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 '국회의 입법권을 존중해야 한다'

헌법재판소가 지난달 29일 미디어법 처리 과정에서의 대리투표와 일사부재의 원칙 위배 등을 인정하지만 야당이 요구했던 '가결 무효'는 인정하지 않았다.

야당의 대리투표와 일사부재 원칙 위배를 인정하면서 미디어법의 효력을 유지하는 일견 모순된 결정을 내린 것이다.

이강국 헌재소장 등 재판관 5명은 미디어법 강행 당시 방송사 화면 등을 살펴본 결과, 목적만 달랐을 뿐 여야 의원들이 모두 대리투표를 한 것으로 판단했다.

헌재가 개정안의 절차상 문제가 적지 않은데도 미디어법이 유효하다는 쪽으로 사실상 결론을 내린 것은 국회 입법절차상 하자를 하나하나 문제 삼아 그때마다 법안을 무효로 한다면 큰 사회적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헌재는 같은 논리로 1997년 신한국당에 의한 노동법 날치기 통과 때 야당이 낸 권한쟁의 심판에서도 비슷한 결론을 내린바 있다.

여당 의원들이 몰래 모여 날치기 통과를 한 것은 야당 의원들의 권리를 침해한 것이지만 결론적으로는 과반수 출석에 과반수 찬성으로 의결된 만큼 헌법상 다수결 원칙을 어긴 것은 아니라는 당시의 판단처럼 다수결 원칙이나 회의공개 원칙 같이 헌법에 명시된 규정을 어긴 것이 아니라면 법률 수준의 국회법을 어겼다고 이미 통과된 법률을 무효라고 결정지을 권한이 헌재에는 없다고 봤기 때문이다.

지난달 29일 결정에서는 헌재가 권한쟁의 심판에서 문제점을 지적하는 수준에 머무름으로써 해당 기관의 자율성을 존중해야 한다는 논리도 부각시켰다. 한 마디로 국회의 입법권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민주당 측은 헌재가 미디어법 유효 결정을 내린 다음날인 30일 한나라당에 '미디어법 재협상'을 촉구하며 '언론악법 폐기 투쟁'에 본격 돌입했다. 헌재가 미디어법 처리 과정의 위법성을 인정한 만큼 이를 명분 삼아 여야간 정치협상에 나서 미디어법 폐지를 위한 재개정을 관철시킨다는 방침이다.

앞으로 많은 진통을 겪여야 하는 미디어법은 사실상 유효하게 됐다. 다만 여야간의 협상을 통해 추후 어떻게 변화 될 것인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다만, 국가 정책을 정하는 과정에서 국민과 경제적 발전을 위한 분쟁이 아닌 각 당간의 이권과 체면을 세우기 위한 대립으로 이어져 본질적인 의미를 퇴색시키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한편, 헌재의 미디어법 유효 판정에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는 환영하는 뜻을 밝히며 앞으로의 계획과 포부를 밝히는등 적극적인 자세를 취했다. 반면 KBS, SBS, MBC 등 방송사들은 공식입장을 표명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상반된 반응을 보였다.


정경부 기자 장희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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