 하는 것이다. 또한 시합에 참가할 경우 장기간 타 지역에 있어야 하기 때문에 운동과 학업을 병행하는 것은 불가능 하다고 한다. 선수 개인적으로 봤을 때도 출장 기회를 잡아야 하기 때문에 야구 외에는 신경 쓸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선수)학부모 입장으로서 안타깝습니다. 학생시절에 야구만 한다는 것이 학생이나 학부모 입장에서는 부담일 수밖에 없어요. 야구를 계속할 수 없게 될 경우 미래 자체가 불투명해지게 되니까요.”

종목을 불문하고 운동하는 자식을 둔 모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걱정이 아닐까.



전국에는 53개의 야구팀이 있고 매년 수차례의 지역예선과 9개의 전국대회가 열린다. 전통과 역사를 갖고 있는 몇 몇 학교의 경우에는 동문들의 탄탄한 지원을 받지만 대부분의 선수들은 열악한 재정과 엷은 선수층의 고단함을 이겨내며 운동하고 있다.

올 해 들어서 케이블의 스포츠전문 채널에서는 전국 고교야구 대회 본선을 중계방송하고 있다. 이번 대회 역시 매일 한 경기씩 전국적으로 방송된다. 이 또한 선수들에게는 큰 힘이 되는 것도 분명하다.

'그들만의 지원군'도 있다. 지역을 막론하고 아들의 경기를 응원하러 달려오는 학부모들이다. 이날 제물포고는 1회전을 승리로 마무리 지었다. 인천에서 부산까지 내려온 그들의 정성을 하늘이 알아준 듯하다.

국민의 인기 스포츠로 자리 잡은 프로야구의 모태가 고교야구라는 것은 자명한 얘기다. 많은 사람들이 고교야구의 부흥을 바라고는 있지만 실상은 이처럼 열악했다. 대회가 열리는 경기장에는 여전히 학부모응원단의 목소리만이 메아리 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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