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조원의 비자금과 용공 의혹에 대해 법의판단, 심판 받을 것 주장...

“김대중 전 대통령이 6조원을 가지고 있다는 게 맞아?” 김대중 전 대통령의 일기장이 공개되면서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말이다.
김 전 대통령 측은 21일 일기를 공개했다. 이 가운데 2009년 2월 4일자 일기는 아주 관심을 끌만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일기에서 김 전 대통령은 자신의 비자금이 6조원이나 된다는 한나라당 의원의 주장에 대해 “법의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불편한 심기를 토로했다.

공개된 일기에 따르면 이날 비서관 회의가 열렸다. 김 전 대통령은 “박지원 실장 보고에 의하면 나에 대해서 허위사실을 공표한 한나라당 의원에 대해서 (100억 CD) 대검에서 조사한 결과 나는 아무런 관계없다고 발표.” 했다고 일기에 썼다.
김 전 대통령은 “그 의원은 아내 (이휘호 여사)가 6조원을 은행에 가지고 있다고도 발표.” 했는데 “이것도 법의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썼다.

일기는 특히 “너무도 긴 세월동안 용공이니 비자금 은익이니 한 것, 이것도 법적 심판을 받을 것.” 이라고 쓰고 있다.

헤럴드경제신문은 이와 관련 “이에 앞서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부장 이인규)는 한나라당 주성영 의원이 '김대중 전 대통령 비자금'이란 의혹을 제기한 100억 원짜리 양도성예금증서(CD)에 대해 김 전 대통령과 무관한 것으로 결론지었다.”고 보도했다.

신문은 당시 홍만표 대검 수사기획관은 “자금추적 끝에 문제의 CD는 사채시장 자금으로 판명됐다”며 “CD를 발행한 회사 또한 김 전 대통령과 아무 관계가 없다”고 설명했다고 보도했다.

2월 4일이면 김 전 대통령이 서거하기 6개월 전 쯤의 일이다. 김 전 대통령은 이때만 해도 몸이 그렇게 불편하지는 않았다. 비서관 회의를 주재할 정도였으니 거동에는 하등의 문제가 없을 때였다.

일기장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2가지다. 하나는 김 전 대통령 자신이 언급한 대로 6조원에 달하는 비자금이고 다른 하나는 용공이다. 자금 은익이나 용공은 사실이라면 역적에 해당하는 큰 죄다. 누구든 함부로 이런 말을 입에 담아서는 안된다.

하지만 이런 주제가 비서관 회의의 주요 내용이 되고, 대통령 자신이 회의 내용을 일기에 적었다는 것은 불미스러운 일이다. 사실 여부를 떠나 대통령에 대해 이런 말이 나온다는 것은 대통령 자신을 위해서도 좋은 일이 아니고, 국민들을 위해서도 좋은 일이 아니다.

이제 김 전 대통령은 세상 사람이 아니다. 하늘나라의 사람이 되었다. 그렇지만 자신이 일기에서 기록한 것처럼 6조원에 달한다는 비자금과 용공은 이제 밝힐 수도 없는 항간의 말이 되었다. 단지 일기장의 기록으로 남게 됐다. 이런 의혹을 제기한 사람이 법적인 심판을 받을 것이라는 기록으로 남게 됐다.

팔자는 솔직히 김 전 대통령이 일기에 용공이니 비자금이니 하는 얘기를 쓰지 않았다면 좋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얘기를 들은 사람은 들은 것으로 끝나고, 못 들은 사람은 못 들은 대로 넘어가면 되는데 일기가 공개됐기 때문에 국민들의 시선이 서 쏠리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김 전 대통령이 법의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한 용공과 비자금이 사실이든, 사실이 아니든 국민들의 입에서 입으로 퍼져 나갈 것은 분명하다. 입에서 입으로 퍼지고, 입에서 입으로 옮겨 다닐 것이다. 차라리 일기에 쓰지 않든가, 일기를 공개하지 않은 게 더 나았을 것이다.

일기를 공개하지 않았다면 지금 이 시점에서 김 전 대통령에게 의혹의 눈초리를 보내거나 비자금, 용공 운운할 사람은 없다. 그런데 불쑥 일기를 공개하고 말았다. 실수였다. 실수도 큰 실수다. 혹을 떼려다 더 큰 혹을 붙인 꼴이 되고 말았다. 일기를 공개하는 측에서는 일기 공개를 통해 김 전 대통령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개선하려고 했을 지도 모른다. 마지막까지 용공시비와 비자금 시비로 김 전 대통령이 마음 아파했다는 것을 국민들에게 알리기 위해서 였는지도 모른다. 아마 후자였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일기로 인해 김 대통령의 업적이 가려지는 것은 아닌지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일기라고 무조건 공개할 게 아니다. 적어도 대통령의 일기를 공개할 때는 똥오줌을 가려야 하는 데 이번에는 똥과 오줌을 전혀 가리지 못한 것 같다.

정우택 논설위원 jemedi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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