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열기 뜨거우나.. 관계. 재계 외풍 막기엔 역부족 평가

요즘 날씨가 춥다. 증시도 얼어 붙었다. 그럼에도 증권가는 증권업협회장 선거 열기로 뜨겁다. 연말만 하더래도 잠잠하기만 했다. 그러나 연초들어 후보들이 하나둘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선거전은 달아올랐다. 지난달 29일 후보추천위의 활동이 시작되면서는 만개한 양상이다.

그러나 이번 증권업협회장 선거 역시 음울했던 과거의 선거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평가다. 또 유권자와 후보 등 당사자들 외엔 관심초자 없다. 증권인 대부분은 남의 일 보듯 협회장 선거를 본다. 싸늘하기까지 하다.

이같은 배경엔 무엇보다도 근자에 증협 회장 후보들로 나서는 이들이 과거에 비해 역량이 떨어진 때문을 이유로 든다. 다시말해 큰 기대를 할 게 없다는 것이다.

과거의 협회장들은 거인들이었다. 이에 비해 근자에 나서는 이들은 고만고만하다는 것. 이런 평가는 자본시장통합법 이후 증권산업이 여타 산업에 휩쓸려 가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증권산업의 위상이 커졌음을 감안하면 그리 비관적으로 볼 문제는 아닌 듯하다. 역대회장들의 업적을 비교해보며 그런 불안감을 삭힐 기회를 가져본다.

협회장 후보에 공식출마를 처음으로 선포한 인물은 김병균 대한투자증권 상임고문. 그는 이미 5개월여전부터 협회장 선거출마를 공식화했다.

증권가에선 입지전적 인물로 통한다. 전남보성 출신으로 어려운 살림에 고등학교를 진학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의 비범함을 눈여겨본 지인들의 도움으로 검정고시를 거쳐 서강대 영문과를 진학했다.

코리아헤럴드를 첫직장으로 남덕우 당시 재무부장관에게 낙점돼 영문비서관에 특채된다. 이어 경제기획원과 부총리실, 국무총리실, 공정거래위원회 등 굵직한 관직을 역임했다. 이후 기술신용보증기금 이사장과 대한투자증권 사장을 거쳐 현재는 고문으로 재직중이다. 그는 강력한 추진력이 강점이란 평가. 대투사장 시절 매각위기에 있는 회사를 흑자로 전환시켰다. 증권가에 자산관리란 개념을 도입한 이도 그다. 기업평가센터를 만들고 비상장사를 평가하는 시스템을 설립키도 했다.

김고문이 내세우는 선거공약은 시장원리에 의한 인수합병. 자본시장통합법 이후 구조조정이 불가피한 증권업계의 축을 잡아나가겠다는 뜻이다. 증협이 중심에 서서 진두지휘해야 한다는 것이 김고문의 생각이다.

홍성일 한국투자증권 사장의 닉네임은 만능해결사. 양정고를 나와 한양대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했다. 74년 제일합섬을 시작으로 줄곧 삼성그룹을 떠나지 않았다. 그가 증권가에 인연을 맺은 것은 2000년. 한국투자신탁증권 사장으로 발탁되면서다. 동원증권과 한국투신의 합병을 진두지휘했다. 그 경험을 살려 자본시장 통합법 이후의 증권계의 방향을 잡겠다는게 그의 공약이다.

그렇기 위해선 먼저 증권업협회의 '관료'냄새를 지우겠다는 것. 군림하는 협회가 아니라 사랑방처럼 회원사들이 오가도록 하겠다는 방안을 세운다. 이를 위해 이사회의 안분을 통해 모든 증권사가 동등한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하겠다는 복안이다. 그 외에도 금융수출지원 산학협동 미디어광고 강화 파생상품 인가기준 완화 등 구체적인 공약을 열거하고 있다. 단임제 또한 그가 내세우는 공약중 핵심사안. 협회 업무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해 단임제가 전통으로 자리잡아야 한다는게 그의 생각이다.

황건호 현 증협회장 역시 유력한 후보중 하나다. 몇일전까지만도 공식적으로 출마를 내세우진 않았다. 그러나 현직이란 기득권을 이용 자연스럽게 추천을 받는다는게 증권가의 공통된 인식이었다. 그는 '협회장 선거에 초점이 맞춰지게 되면 법제정을 앞두고 있는 자본시장통합법이 퇴색될 수 있다'고 말했다. 얼핏듣기엔 고사의 변으로 들린다. 그러나 그는 스스로의 입으로 단임제를 내세웠었다. 즉 출마의사가 비난의 부메랑이 돼 돌아올까 무서워 하고 있던 것. 그런 전력으로 인해 추대형식의 재출마를 전략으로 취하고 있었다. 실은 출마의 변인 것이다. 급기야 지난달 31일 출마를 공식화했다.

그 외에도 김대송 전 대신증권 사장 등 여러 사람이 나섰지만 대부분은 자의반 타의반으로 출마를 고사했다. 지금은 이들 3파전으로 후보가 굳혀진 상태다.

그러나 이번 선거를 보는 증권가의 눈은 싸늘하다. 이처럼 싸늘한데는 증권업협회 선거가 증권가의 선거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증권업체들의 선거란 것이다. 협회장은 증권인의 대표가 아니라 증권사 사장들간의 대표다.

문제는 이 증권업협회가 증권가의 분위기나 각종 제도를 입도선매해 나간다는데 있다. 이익단체로서 업체이익을 대변하는 것을 넘어 마치 투자자들의 의사마저 대변하는 양 인식돼 있고 또 실제 그렇게 하고 있다. 그러나 각종 조치의 최종 피해자는 증권사가 아니라 결국 투자자들이었다. 증권가에서 협회장 선거를 바라보는 시각이 냉냉함이 이해되는 대목이다.

사실 역대 회장에 비추어 볼때 최근의 협회장들은 그 비중이나 역량이 약하다는게 증권업계의 중론이다. 증권업은 여타 금융산업중에서도 외톨이 신세를 면치 못했다. 은행권 등에 치이는 것을 비롯 외풍 역시 엄청 많았다. 그 극복의 한가운데에는 협회장들이 있었다.

80년대 이후로만 보자. 고 백경복 회장은 증권이란 분야를 하나의 산업으로 일으켜 세웠다. 장영자 사건 등 굵직한 금융사건들을 이겨내고 명실공히 산업으로서 각계에 인식케 했다.

권중동 회장은 금융산업의 앞을 내다보고 타업계에 비해 전산화를 일찍 서둘렀던 인물. 증권분야가 여타 금융산업에 비해 전산화 의존도가 높게 된 것은 그의 결단 덕분이다. 이후에 은행을 비롯 수기통장으로 증권업을 제외한 전금융산업이 휘청거렸던 것을 생각하면 그의 공로는 자명하다.

김선길 회장은 증시 활황 기세를 살려 증권산업의 국제화를 끌어냈다. 관료주의가 팽배했던 금융가에서 해외선진 자본과 대항해 도전장을 내민 것. 이후 자본시장 자유화란 개념이 증권시장에 도입됐다.

고 김영일 회장은 그런 국제화추세에 대비 점포확장 전산화 등 증권산업의 볼륨을 키웠다. 주가가 합리적 가격으로 움직이도록 해 명실공히 자본시장으로 역활을 하도록 기틀을 마련했다.

강성진 회장 때는 증시가 어려웠다. 그런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증시안정기금을 도입하는 등 시장안정에 힘을 기울였다. 타금융업계에서 바라볼 때는 분명 특혜였다. 그러나 그의 힘으로 배출된 장차관만 수십명. 관.재계에 깔린 강성진 사단의 힘이 유감없이 발휘됐다.

연영규 회장은 장외시장을 활성화시킨 인물. 중후하고 균형감각을 가진 인물로 금융계에 평가가 나 있었다. 그럼에도 증권산업의 독자적인 영역을 개척한 것. 지금의 코스닥이나 벤처기업육성은 그로부터 시작됐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후임 배창모 사장은 장외시장을 코스닥 시장으로 확대시켰고 거래소 시장 역시 외국인들이 대거 서울로 몰려오도록 여건을 조성한 인물이다.

이런 역대 회장들에 비해 세칭 선거로 당선된 민선회장의 경우 그 실적이 미미하다. 실적이나 공약이나 모두 증권산업의 비대화와 함께 마련된 대책이나 개선책이 대부분이다. 타금융권과 비교해 비교우위을 내세울게 없다. 협회는 밖을 향해야 한다. 그나마 후보들이 공히 내세우는 자본시장통합법 제정 이후의 증권산업 발전이란 공약 역시 증권업계 자체의 작품이라기 보단 재경부의 작품이다. 당연 증권업계의 이익을 위해 뛸 수 밖에 없겠으나 관계나 재계의 외풍을 막기엔 역부족이란 평가다. 어렵게 말할 것 없이 지급결제 하나만도 논리제공을 못해 은행권에 밀리고 불편과 마찰비용을 감수하고있는 마당이다.

협회의 한 관계자는 '밥 지은 사람은 따로 먹는 사람 따로'란 말로 곤란한 입장을 대신한다. 업계의 다른 관계자는 '어중이 떠중이 다 나선다'며 원색적인 비난마저 서슴치 않는다. 사실 여의도 증권가에서 협회장 선거가 회자될 때면 육두문자부터 나오는 것을 많이 듣는 바다.

그러나 협회장의 역량과 무관하게 낙관적으로 보는 이들도 많다. 이들은 이젠 증권산업의 방향을 협회에 의존하기 보다는 시장의 역량에 의존할 정도로 커졌음을 든다. 상대적으로 협회의 역활이나 협회장의 위상은 낮아질 수 밖에 없다는 것. 이는 또 당연한 흐름이란 얘기다.

증권시장의 볼륨이 커져 있고 여타 금융분야에 비해 선진화돼 있는것에 대한 자신감일 것이다. 증권시장의 위상이 높아질수록 증권업협회의 위상은 낮아진다. 사실 이는 대세이기도 하다.

증권산업은 이제 증권업협회에 의존하는 단계는 지난 것이다.

저작권자 © 투데이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