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사정리위원회 "어떠한 정치적 의도도 없다"

'진실ㆍ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위원회)가 긴급조치 위반사건 관련 당시 재판에 참여한 판사의 실명이 공개된 '2006년 하반기 조사보고서'를 발표하자 각계,각층의 찬반 논란이 더욱 거세게 달아오르고 있다.

우선 보수단체는 위원회의 보고서 발표 이후 즉각 논평을 내고 명단 공개에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특히 유신시절이었던 당시 판사 신분의 노무현 대통령을 직접 거론하며 노골적인 비난을 가했다.

자유주의연대 “명단이 공개된 판사들은 당시 긴급조치 사건을 배정받아 판결을 내린 것 뿐”이라며 “당시 판사였던 노 대통령이 사건을 배정 받지 않은 것은 행운이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이번 명단 공개는 과거 동료를 희생양으로 정치적 이득을 취하겠다는 현 정권의 저급한 정치적 계략”이라고 덧붙였다.

더욱이 이번 사태의 당사자인 법조계의 반대는 더욱 거셌다. 법원은 “잘못된 과거사를 정리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공감한다”고 말하면서도 “사건의 초점이 현직 고위법관들에게 모아져 소위 마녀사냥식으로 이어진다면 이는 '사법부 흔들기'가 될 수도 있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또 서울고법 윤종구 판사는 31일 오후 법원 내 내부 통신망에 이번 사태에 대한 우회적인 비판의 글을 올렸다. 윤 판사는 “과거의 헌법에 따른 결과는 모두 부정돼야 하는 것이냐? 그것은 아니라고 본다”라고 말해 유신헌법에 따라 긴급조치 위반 사건에 유죄를 내린 판결을 모두 부정해서는 안된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윤 판사는 “자기 부정이나 과거 부정만이 법의 예측 가능성을 보장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 될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정치권의 경우 찬반양론이 맞선 가운데 대체로 부정적인 입장이 우세했다. 긴급조치 위반으로 수감생활을 한 이재오 한나라당 의원은 “진실은 역사에 기록돼 있고 화해는 살아남은 자의 몫이다. 지금은 과거가 아니라 화해에 무게를 둬야 한다”며 명단공개에 반대했다

열린우리당 노웅래 의원도 “숨길 사안은 아니지만 긴급조치 사건을 판결한 판사들에게 뭇매를 주듯 공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반면 민주당 이상열 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유신 정권이 긴급조치를 통해 국민의 기본권 조차 제한했던

것은 역사적 사실”이라며 “이런 역사를 되풀이 하지 않도록 진실을 정확히 규명하는 것은 민주사회의 기초를 다지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 대변인은 “사법부는 통절한 반성을 통해 다시는 이러한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찬성의 입장을 나타냈다.

민주노동당 박용진 대변인도 “판사는 판결문으로 말하므로 당시 판결문에 대한 책임은 명백하다. 당시 판결이 이미 공개된 것인 만큼 책임이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법복을 입은 사람으로서의 태도가 아니다”고 찬성 입장을 나타냈다. 박 대변인은 “이번 명단 공개가 특별한 정치적 의도를 갖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네티즌들 역시 찬반양론에 휩싸였다. 물론 대체적으로 이번 명단 공개에 부정적인 입장을 고수하는 쪽이 우세했다. 네티즌들은 각 포털 토론 게시판을 통해 군부독재시절의 실정법 하에서 판결한 판사를 지금 시대에 와서 공개한다는 것은 또 하나의 사법살인이라며 공개를 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이디 'ufokang' “정치적 여론 몰이를 위해 적절히 인권과 지난 시대의 약점을 들춰 자신의 잘못을 가리 려는 꼼수에 불과하다”며 “이번 판사 명단 공개는 석궁테러보다 더한 사법살인”이라고 명단 공개에 반대 입장을 나타냈다.

반면 법조인들도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하다는 진리를 깨달아야 한다며 찬성의 입장을 나타내는 쪽도 많았다. 아이디 'ww5875'는 “권력에 등에 업고 억울한 시민들의 목숨을 담보로 승승장구한 법관들은 과연 떳떳할지 의문이 간다”며 “법조인들이라 할지라도 처벌받을 것은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이번 보고서에는 알려진 대로 이강국 헌법재판소장과 이공현ㆍ민형기 헌법재판관, 양승태ㆍ김황식ㆍ박일환ㆍ이홍훈 대법관 등 현직 고위법관 10여명이 긴급조치 위반 사건을 재판한 것으로 기록돼 있었다. 또 김용준 전 헌재소장과 윤관, 최종영, 김용철, 민복기 전 대법원장 등 전직 고위법관 100여명의 이름도 포함돼 있었다.

진실ㆍ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송기인 위원장은 “이번 보고서는 긴급조치위반 사건 판결을 분석, 긴급조치 적용실태를 파악하기 위해서 작성했을 뿐, 개별판결의 적합성을 다루거나 어떠한 정치적 의도도 갖고 있지 않다”고 말하며 “명예, 반성, 인적청산 등의 문제를 제기한 것도 아니다”라고 거듭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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