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단, 마광수 교수 제자시 표절 “자살행위”

요즘 출판계는 '도덕 불감증'이라는 지긋한 장마전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난 한 해 출판가는 참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 출판가 사재기 속출에 이어 유명저자들이 줄줄이 대리번역과 대필이라는 치명적인 블랙홀로 사라졌다.

아나운서 정지영씨가 번역한 '마시멜로 이야기'(한국경제신문사)는 대리번역으로 귀결 났으며, 그림 읽어주는 여자로 유명한 미술가 한젬마씨는 '화가의 집을 찾아서'(샘터)와 '그 산을 넘고 싶다'(샘터)로 대필 논란에 휩싸였다.

여기에 베스트셀러 '인생수업'(이레)이 표지 삽화 베끼기 시비가 일어 해당 출판사와 출판사 대표 또한 고소 사태를 겪었다. 결국 지난 7일 서울중앙지검 형사6부는 캐나다 유명 사진작가 그레고리 콜버트의 사진을 무단 도용한 '도서출판 이레' 대표를 저작권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고 밝혔다.

설상가상 만연한 출판가의 부도덕성을 바로 잡으려는 첫 걸음을 떼기도 전에, 새해 벽두부터 출판계는 마광수 교수의 제자시 표절 논란으로 지난해의 악몽을 또 다시 대물림했다. 이로써 출판가는 사재기, 대필, 대리번역에 이은 표절까지 나올 수 있는 악재란 악재를 골고루 치러내고 있는 실정이다.

“선생 자격 버리고 시인 자격도 버렸다”

출판가에서도 이번 마광수(56) 연세대 교수 표절 시비는 자못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워낙 '안 팔리는' 출판 시장 구조상 사재기, 대필, 대리번역까지는 기형적인 마케팅 시장의 산물이라고 도덕성 논란에 비상구를 마련해 주기도 했다.

그런데 표절은 분명 이와는 궤를 달리 하는 문제다. 도덕성 논란의 최정점에 놓인 이번 사건으로 인해 마광수 교수는 또 다시 단두대에 올랐다.

문제가 된 책은 마 교수가 지난해 4월 출간한 시집 '야하디 얄랴숑'(해냄 펴냄)이다. 이 시집은 성적 판타지와 자유로운 일탈을 통해 서정시의 새로운 형식을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은 작품으로 모두 357편의 시와 영상시 '권태를 위한 메모'가 포함돼 있다.

그런데 이 중 '말에 대하여'라는 시가 1983년 마 교수의 홍익대 재직시절 대학교지에 실렸던 제자 김이원씨의 작품으로 밝혀져 표절 논란이 불거졌다. 김씨가 모 언론사에 제보를 하면서 수면 위로 떠오른 이 사건은 출판가 도덕성을 저울질 하는 최근 사태들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됐다.

뿐만 아니라 또 다른 시 '바이올린'도 이메일로 창작지도를 했던 주부 제자의 시로 밝혀져 더 이상 발뺌의 여지가 없는 상황이다.

마 교수 또한 “내가 미쳤었나 보다”라고 순순히 시인해 더 이상의 시비 논란은 일단락 됐지만, 표절 시비에 놓인 이 두 편의 시 모두 행 구분만 달리 한 채 제자의 원고를 그대로 가져온 사례이기에 '무단 도용'을 면치 못하게 됐다.

이에 해당 출판사인 해냄은 시중에 있는 3천권의 시집을 전량 회수해 폐기 처분하기로 결정했다. 마 교수가 재직 중인 연세대 또한 교원인사위원회를 열어 징계 회부 여부를 논의할 방침인 것으로 전했다.

평단에서는 마광수의 이번 표절 시비를 두고 “작가 스스로 파멸의 구렁텅이로 들어간 것”이라고 신랄한 어조를 취했다.

권영민 서울대 교수는 지난 9일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선생 자격 버리고 시인 자격도 버렸다”면서 “지적인 창조작업을 하는 사람에게 모작은 자살행위”라고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다. 권영민 교수가 지닌 문단 내 지위를 생각할 때 그의 이같은 발언은 향후 마광수 교수의 진로를 염두에 두면 의미심장하다.

특히 권영민 교수는 마광수 교수와의 특별난 인연을 밝혀 한층 눈길을 끌었다.

지난 1989년 시인으로 활동하던 마 교수는 권 교수가 편집주간으로 있는 문학사상사 사무실을 찾아와 소설 한 편을 두고 갔는데, 이것이 마광수 교수의 첫 소설 발표작인 '권태'였다.

이를 계기로 후일 외설죄로 검찰에 고발된 마 교수의 손을 잡아 준 것도 권 교수였다. 권 교수는 당시 검찰에 “이런 짓은 한국 주요 언론들이 다 하고 있다. 매호마다 눈뜨고 볼 수 없는 애로물들이 가득한데 다 잡아 넣을 거냐. 법을 집행하려면 공평하게 해라. 대학교수라고 잡아넣는 건 말이 안 된다”라는 논리로 마 교수의 바람막이를 해줬던 것이다.

이런 전력을 지닌 권 교수조차 이번 사건에 이르러서는 고개를 내저었다.

“도덕 불감증 터질 게 터졌다”

사실 출판가 도덕 불감증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공공연한 비밀로 치부돼 쉬쉬 해왔던 것들이 지난 해 들어와서 부쩍 표면으로 드러났을 뿐이다. 출판 관계자들조차 대부분 “터질 게 터졌다”는 반응이다. 도덕 불감증은 너무 만연해 이제는 '손바닥으로 하늘 가리기' 꼴이 돼 버린 것이다.

이번 마광수 교수 표절 시비 또한 적지 않은 충격을 줬지만, 일부 독자들조차 비단 마 교수의 일이기만 하겠느냐고 출판 공정 신뢰도 자체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박상익 우석대 역사교육학과 교수 또한 지난해 출판한 '번역은 반역인가'(푸른역사)를 통해 대학원생들에게 번역과 감수를 다 맡기고 자기 이름으로 버젓이 책을 내는 일부 교수들의 도덕 불감증을 직설적으로 비판했다. 여기엔 '조교에게 대신 번역시킨 원고를 출판하는 행위는 대학교수라는 신분과 명성에 의지한 매춘행위'라는 작가 안정효의 말이 인용됐다.

이는 교수 신분의 번역가에게만 해당하는 내용은 아니다. 번역의 경우 특히 '대리' 인력이 많이 쓰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공공연한 자사 책 사재기는 만연한 출판가의 부도덕한 현장을 그대로 보여준다.

한 출판사의 마케팅 관계자는 “사재기는 여러 마케팅 방법 가운데 가장 효과적인 마케팅 전략 중 하나”라고까지 말해 도덕 불감증을 단적으로 드러냈다. 신문에 5단 광고를 내려면 최소한 500만∼600만원을 투자해야 하는데, 이 금액이면 사재기를 통해 해당 책을 베스트셀러에 올리는 게 더 쉽다는 게 출판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베스트셀러의 경우 '훌륭한 책'과 직결되는 것만은 아니지만 한 시대의 생각과 흐름을 읽어내는 중요한 지표 역할에 충실하다. 그런데 이처럼 사재기를 통한 베스트셀러 조작이 계속된다면 독자들이 책을 멀리하는 데 일정 몫을 기여하는 꼴이 된다. 한 걸음만 멀리 내다 봐도 훤히 보이는 자기 살 갉아먹기가 바로 책 사재기인 것이다.

이에 대해 사태가 심각한 만큼 무엇보다 출판계 내부의 자성이 필수적이라고 입을 모았다. 관례니 관습이니 다들 그렇게 한다느니 등의 치졸한 마케팅을 구사하면서 국민들에게 책을 읽자고 호소하기 전에 양심부터 되찾는 출판계가 돼야 할 것이다.

출판계 당사자가 이 모양이면서 어떻게 '책 속에 길이 있다'고 이야기 할 수 있을지 그것이 얼마나 설득력을 가질 런지는 의문으로 남길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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