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놀이계 대모 김성녀 1인 30역 연기 투혼

지난 8일 중앙대 안성캠퍼스 음악극작과 연구실에서 만난 배우 김성녀/ 사진=이상운 기자 photo98@pcline.co.kr

마당놀이계의 대모 김성녀(57)가 세 번째 앵콜 모노드라마 '벽속의 요정'으로 돌아왔다.

지난 8일 오후 경기도 중앙대 안성캠퍼스 음악극작과 연구실에서 만나 함께 저녁 자리를 가진 김성녀는 그야말로 '일 복' 터진 사람이었다.

이날도 김성녀는 기자와 만나기 직전 현 안산남사당바우덕이축제 집행위원장 겸 총예술감독 직무로 관계자와 공무를 봤다.

김성녀가 교수로도 재직 중이라는 사실을 아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다. 그녀가 소속된 중앙대 음악극작과는 6년 전 중앙대가 김성녀를 해당 교수로 채용하면서 만든 신설학과다. 중앙대가 김성녀를 믿고 신설학과에 새 커리큘럼까지 전적으로 맡긴 것이다.

6년째 학과장을 맡아왔고 이제 7기 제자들을 맞는다는 김성녀의 얼굴에는 사명감과 뿌듯함이 교차했다. 김성녀는 판소리와 춤, 연기를 동원해 가장 한국적인 냄새가 나는 배우로 제자들을 키우기 위해 정성으로 교단에 서고 있었다.

그러나 이런 직함들에 앞서 그녀는 30여년간 마당놀이에 전념해 온 '배우 김성녀'다. 이같은 그녀의 진면목을 볼 수 있는 보기 드문 장이 앵콜 공연으로 마련됐다.

김성녀의 첫 모노드라마인 '벽속의 요정'은 지난 2005년 6월 첫 공연 이후 지난 해 두 번째 앵콜까지 전회 기립박수 기록을 세운 수작이다.

오는 19일부터 내달 18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무대에 세 번째 앵콜로 올리는 이 작품은 스페인 내전 당시 실화를 한국전쟁 배경으로 각색됐다. 40년간 벽 속에 숨어 사는 아버지, 딸에게 조차 아버지의 존재를 감춰야 하는 어머니, 벽 속에 요정이 있다고 믿고 자란 딸 등 한 가족의 애틋한 사랑을 그린다.

이 모노드라마에서 50여년의 세월을 배경으로 1인 30역을 소화해 낸 김성녀는 2005년 올해의 예술상, 동아연극상, 평론가협회 선정 베스트 연극상 등 숱한 칭찬을 품에 안았다.

[다음은 배우 김성녀와의 일문일답]

[사진설명 '벽속의 요정' 열연중인 김성녀/ 사진=극단 미추 제공]
-모노드라마 '벽속의 요정' 연출자인 손진책 극단 미추 대표가 남편이다. 그래서 '남편이 연출하고 아내가 연기하는 1인극'으로도 불리는데, 두 사람의 조합은 어떤가.

▲ 연출이라는 포지션이 늘 배우 위에 군림했었다. 그러나 연출과 함께 창조해 나가야 하는 게 배우다. 난 내 이야기를 당당히 말하고 내 고집을 많이 피운 편이다. 그래도 나는 나무고 연출자는 숲을 보니까 결과적으로는 연출자의 말을 따라가게 돼 있다. 연출자와 배우가 손잡고 함께 만드는 것이다.

부부도 마찬가지 아닌가. 이전 시대는 종속적 관계였다면 요즘은 동지의 입장이다. 나는 아내로서는 F학점이다. 밥도 손수건도 한번 못 챙겨줬다. 남편도 내가 살림 못하는 건 아무 말 않는데 연기에 허술하면 불같이 화낸다. 연기 잘하면 너무 좋아한다. 그 사람은 배우 김성녀로서 나를 평가한다.

-'벽속의 요정'은 6·25를 배경으로 40년 동안 벽 속에 숨어 사는 아버지와 그의 아내 그리고 딸에 얽힌 이야기가 흥미진진하면서도 가슴 뭉클하게 펼쳐진다. 이 극의 핵심을 한마디로 짚는다면.

▲ 희망을 놓지 않는 것이다.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답다. 요즘 젊은이들은 너무 빨리 끈을 놓는다. 여기 나오는 가족만큼 처절한 가족이 어디 있나. 가족애를 통해 사랑과 희망을 선물하는 작품이다. 가족이라는 틀 안에서 소통을 두고 자기 자신을 반성해 볼 수 있는 시간이 된다.

많은 아내 관객들이 이 극을 보고 남편에게 잘해줘 남편들이 '김성녀 고맙다'고 메시지를 전한 적도 있다. 중년 노부부들의 반응도 뜨겁고 뜻밖에 아이들도 참 좋아한다. 인터넷에 후기 올린 것들을 즐겨 보는데 초등학교 4~5학년 아이들의 평이 나를 감동시킨다. 연령대와 상관없이 서로 닿는 부분이 있구나. 각자 자기와 연결되는 부분만 취해 간다. 관객들이 우는 대목도 다 다르다. 이런 다양성을 갖고 있는 게 이 작품의 장점이다.

-'벽속의 요정'이 첫 모노드라마였던 걸로 안다. 모노드라마는 일반 드라마와는 완연히 다르다. 그만큼 정점에 이른 배우의 아우라로 만들어지는 무대인데, 무려 1인 30역을 넘나든다. 평단의 격찬을 받았는데.

▲ 우리나라 배우의 인기는 모노드라마 배우에 집중돼 있었다. 젊었을 때부터 기회는 많았지만 모노드라마는 개인 장기자랑에 더 가깝지 않나 생각했었다. 더욱이 이번 작품의 경우 1인 30역을 하다 보니 자칫 개그 성대묘사로 비춰지면 어떡하나. 저 여자가 재주가 많아 한 사람이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는 구나 식으로. 하나의 작품으로 한 사람의 인생을 보여줘야 하는데, 그 경계가 아슬아슬 했다. 그러다 이번에 배우의 연기술은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실험해 보고 싶었다.

지금껏 두 시간을 혼자서 1인 30역한 모노드라마는 없었다. 한번 공연하고 나면 10년 산 것처럼 체력이 빠진다. 산삼 몇 뿌리 먹어가면서 출연료 못지않은 병원료 써가면서 사투했다. 배우로서의 자존심과 사명감을 걸고 투혼으로 했다. 이것이 경제도 어려운데 비싼 돈을 주고 온 관객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보답일 것이다.

-그간 쭉 해온 마당놀이 작업과 이번 모노드라마의 접점이 있다면.

▲ 마당놀이를 사람들이 평가절하 하는데 몇 천 명을 우리 전통 것으로 웃을 수 있게 만드는 작업이 쉬운 게 아니다. 마당놀이에서 30년간 관객들을 데리고 놀았기 때문에 어디서 관객과 놀아야 되고 주저 앉혀야 하는지의 포인트에 익숙했고, 이번에 잘 써먹었다. 이것이 아마 공연 2시간을 지루하지 않게 하는 비결일 것이다.

-보기 드문 예능인 집안이다. 남편 손진책씨는 연극연출가, 여동생 김성애씨는 판소리 명창, 남동생 김성일씨는 '풀몬티' 배우로 열연 중인 걸로 안다. 게다가 따님 손지원씨도 뮤지컬 배우다. 원래 윗대부터 예술가 피가 흘렀나.

▲ 아버지는 함경도, 어머니가 전라도, 남편이 경상도 출신이다. 나는 서울이 본적이니 정확한 표준어를 구사할 수 있다. 그러다 보니 각 지방의 온갖 사투리를 자연스럽게 구사할 수 있게 됐다. 어머니가 국악을 했기 때문에 재주 있는 피를 이어 받았다. 아버지는 이북에서 연극인이었기 때문에 연극할 수 있는 재능을 물려줬다. 우리 부모는 돈으로 살 수 없는 재능이란 유산을 내게 준 것이다.

-딸 손지원씨는 뮤지컬 재원으로 알고 있다. 배우로서의 삶을 살겠다고 나섰을 때 선뜻 동의했나.

▲ 우리 부부는 남이 안 알아줘도 자기가 좋아하는 거 하라고 했다. (딸은) 영국에서 유학하다가 '미스사이공'의 카메룬 메킨토시 극단 소속으로 일했다. 이번에 뮤지컬 '맘마미아' 출연 결정돼 연습 무대에 올랐었지만 성대 결절이 와서 다음 기회로 미뤘다. 딸은 건강문제로 자기 작품을 일시적이지만 접어야 하는데, 나는 너무 늙은 나이에 잘 나가는 것 같아서 너무 미안하고 가슴 아프다.

-남동생 김성일씨도 뒤늦게 배우로 나선 걸로 안다. 본의 아니게 뮤지컬 '풀 몬티'와 경쟁하게 생겼는데.

▲ 성일이는 어릴 때부터 배우를 하고 싶어했지만 부모님 때문에 못하고 MBC 공연단장 등 스탭으로 있다가 나이 들고 갑자기 뛰어들었다. 다들 걱정이 많았는데 '풀몬티'를 보러 갔다가 정말 행복해 하는 그 모습을 보고 이해했다. 갈비 먹다가 콩나물 죽 먹을 수도 있지만 그게 또 더 맛나고 행복할 수 있다면 자기 선택을 뭐라 그럴 수 없지 않느냐.

사진=이상운 기자 photo98@pclline.co.kr
-마당놀이 하면 '김성녀'가 떠오를 정도로 우리나라 마당놀이 대중화에 큰 기여를 해 왔다. '마당놀이의 대모'로서 마당놀이의 매력은 무엇이라 생각하나.

▲ 마당놀이는 관객과 같이 함께 만들어 가는 데에 매력이 있다. 지금 연극은 서양 연극의 틀이다. 가장 한국적인 연극이 마당놀이다. 우리는 우리 것을 평가절하하는 문화사대주의 성향을 지녔다. 피아노치면 퀄리티가 높고 가야금 치면 기생이라 그런다. 조수미씨처럼 클래식하면 예술이라 그러고 판소리 하면 '쟁이'라 한다. 세계 속의 한국 이런 타이틀일 때는 우리 것을 내보이면서 안으로는 격하시키는 것이다.

그 가운데 뿌리 내린 우리 것이 마당놀이다. 정부 지원도 전혀 없었고 문화적 평가 절하도 당했지만 오기로 버텨 왔고 많은 관객이 박수쳐 줘서 30년 가까이 왔다. 그런 면에서 마당놀이는 내 인생에 가장 떳떳한 긍지를 같게 하는 작업이었다.

-돌아보니 배우로서의 삶은 어떠했나.

▲ 일 중독자처럼 살았다. 배우는 내게 김성녀의 삶뿐만 아니라 대통령에서부터 마약중독자까지 여러 인생을 살게 해 줬다. 예인의 삶을 그린 남사당에서 최초 여자꼭두 역, 에비타 역, 최승희 역, 성춘향 역 등 여자로서 회자될 수 있는 모든 역할들을 거쳤다. 배우는 인물여행과 인생여행을 선물로 준 즐거운 직업이었다. 그리고 현장에서 익혀 왔던 노하우를 교육현장에 씨앗으로 심을 수 있어 더 행복하다. 내 인생은 그런대로 성공적이다. 화두는 건강이다.

-교단에도 서는데 후학들에게 해주고픈 말이 있다면.

▲ 자기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는 게 꿈을 키우는 최선이다. 어떤 길이 오고 어떤 갈래 길이 오더라도 그 시점에서 최선을 다하면 자기 길이 보인다. 그게 지름길이다. 내가 교수된다고 공부만 했으면 교수가 못됐을 수도 있다. 삶에 최선을 다하면서 주어진 대로 가다보면 보리차도 맛보고 생강차도 맛보며 옥수수차도 맛볼 수 있는 풍요를 누리게 돼 있다. 배우가 되도 큰 배우가 될 수 있고 교수가 되어도 큰 교수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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