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우리당 서혜석 의원
지난 2003년 'SK사태'로 불리는 SK그룹과 소버린 간의 경영권 분쟁은 결국 소버린이 2년 만에 8,000억 원이라는 막대한 수익을 챙기고 철수함으로써 마무리됐다. 그리고 올해, KT&G가 칼 아이칸 연합과 또 다시 경영권 분쟁 중에 있다. 그러나 이 싸움 역시 KT&G가 지난 9일 주주이익 환원 및 중장기 성장전략을 발표하며, 칼 아이칸 연합의 승리로 귀결되는 모습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칼 아이칸 측은 단 6개월 만에 2,000억 원 상당의 시세차익을 챙겼다.

최근 이처럼 외국자본의 국내 기업에 대한 적대적 M&A가 촉발되면서, 재계를 비롯해 정치권 일부에서 독약처방(Poison Pill)과 차등의결권제도, 의무공개매수제도 등 다양한 방어수단 도입을 요구하고 있다. 심지어 차등의결권제도의 극단적 경우인 황금주(Golden Share)까지 이야기 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외환위기 이후 외국자본 유치와 기업구조조정 촉진을 위해 M&A 방어제도를 완화한 반면 경영권 방어와 관련된 제도마련은 상대적으로 미흡했다. 그러나 지난해 5%룰을 강화하고 공개매수기간 중 주식발행을 허용하는 등 M&A 방어수단 역시 강화해 공격과 방어수단간 균형을 유지하려 하고 있다.

M&A 시장은 기업의 구조조정을 촉진시키고, 무능력한 경영진을 외부에서 통제하는 등 기업경영의 효율성 제고와 기업가치의 증대라는 국가 경제적 측면에서 다양하고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따라서 M&A 자체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토대로 개별적이고 단편적인 방어수단의 확대 요구나 논의는 우리 경제에 결코 보약이 될 수 없다. 오히려 현 시점에서는 우리 경제와 시장의 발전단계를 고려해 M&A 공격, 방어수단에 대한 거시적이고 체계적인 검토가 필요하다. 그리고 단순한 법규범뿐만 아니라 소유지배구조와 M&A 시장구조(예. 공격주체의 다양성), M&A에 대한 국민적 정서 등과 같은 요소도 함께 검토돼야 한다.

이와 관련 소유지배구조 측면에서 보면, 국내 기업의 경우 대부분 지배대주주가 존재하고, 순환출자방식 등으로 조성된 보유지분율이 상대적으로 높아 현행 M&A 방어법제 하에서도 이들 기업에 대한 경영권 도전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실제로 공정거래법상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의 내부지분율은 2004년 4월 기준으로 평균 49.78%이고, 내부의결권비율은 평균 50.80%로서 적대적 M&A가 사실상 불가능한 실정이다.

결국 지배대주주가 존재하고 기업지배구조가 취약한 국내 기업 현실에서 독약처방이나 차등의결권주식 등과 같은 방어수단을 확충하게 되면, 지배대주주의 사적 이익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방어권이 행사될 우려가 크다. 따라서 M&A 방어수단의 확충여부는 향후 공정위의 순환출자금지 문제 등 소유지배구조 변화와 연계해 검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다만 현재 칼 아이칸의 행위와 관련해 금융감독정책 차원에서 투자자를 보호하고, 시장의 공정한 게임규칙을 정립하기 위해 적절한 대응이 요구된다. 칼 아이칸은 언론 등을 통해 공개매수를 언급하고 있지만, 실제로 공개매수가 개시된 적은 없다. 이는 사실상 유사공개 매수행위로 볼 수 있지만, 이에 대한 규정이 없어 감독당국이 손을 놓고 있는 실정이다. 미국의 경우 공개매수의 개념을 포괄적으로 규정해 시장교란을 초래할 수 있는 행위도 유사공개 매수제도를 통해 규제하고 있다. 이에 대한 제도 정비는 반드시 필요하다.

다시한번 밝히지만, 단편적이고 개별적이며, 즉자적인 M&A 방어수단의 도입은 오히려 우리 경제에 막대한 사회적 비용만 요구할 뿐, 우리 경제와 시장 발전에 전혀 도움이 안 된다. 따라서 신중한 접근과 논의를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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