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병석 한나라당 의원실 제공>
중도실용주의에 대한 오해와 편견이 있다. 때론 '脫이념'이나 '유용성' 정도로 이해하기도 하고, 때론 '원칙 없는 편의주의나 성장 지상주의를 포장하기 위해 정치적으로 꾸민 말'로 폄하하기도 한다.

그러나 결론을 먼저 말하면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는 중도실용주의는 한 때의 위기를 모면하기 위한 것과는 애초에 상관이 없는, 지난 세기의 '자유주의'나 '공산주의' 정치 기획에 비견되는 21세기의 새로운 정치 기획이다. 중도실용주의는 디지털 혁명시대에 대한민국을 선진화하는 핵심 노선인 것이다.

첫째, 이명박 정부의 국정철학은 '화합적 자유주의'(Harmonious Liberalism)고 행동규범은 창조적 실용주의(Creative Pragmatism)다. 고품격 국가를 지향한다. 脫이념이나 이익추구와는 거리가 멀다.

자유주의 기획은 '자유로운 시민'을 지향한다. '자유로운 시민'은 절대자와 신분적 질서로부터 독립된 '개인'을 의미했다. 시민은 자기 완결적이고 자기 충족적인 개인이다. 사회는 개인의 개성을 저해하는 장애다. 이 때문에 자유주의 기획은 법 앞에서의 평등, 권력분립, 법치 등 국가와 특권으로부터 '시민권'을 지키는데 관심을 기울여왔다.

그러나 자유주의의 극단적 추구는 공동체의 파괴를 불렀다. 공산주의 기획은 '사회적 인간'을 지향한다. 사회적 인간은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한 만큼' 가져가는 공산사회의 시민이다. 그러나 그 꿈을 위해 준비했던 계급독재는 '계급과 국가의 폐지'가 아니라 '개성과 자유의 폐기'로 귀결되었다.

중도실용주의 기획의 '화합적 자유주의' 역시 '자유로운 시민'을 지향한다. 그러나 이 때의 시민은 데카르트의 '개인'이 아니라 '사회적 반성을 거친' 시민이다. 절대적 자유로서의 개인과 사회적 동물로서의 사회성이 온전히 녹아있는 '시민'이 중도실용주의가 지향하는 인간형인 것이다.

둘째, 중도실용주의 기획은 '중산층'에 의거하는 정치기획이다. 경제적 생존이나 승리자들의 이데올로기와 거리가 멀다. 자유주의 기획은 중세의 봉건적 특권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한 부르주아지의 꿈과 열정을 위한 기획이었고, 공산주의 기획은 지옥 같은 공장에서 길고 지루한 노동을 감내해야 했던 노동자들의 꿈과 열정을 반영한 기획이었다. 하지만 중도실용주의 기획은 중산층에 의거해 '자유로운 시민'을 꿈꾼다.

산층은 사회적 생산력의 중추를 담당하고, 시대의 문화를 체현하고 있다. 산업자본주의 시대에 노동자와 자본가 양 진영의 사이에 낀 중산층은 취약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기술혁명은 점차 중산층을 확대했다.

특히 '0'과 '1'의 무수한 변주로 이루어지는 정보혁명은 이원론의 세계에 종말을 고하고 구상과 실행이 통일된 새로운 인간형을 만들었다. 이들 중산층은 노동자 중심의 공산주의적 기획과 자본가 중심의 자유주의적 기획에 회의를 품고 있다.

이들은 스스로 경쟁을 통해 성장하고자 하는 점에서는 자유주의 기획과 궤를 같이 하지만 국가가 공동체를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는 데서는 공산주의 기획에 동의한다. 대한민국의 중산층은 산업자본주의 시대 경제 성장의 직접적 산물이다. 이들은 민주화의 주역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들은 외환위기 당시, 재벌의 파산을 지탱하는 책임-공적자금-을 져야 했고, 시장 이탈자들의 복지를 책임져야 하는 이중의 수탈을 당하면서 취약해졌다. 이들이 중도실용주의를 내건 이명박 정부를 선택한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귀결인 것이다. 중도실용주의의 정치 기획은 바로 중산층에 의거하는 기획이자 중산층의 철학과 사고를 반영하는 것이다.

세 번째, 중도실용주의 기획의 실천전략은 창조적 실용주의다. 대화와 타협, 설득은 중도실용주의의 문화전략이다. 자유주의 기획은 정글과 같은 경쟁을 주요 실천전략으로 삼고 공산주의 기획의 실천전략은 폭력이다. 폭력에 맞서는 폭력이 핵심이다.

그러나 중도실용주의는 '자유로운 시민권을 보장하는 것'을 기본으로 삼고 있다. 다양한 가치를 존중한다. 특히 디지털문명의 특성이 융합성과 복합성이다. 따라서 중도실용주의는 선험적 원칙이나 이념적 가치, 그리고 보편적 이상에 따라서가 아니라 사실적 존재나 문제 그 자체에 대해 접근하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중도주의의 기획은 '仁의 정치' '德의 정치'에 닿아 있다. 디지털 문명에서의 개인은 사회성을 동시에 갖춘 자유로운 개인을 말한다.

공자는 인(仁)의 속성을 충서(忠恕)라고 했다. 충(忠)은 중심(中心), 즉 주체적 자각이다. 서(恕)는 '자기가 하고 싶지 않은 것을 남에게 가하지 않는 것(己所不欲 勿施於人)'으로서의 소극적인 억제작용과 '자기가 잘 되고자 하면 남도 잘 되게 해주는 것(己欲立而立人 己欲達而達人)'의 추진 작용으로서의 적극적 의미가 있다. 인과 예를 잇는 핵심이 '서'다. 충과 서는 바로 중도실용주의 기획의 문화전략인 것이다.

네 번째, 중도실용주의는 형성과정에 있는 정치기획이라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대통령은 이미 청계천 복원과 서울시 교통체계 개선 등의 사업에서 중도실용주의 기획에 충실한 면모를 보였다. 대통령이 되고 난 뒤에 이루어진 신속하고 과감한 정부 부처 축소나, 공기업 개혁에 대한 강한 의지도 같은 맥락에서 평가할 수 있다. 중산층의 꿈과 열정을 키우는 주택, 금융정책 등도 중도실용주의의 핵심내용이다.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한 것은 '충서'(忠恕)의 문화 그 자체다.

하지만 많은 분야에서 중도실용주의 기획은 더 전진해야 한다. 진영적 사고를 가능케 하는 요소는 여전히 남아 있다. 그러나 이 때문에 중도실용주의 기획을 폄하하거나 예단해서는 곤란하다. 세계적으로 중도실용주의 기획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나라는 영국과, 독일, 프랑스, 미국 정도다.

이것은 21세기 정치 기획으로서의 중도실용주의는 선진국, 즉 물질적 기반과 중산층이 두텁게 있는 곳에서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중도주의란 선진국 즉 물질적 대중적 기반이 갖추어 진 나라에서 디지털 혁명기에 조응 하는 정치노선이라고 말할 수 있다.

바꾸어 말하면 21세기 지식 정보혁명의 시대에 선진국으로 가는 정치노선이자, 선진국만이 시도할 수 있는 노선인 것이다. 때마침 대통령은 2010년 G20정상회의를 유치했다. G20의 정례화는 기존의 G8을 벗어난 새로운 시대의 출발을 의미한다.

우리가 그 첫 정례회의의 의장국이 되었다는 것은 단순히 우리의 위상이 높아졌다는 것을 의미할 뿐만이 아니다. 중도실용주의가 문화적, 물질적 기반이 갖추어진 선진국에서 가능한 정치 기획이라는 점에 비추어볼 때 G20 유치는 우리에게 열정과 과제를 동시에 안겨준다.

중도실용주의 기획은 중산층에 의거해, 대화와 타협으로 '자유로운 시민'을 꿈꾸는 기획이다. 더 이상 이념의 틀에 묶여 완고해서도 안 되며,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고집해서도 안 된다. 대화와 설득의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만일 특권이나 국가로부터의 제약이 중산층의 자유로운 활동을 억제 한다면 자유주의 기획은 여전히 맹위를 떨칠 것이다.

또 국가 또는 지배계급이 시장과 폭력으로 자유로운 노동을 억압한다면 공산주의 기획 또한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중도실용주의 기획이 성공하기 위해선 자유주의 기획과 공산주의 기획의 원인이 되는 요소를 제거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따라서 중도실용주의에 대한 오해와 편견에 사로잡혀 공방하기보다는 국민의 기본권을 확장하고 자유로운 활동과 창의적 공간을 확대하는 일, 공정 경쟁의 룰을 확보하며 시장 지배자들의 특권을 제한하는 일 등에 함께 매진하는 것이 지금 필요한 일일 것이다. 지금 우리는 과거와 미래 사이의 갈림길에 서 있다.

한나라당 이병석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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